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 “푸틴 전쟁 첩보 들었지만... 레임덕에 막을 힘 없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2. 11. 2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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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25일(현지 시각) 독일 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내가 지난해 9월 (총리 자리에) 다시 앉는 상황이었다면, 이 문제(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를 더 파고들었을 것”이라고 회한(悔恨) 섞인 고백을 했다. 메르켈 전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알면서도 미리 막지 못했다”는 일각의 비판을 반박하며 지난해 여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보려 했으나, 자신의 ‘임기 말 레임덕’으로 인해 기회를 놓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지난해 여름(7월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상하기 위해 유럽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대화 창구를 만들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는 서방국 사이에 “러시아가 조만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가 돌던 때였다. 메르켈은 이를 미국 워싱턴 방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켈은 “유럽의 대화 창구 창설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힘을 합쳐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이미 나에 대해 ‘가을이 되면 사라질 사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며 “내 제안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들이 있었고, 나는 내 뜻을 관철할 힘이 없었다”고 말했다. 16년간 독일 총리로 지내면서 유럽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퇴임을 눈앞에 두자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메르켈은 작년 8월 모스크바 방문 때도 자신의 존재감이 확실히 떨어졌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이전의 만남에서 푸틴과 나는 대체로 독대(獨對)를 했지만, 푸틴은 그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데리고 나왔다”면서 “(푸틴이 나에 대해) ‘권력 정치의 측면에서 너는 끝났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오직 권력만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슈피겔은 “메르켈 전 총리는 16년 총리 재임 기간에 푸틴 대통령을 60여 차례 만났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을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었던 것이다. 푸틴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 역시 지난 3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푸틴에게 전쟁 중단 설득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메르켈은 “다른 이들(유럽 지도자들)에게 ‘(푸틴과 협상에) 왜 나서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내게는 너무 큰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지만, 유럽의 지도자 중 누구도 자신이 했던 역할을 떠맡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을 막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부족했다는 ‘책임론’에 대한 해명이자, 다른 유럽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슈피겔은 “메르켈은 1년 전 자유 세계의 영웅으로 떠나며 ‘역할 모델’로 추앙받았지만, 이제는 (과거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 사람으로, 위기의 성공적 관리자에서 위기의 원인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전했다. 메르켈은 자신이 2008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해 러시아의 침공 여지를 만들었고, 러시아산 천연가스와 원유에 지나치게 의존해 유럽 에너지 위기를 초래했다는 등 비판에 대해서도 “오해를 받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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