헬기 추락 5명 사망... 유족 “사고 1시간 전에 통화했는데” 오열

최종석 기자 입력 2022. 11. 27. 23:28 수정 2023. 11. 15.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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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계도(啓導) 방송을 위해 비행 중이던 헬기가 27일 강원도 양양군 야산에 추락해 기장 등 탑승자 5명 전원이 숨졌다.

27일 오전 10시 50분께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명주사 인근 야산에서 S-58T 기종 중형 임차 헬기가 추락해 소방 당국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소방 당국은 이 사고로 기장 A(71)씨와 정비사 B(54)씨 등 탑승자 2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22.11.27/연합뉴스

소방 당국과 강원도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50분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어성전리 명주사 인근 야산에서 속초시와 양양·고성군이 산불 계도 방송과 진화용으로 운용하던 헬기가 추락했다. 이 사고로 기장 A(71)씨, 정비사 B(54)와 C(25)씨, 방송 요원 등으로 추정되는 여성 2명 등 탑승자 5명이 모두 사망했다.

이 헬기는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속초시 노학동 이륙장을 출발해 등산객과 주민을 대상으로 산불을 조심하라는 계도 방송을 하던 중이었다. 속초시에 따르면, 지난 25~26일 동해안에 강풍이 몰아치면서 산불이 잇따르자 강원도로부터 계도 비행을 요청받았고 강풍이 잦아든 이날 비행에 나섰다고 한다.

양양에서 추락한 동일기종의 헬기 S-58T /서울지방항공청

당시 사고를 목격한 현북면 어성전1리 김돈일 이장은 “’산불 조심합시다’ 하는 방송이 들렸고 2~3초 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올라왔다”고 했다. 주민 박향숙(54)씨는 “공중에서 헬기가 빙글빙글 돌다가 야산으로 고꾸라졌다”면서 “검은 연기가 치솟더니 얼마 안 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파편이 날아왔다”고 했다.

소방 당국은 사고 현장에 소방 헬기와 구조대, 진압대 등을 긴급 투입해 화재 진압과 구조 작업을 벌였다. 하지만 헬기 동체에서 화염이 치솟는 데다 폭발이 우려돼 탑승자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최식봉 양양소방서장은 “헬기 배터리 부분에서 계속 폭발음이 발생해서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고 했다. 추락 헬기의 화재를 진압하는 데는 1시간 15분이 걸렸다고 한다.

사고 헬기는 미국 시코르스키사(社)가 1975년 제작한 노후 기종인 S-58T였다. 1989년 울릉도에서 경북 영덕으로 비행하다 추락해 13명이 숨진 사고와 동일한 기종이다. 속초·양양·고성 등 3개 시·군이 ‘트랜스헬리’사와 계약을 맺고 산불 진화용 등으로 사용해 왔다. 이 업체는 총 6대의 헬기를 보유 중인 중소기업으로 2011년 창립 이후 추락 사고는 없었다고 한다.

양양 헬기 추락 사고 지점

사망자는 당초 2명으로 알려졌는데 헬기 운항을 담당하는 트랜스헬리 측이 탑승자 명단에서 3명을 빠뜨렸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정부 관계자는 “이륙 전 서울지방항공청 양양공항출장소에 알린 운항 계획에는 2명이 탑승한다고 했는데 이륙장 CC(폐쇄회로)TV를 통해 실제로 5명이 헬기에 탄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여성 탑승자의 경우,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여성 탑승자 중 한 명은 정비사의 지인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경찰이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가운데, 헬기 전문가들은 “기체 결함이나 정비 불량이 사고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헬기가 추락 직후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전소한 것은 이례적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추락 후에도 엔진이 꺼지지 않아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더구나 사고 헬기는 제작된 지 47년이나 된 노후 기종이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헬기의 경우 법적으로 퇴역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아무리 오래된 헬기라도 업체가 계속 운항한다고 하면 강제 퇴역 규정이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실이 산림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3월 기준으로 전국 10개 시·도가 민간 업체로부터 빌려 사용하는 헬기 72대 가운데 28대(39%)는 제작된 지 40년이 넘은 기종이다.

전날 강원도 양양 지역에 순간 최대 풍속으로 초속 13.7m 강풍이 불었다. 이 때문에 사고 헬기가 강풍 속에서 무리한 비행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사고 헬기는 전날인 26일 오전 10시부터 낮 12시까지 비행을 하겠다고 양양공항출장소에 신고했다가 강풍 때문에 비행에 나서지는 않았다”면서 “27일에는 기상 상태가 좋아져 산불 계도 비행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했다.

이번 사고 당시 풍속은 비행에 지장이 없는 초속 1.8m 정도였다고 한다. 최연철 한서대 헬리콥터조종학과 교수는 “당시 기상 조건이 나쁘지 않았고 산불 계도 방송을 할 때는 보통 저속으로 수평 비행을 하기 때문에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작다”고 했다. 다만, 강원도 관계자는 “산속이라 바람이 기체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정밀 조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사고 헬기의 기체가 전소해 정확한 사고 원인이 규명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전망이다. 한 전문가는 “블랙박스는 화재에도 견딜 수 있지만 헬기가 너무 낡아 장착돼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한편, 이날 숨진 20대 정비사 C씨의 아버지는 “매일 안부 전화를 하던 효자를 잃었다”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사고 당일 오전 9시 30분까지만 해도 비행 중이라고 답이 왔는데 1시간 뒤 뉴스를 보고 사고 사실을 알게 됐다”며 “양양 쪽에 숙소를 잡고 매일 힘들게 일하면서도 자기 일을 굉장히 좋아하던 아들이었다”고 했다. 정비사 B씨는 군에서 30여 년간 헬기를 정비한 베테랑이라고 한다. 기장 A씨는 71세 고령이었다. 국토부 관계자는 “A씨는 60세가 넘어 6개월마다 신체 검사를 받는데 지난 9월 검사에서 운항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고 가족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도 사고 수습을 위해 현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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