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의호모커뮤니쿠스] 쩌렁쩌렁한 침묵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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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에서 이란 대표팀의 침묵이 어떤 말보다도 큰 소리를 내며 세계로 퍼졌다.
지난 21일 이란과 잉글랜드의 B조 조별리그전에서 선수들이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중계하던 이란 국영 TV는 국가 제창을 하지 않는 선수들 대신 경기장 전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이란 국가대표 선수들의 '침묵'이 혁명의 속살을 까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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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달은 지난 9월 이란에서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체포, 구금되었다가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국민을 감시하는 전위대인 도덕경찰(moral police)은 22세 아미니가 히잡을 헐렁하게 착용하여 머리카락이 보인다는 이유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 지속적인 격렬한 시위로 이미 수백명이 사망하고 수만명이 다치거나 구속되었다. 신의 이름과 율법으로 인간과 사회를 재단하던 중세 암흑기를 21세기 대명천지에 재현하고 있는 신정국가 이란 당국의 무자비한 무력진압 탓이다. CNN과 BBC 방송은 시위대를 향한 발포를 포함한 가공할 탄압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구금된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증언도 있다. 지구상에 여전히 국민의 몸과 마음을 완전 통제하려는 ‘통치 도그마’를 가진 국가가 있다는 건 비극이다.
이란의 통치체제는 1979년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란 이슬람혁명이 채택한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기반한다. 이 혁명은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혁명’으로도 불린다. 여성의 권리 신장을 포함하는 팔라비의 친서방 서구화 ‘백색혁명’ 정책과 독재에 반대하다가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율법학자 호메이니의 연설을 담은 테이프가 혁명의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테이프의 내용은 팔라비 왕정을 전복하고 이슬람 법학자가 통치하는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자는 것이었다. 유학 시절 필자의 룸메이트였던 이란 유학생과 그의 동료들은 호메이니의 연설 테이프를 들으며 이란 국민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열광했다.
세월이 흘러 이란 국가대표 선수들의 ‘침묵’이 혁명의 속살을 까발리고 있다. 선수들이 귀국하면 반정부 행위자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예상되는 무시무시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침묵과 같은 정교한 소통 행위를 하는 존재이다. 침묵은 몸짓으로 표현하는 비언어 ‘동작 커뮤니케이션 행위’(kinesics)이다. 때로는 말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니는 자유를 향한 ‘말 없는 말’이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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