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만 있다면 떠날 수 있어, 장거리 우주 여행도
‘돛’으로 광속의 10~20% 속도 낸
‘무연료’ 우주 범선 3년 반 비행 끝
추진력 만드는 새로운 방식 ‘주목’
실전 탐사 전 기체 대형화는 과제
미국 공상과학영화 <스타트렉>을 이끄는 건 상반된 캐릭터를 가진 두 인물이다. 급하고 거친 성격의 커크 함장과 신중하며 이성을 앞세우는 스팍 부함장이다.
하지만 <스타트렉>의 또 다른 주인공은 사실 이들이 승선한 우주선인 ‘엔터프라이즈호’이다. 엔터프라이즈호는 ‘워프 드라이브’라는 초광속 비행으로 우주 어디로든 순식간에 이동한다. 이를 통해 등장인물들은 여러 행성을 탐사하며 <스타트렉>의 줄거리를 풀어낸다. 워프 드라이브를 가능하게 하는 건 ‘반물질 엔진’이다. 반물질은 우주를 이루는 ‘물질’과 전기적 성질이 반대다. 이 둘이 만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지금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 기술이다.
현대 우주선은 <스타트렉>과 달리 매우 전통적인 추진 기술을 쓴다. 화학연료를 사용하는 로켓이다. 등장한 지 100년이 다 됐다. 등유와 같은 물질에 불을 붙이면 나오는 추진력을 이용해 우주로 날아간다.
그런데 최근 햇빛을 바람처럼 활용해 지구 밖을 항해하는 우주선인 ‘솔라 세일’이 3년 반의 시험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솔라 세일은 연료가 필요 없는 이른바 ‘우주 범선’이다. 화학 로켓과 완전히 다른 추진 방식이다. 실전 탐사에 쓸 수 있도록 기체를 대형화하는 과제가 남았지만, 우주선의 추진력 발생 방식을 크게 바꿀 후보가 떠오른 것이다.
■ 연료 한 방울 없이 3년 반 비행
지난주 과학기술전문지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은 다국적 비영리 과학단체인 ‘행성협회(Planetary Society)’ 발표를 인용해 이들이 2019년 6월 발사한 우주선인 ‘라이트세일2’가 지구 대기권으로 지난 17일(미국시간) 재진입했다고 전했다. 대기권 재진입은 공기와 마찰하며 기체가 불타 사라졌다는 뜻이다. 예정된 임무 기간은 1년이었지만, 약 3년 반 동안 지구 궤도를 안정적으로 돌았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은 20년 넘게 우주에 떠 있다. 그런데도 라이트세일2의 3년 반 비행이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라이트세일2는 우주로 떠나면서 어떤 연료도 싣지 않았다. 이건 이상한 일이다. 20세기 초반, 현대적인 로켓이 사용될 때부터 지금까지 ‘추진력’의 원천은 화학연료였다. 지난 6월 한국의 누리호는 등유, 이달 미국의 아르테미스 1호는 액체수소를 태워 우주로 떠났다.
라이트세일2는 추진력을 ‘돛’에서 얻었다. 권투경기장만 한 면적인 32㎡의 얇은 사각형 플라스틱 필름을 우주에서 펼쳤다. 이렇게 하면 햇빛을 개별적인 알갱이로 인식한 개념, 즉 ‘광자’를 튕겨낼 수 있다. 이때 생기는 힘으로 추진력을 만든다. 바람을 받아 바다를 항해하는 범선과 원리가 유사하다.
■ 빛 속도 10~20% 비행 가능
이 때문에 라이트세일2와 같은 우주선을 학계에선 ‘솔라 세일’이라고 부른다. 라이트세일2는 햇빛을 튕겨내는 힘으로 지구 대기의 저항력을 이겨내고 고도 600~700㎞를 꾸준히 유지했다.
솔라 세일의 특징을 이용하면 돛으로 받아낼 햇빛이 있는 태양계 어디든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 있다. 애초 연료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다. 강재영 인하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연료를 싣지 않기 때문에 기체를 소형화할 수 있고 이 때문에 각각의 임무를 부여한 우주선 여러 기를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속도도 빠르다. 햇빛을 오래 받을수록 속도가 더 붙기 때문이다. 학계는 광속(초속 30만㎞)의 최대 10~20%까지 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까지 인간이 만든 우주선 가운데 가장 빠른 보이저호나 뉴허라이즌스호는 초속 20㎞ 수준이다. 솔라 세일보다 수천배 느리다.
■ 돛 크기 훨씬 키워야 ‘실전 투입’
하지만 해결할 과제가 많다. 지구 궤도를 넘어 먼 우주를 탐사할 목적으로 발사하려면 돛의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커야 한다. 강 교수는 “돛의 한 변 길이가 100m는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라이트세일2에 장착된 돛의 한 변 길이는 5.6m다. 솔라 세일은 현 단계에선 유인이 아니라 무인 우주선을 염두에 두고 개발 중인데, 그래도 지금보다 훨씬 덩치가 커야 한다는 뜻이다. 강 교수는 “큰 돛은 접거나 말았다가 우주에 진출한 뒤 정확히 펴야 하는데, 그런 기술을 구현하기도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우주 개발 초점이 바뀐 것도 솔라 세일의 실용화 속도를 높이는 데에는 걸림돌이다. 김주형 인하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달과 화성에 사람이 가는 것을 중심으로 재편된 미국의 우주 탐사 방향이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화학 로켓을 벗어난 새로운 추진 기술의 시작이 될 솔라 세일이 언제쯤 현실화할지 이목이 쏠린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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