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딸 바다에서 다시 품어온 ‘사랑 이야기’ 감동입니다”

한겨레 2022. 11. 2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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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합니다][기억합니다] ‘고맙다 안나야’ 전시 연 호웅형에게
2015년 6월 필리핀 세부 모알보알해안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함께 즐긴 김호웅(맨오른쪽)씨와 두 딸. 김호웅씨 제공
2004년 여름 북한산 나들이 때 함께한 김호웅씨의 부인과 두 딸. 김호웅씨 제공

10년 전 아내 이어 5년 전 큰딸 ‘사고’
자책감으로 수년간 침묵했던 아빠
수중촬영 함께 했던 바다 속으로
“생전 아내와 딸 안았을 때처럼 푸근”

연달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있다. 10년 전 어느 겨울 아침 출근길에 나섰던 아내를, 시간이 흘러 5년 전 어느 날 미국에서 유학중이던 큰딸을 그렇게 떠난 보낸 사람이다. 모두 교통사고였다. 그 순간마다 아내와 딸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남편이자 아빠였던 한 남자는 무너진 가슴을 부여잡은 채 세월을 묻기 시작했다.

올해 초 봄꽃들이 망울을 틔워낼 즈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볼까?”

세상을 묻고 지낸 그 남자였다. 기쁘게 자리를 만들었다. ‘사랑을 잃은’ 사람인 그의 얼굴은 쑥스러운 미소가 배시시 담겨있었다. 여전히 말수는 적고 밭은 숫기도 변함이 없는데 어딘가 모르게 가볍고 푸근했다. 길게 흐트러진 백발의 머리칼과 느릿한 걸음새도 그대로요 좁고 마른 어깨도 그대로인데 분명 단단히 채워진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혹여 툭 건들면 무너질까 싶은 염려는 되려 내 새가슴 탓이었다. 두 번의 장례식장에서 본 그의 허망한 눈빛을 여전히 잊을 수 없어서였을 게다.

못 보던 사이 그는 분명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보낸 것이 틀림없었다. 예감 그대로였다. 잃어버린 품을 찾는 시간들을 켜켜이 쌓아왔다는 그 여정을 듣는 일은 온전히 감동 그 자체였다. 먼저 떠난 큰딸 ‘안나’를 기억하려는, 아니 다시 품을 수 있었다는 그의 이야기들을 우리 두 사람을 울거나 웃으며 나누었다. 봄꽃을 품고 피어오른 이야기들은 여름과 가을을 거치는 동안 잘 숙성해 끓인 된장국처럼 구수하게 익어갔다. 그리고 지난 11월 22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갤러리 류가헌에서 <고맙다 안나야>라는 제목의 전시회로 펼쳐지게 되었다. 안나는 5년 전 자신의 스물아홉번 째 생일을 하루 앞두고 세상을 떠난 큰딸의 이름이다. 안나의 아빠이자 이 전시를 연 주인공의 이름은 ‘김호웅’이다.

2015년 6월 필리핀 세부 모알보알해안에서 김호웅씨가 찍은 큰딸 안나의 스쿠버다이빙 모습. 김호웅씨 제공
2017년 큰딸 안나가 유학중이던 미국으로 떠나는 인천공항에서 탑승하러 가고 있다. 아빠 김호웅씨가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김호웅씨 제공

일기처럼 남긴 딸의 스케치 찾아
새달 4일까지 류가헌에서 사진·그림전

내년 3월 정년퇴임을 앞둔 그는 경력 33년 차의 현역 언론사 사진기자이며 재직기간 내내 수중사진 전문기자로 이름을 알려왔다. 그리고 나는 그를 ‘형’이라 부른 지 오래된 꽤 절친한 사이이다. 호웅이 형과 고인이 된 지 5년 된 그의 딸 안나가 함께 펼쳐놓은 이 특별한 상찬의 자리를 설명하기란 쉽지가 않다. 이 글을 읽히길 바라는 마음 못지않게 이 전시 <고맙다 안나야>가 널리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크다. 우선 형에게 지난 10년 그리고 5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고맙다 안나야>를 ‘절감’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호웅이 형 홀로 감당한 그 겹겹의 시간을 상상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 상상은 연민을 동반한 위로의 시간일 필요는 없다. 형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애초부터 아니었기에 그 겹겹의 시간 내내 형은 고요히 침묵했다. 무언의 세월이었음에도 그 시간이 무너져 주저앉은 침잠의 나락이 아니었다. 아니 그 고통의 바닥을 훓어가며 견디는 시간이었다. 언젠가부터 깊은 바다를 유영하는 범고래처럼 형은 끊임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택한 유영지는 오래 전부터 품을 들였던 바다였다. 국내외를 특정하지 않고 찾아간 바다는 그의 안식처가 되기 시작했다. 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끝없이 들고 또 들었다.

