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내내 ‘오빠’ ‘형님’... 고희 넘긴 歌王 조용필은 더 탄탄해졌다
가왕의 시간은 거꾸로 가고 있었다. 26일 오후 7시 서울 송파구 KSPO돔(올림픽체조경기장)에선 가왕 조용필(72)의 단독콘서트가 열렸다. 2018년 데뷔 50주년 기념콘서트 이후 4년 만의 무대 외출. 그 사이 70대에 접어든 조용필은 이날 2시간 내내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서 총 23곡을 쏟아냈다. 4년 전보다 더욱 탄탄해진 그의 목소리 앞에 세월은 무색해 보였다.
◇팬데믹 후 첫 콘서트…2시간 동안 쏟아낸 23곡
“지난 4년이 40년 같았어요. 가수 생활 시작 후 (공연 공백기가) 가장 길었던 듯 해요. 그립기도 했고, 반갑고, (다시 만나) 기쁘네요.”
이날 13집(1991년) 자작곡 ‘꿈’으로 공연 포문을 연 조용필은 ‘단발머리’·'그대를 사랑해’를 내리 열창하고서 가장 먼저 오랜 만의 관객 재회 소감을 밝혔다. 이날부터 27일, 12월 3·4일 4일간 총 4만석 규모로 열리는 이번 콘서트는 가왕 공연치곤 이례적으로 적은 좌석수로 서울에서만 열려 화제가 됐었다. 그간 조용필은 서울에선 국내 최고 가수만 설 수 있는 잠실올림픽주경기장(약 5만석)에서 주로 공연을 열어왔기 때문. 하지만 올해는 겨울 공연·잠실주경기장 보수공사 계획 등이 겹쳐 그 다음으로 좌석수가 많은 KSPO돔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예매 시작 30분 만에 전석 매진된 표를 어렵게 구해온 이날 관객들은 잘 달아올라 막 김을 내뿜는 주전자와도 같았다. 공연 시작 전 전광판에 광고만 나와도 가왕이 나온줄 알고 “꺅” 비명을 쏟아냈고, 객석 곳곳이 “오빠!” “형님!”이 적힌 손팻말과 형형색색 응원봉으로 넘실거렸다. KBS 라디오 24주 연속 1위를 지켰던 ‘고추잠자리’ 등 유명 곡들은 전주만 듣고도 함성이 터졌다. ‘그대여’ ‘미지의 세계’ 등 조용필이 직접 기타를 메고 밴드 위대한 탄생(기타 최희선·베이스 이태윤·피아노 최태완·키보드 이종욱·드럼 김선중)과 연주 퍼포먼스를 선보일 때는 전석 좌석 공연이었음에도 기립해 방방 뛰는 관객이 속출했다. 가만히 있어도 좌석 발판이 흔들릴 정도였다.
조용필도 팬데믹 기간을 거쳐 오랜 만에 마주한 팬들의 호응을 만끽했다. 이날 얼룩무늬 셔츠에 흰 재킷, 선글라스를 낀 ‘영원한 오빠’의 모습으로 등장해 “여기 올 때 저 사람이 되게 늙었을텐데, 더 말랐을까. 살쪘을까. 궁금하셨을텐데 ‘확찐자’가 됐다”며 “살이 3kg나 쪘고, 대신 주름살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여기서 보니 전부 마스크를 썼다. 저도 쓸까? 마스크 가져와”라며 씨익 웃었다. 객석에선 “안 돼요!” 아우성이 쏟아졌다.
이날 조용필은 최근 2013년 ‘바운스(19집 헬로)’ 이후 9년 만에 발매한 신곡 ‘세렝게티처럼’과 ‘찰나’의 첫 라이브 무대도 선보였다. 내년 가왕의 55주년에 맞춰 선보일 20집의 힌트가 담긴 선공개 곡들. 조용필은 특히 랩처럼 가사를 읊조리며 부른 구간으로 화제를 모은 ‘찰나’를 음원을 삼킨 듯 완벽하게 소화해 감탄을 자아냈다. ‘세렝게티처럼’은 부른 직후 “좋아요?”라며 객석 반응을 살폈다. “항상 노래 녹음할 때는 열심히 하지만 반응이 좋을지도 궁금해 한다. 그런데 마지막에 발표하고선 ‘에라 모르겠다’가 된다”면서도 “그래도 뭐, 신곡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저는 행운인 것 같다”며 웃었다.
조용필은 기존곡에서도 다소 변화된 편곡과 창법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공연 내내 전곡을 원키로 소화했지만 대부분 곡에서 밴딩(목소리의 떨림)을 자제하며 최대한 깔끔하게 끝음을 질러냈다. 오랜 만에 “옛 노래 해봅시다”며 부른 ‘Q’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등은 원곡 느낌을 충실히 살려 편곡했지만, ‘꿈’ ‘추억 속의 재회’ ‘물망초’ 등은 최근 신곡과 함께 앨범에 실리면 ‘리메이크곡’이라 들릴 만큼 세련된 편곡으로 변신시켜 연주했다. 그러다가도 웅장한 교향곡 풍으로 연주한 ‘태양의 눈’, 간결한 피아노 반주로 시작해 8분 길이의 웅장한 록사운드로 이어진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선 조용필다운 절창이 이어졌고, 객석 모두 숨을 죽였다.
가로 6m, 세로 40m에 달하는 직사각형 대형 전광판을 공중에 매달아 연출한 무대 영상도 압권이었다. 특히 신곡 ‘찰나’가 연주될 땐 객석을 향해 뻗은 이 전광판에 화려한 은하수길 영상이 띄워졌고, 곳곳의 작은 전광판에 ‘로드 투(Road to) 20집’이란 문구가 띄워졌다. 이를 등지고 노래하는 조용필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날개를 달고 20집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1968년 록그룹 애트킨스로 데뷔, 반세기를 넘게 이어 온 가왕의 열정은 여전히 굳건했다.
이날 조용필이 마지막 곡 ‘여행을 떠나요’를 마쳤을 때 객석에선 “벌써 끝났어?”란 아쉬움이 터졌다. 한 20대 팬은 계속 빈 무대를 휴대전화로 찍었고 또 다른 70대 팬은 객석을 좀처럼 떠나지 못 했다. 공연장 한편 팬들의 대형 현수막이 그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오빠와 함께한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의 결정적인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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