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막혔는데 대출 수요 증가…은행권, 유동성 지표 악화 우려

최희진 기자 2022. 11. 2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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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자제령’에 은행채 발행 중단·수신 금리도 못 올려
되레 기업 대출은 독려…손발 묶인 은행들, 자금 조달 ‘비상’

은행이 금융당국의 자제령에 은행채 발행을 중단하고 수신금리도 인상하지 못하게 되자 자금을 조달할 길이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대출은 꾸준히 늘어 은행 유동성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이날까지 은행채 발행액은 12조8800억원, 상환액은 17조원으로, 4조1200억원이 순상환됐다.

당국이 지난달 23일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으면서 은행권에 은행채 발행을 자제하라고 요청한 결과다.

지난 9월만 해도 은행채 발행액은 25조8800억원에 달했다. 두 달 만에 발행액이 절반 이상 줄었고, 발행액이 상환액을 앞서던 추세도 멈췄다.

최근 한 달 이상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은 만기가 돌아온 은행채를 상환하기만 했을 뿐 차환 발행한 이력이 없다. 이들 은행의 은행채 발행 실적은 지난달 21일 KB국민은행의 1400억원이 마지막이었다. 대표적 우량 채권인 은행채가 채권 발행 시장을 장악하면, 일반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더 줄면서 회사채의 발행 유찰과 자금 경색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게 당국이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한 배경이다.

은행이 자금을 조달하는 또 다른 수단인 수신금리 인상도 중단됐다. 은행 정기예금으로 시중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계속돼 2금융권의 유동성 문제가 심화하자 당국이 은행권에 ‘자금 조달 경쟁을 자제하라’는 메시지를 거듭 보내고 있어서다.

자금이 들어올 길은 막혔지만 대출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는 게 은행의 고민거리다. 레고랜드 사태로 단기 자금 시장이 경색된 후 당국은 은행권에 적극적인 기업 대출을 주문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은행의 기업 원화 대출 잔액은 1169조2000억원으로, 한 달 새 13조7000억원 증가했다.

당국이 은행채 발행, 수신금리 인상 등 은행의 자금 조달 수단은 묶고 대출은 권장하는 것에 대해 은행권은 난감해하고 있다. 당장 이달 28일부터 올해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 규모만 해도 18조5904억원이다.

은행권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 건전성 지표가 악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채 차환 발행은 어려운데 대출은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며 “이달 초·중순까지 거의 100% 수준이었던 LCR이 최근 90%대 후반으로 내려왔고, 12월에는 90%대 중반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정부는 현재의 자금시장 불안이 단기에 끝날 것으로 가정하고 은행에 양립할 수 없는 주문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자금시장 경색이 계속되면 내년 1분기 이후에는 은행의 체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 자금담당 임원들은 금융위원회와 비공개회의에서 은행채 발행 허용, LCR 기준 강화 유예 외 추가 완화,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규제 완화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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