“바다 안에 들어가면 너무 편해. 그리고 아주 조용하거든. 내 숨에서 나오는 거품소리 말고는 너무 고요해. 세상이 다 내 세상 같지. 오롯이 나 혼자 떠다니면서 그 고요에 나를 맡기게 돼. 말할 것도 없고 들을 것도 없어. 그게 너무 좋거든. 진짜 푸근해.”

“바다는 늘 줄 만큼만 줘. 파도가 너무 험하면 들어오지 말라는 거지.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거지. 신기한 게 내가 가고 싶을 때면 항상 허락을 해주는 거 같아. 그렇게 들어가면 바다가 나를 안아주는 느낌이 들지. 아내랑 큰딸을 안았을 때랑 같아.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게 돼. 나(의 슬픔) 조차 잊어버리게 되더라.”

잃었다고 여겼던 그 따사로운 품을 다시 찾은 바다는 바로 제주도 문섬이다. 다이버들의 성지로 불리우는 문섬은 작은 새끼섬을 하나 품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지난 2년 동안 수도없이 새끼를 품은 문섬을 찾아 그 바다에 몸을 들였다. 처음엔 형형색색의 연산호 무리에 시선을 모았지만 우연히 산란 중인 문어를 보게 되면서 한순간 넋을 잃었다고 형은 말한다. 식음을 전폐하고 알을 지키는 모습은 사람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더욱 가까이 다가가서 최대한 숨을 참아가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그 하얀 알 속에 몸통이 보이고 눈도 보이기 시작했다. 문어만이 아니었다. 흰동가리, 자리돔, 줄도화돔 등등. 수많은 바다속 생물들이 알을 낳고 온힘을 다해 품어 살피는 그 광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꼬박 2년 동안 몰입에 몰입을 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 과정은 잃은 것이 많은 형이 당신 스스로 이루기 시작한 자기회복의 첫걸음이자 신호라 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은 이들이 전시장을 찾는다면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

12월4일까지 열리는 ‘고맙다 안나야’ 전시 포스터. 큰딸 안나의 스케치(왼쪽 위)와 아빠 김호웅씨의 수중 사진(왼쪽 아래). 갤러리 류가헌 제공
김호웅씨가 제주 서귀포 문섬 앞바다에서 찍은 산란 중인 문어의 사진. 김호웅씨 제공
큰딸 안나가 일기처럼 남겨놓은 스케치북에 있는 엄마의 얼굴 그림. 김호웅씨 제공

두 번째 자기회복의 동기는 잃어버린 딸 안나다.

지난해 가을 형의 꿈에 안나가 나타났다. 알 듯 모를 듯한 안나의 손짓에 잠을 깬 형은 다음 날 바로 아내와 안나의 안식처인 용산 베다니의 집 납골당을 찾아갔다. 그런데 유리 앞에 붙여둔 안나의 사진이 사라진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꿈에 안나가 나타난 것일까. 호웅이형은 잃었으나 품고 있는 안나의 흔적들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던 안나는 성악을 부전공으로 할 만큼 노래를 잘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깊고 정중했다. 볼리비아의 가난한 소년에게 오래도록 정기후원을 하기도 했다. 다재다능한 그러면서도 타인을 위한 배려와 존중이 몸에 배인 청년이었다. 형은 안나가 남긴 유품 속에서 틈나는 대로 그렸다는 그림들이 눈에 밟혔다. 생전 안나는 그날그날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스케치북에 일기장처럼 남겼다. 그 그림들을 보면서 형은 다시 안나를 상상했다. 펼치지 못한 채 세상을 졌으나 이미 펼쳐낸 것이 너무도 많은 딸이었다. 문섬이 품은 새끼섬과 그 아래 바다 생물들이 품은 알들은 호웅이 형이 안나를 다시 품게 만든 바다의 선물이었다.

“안나가 너무 고마워. 아빠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잖아. 문섬에 갈 때마다 안나를 만나는 거와 다름이 없었거든. 그러니 신이 나는거지. 산란 중인 생물들을 사진찍을 때면 완전히 몰입되서 너무 좋았거든. 알이 부화해서 꼬리를 젓는데 안나 어릴 때 보던 모습이랑 똑같은거야. 아주 행복했어.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말이야. 내가 이렇게 들뜨는 순간이 다시 오다니 그게 너무 신기해.”

김호웅 사진전 <고맙다 안나야>는 아빠와 딸이 다시 만나 나누는 사랑 이야기다. 그리고 손길과 손길이 다시 만난 회복의 밑그림이다. 안나가 남기고 간 손때 묻은 스케치북과 아빠가 숨을 죽이며 15미터 아래 바다에서 품은 시선이 한데 모여 다시 사랑의 대화를 이룬 상찬의 잔칫상이다. 또한 아빠와 안나가 다시 만나 나눈 속 깊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건네는 치유와 회복의 신고식이다. 따사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딸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과 다시 세상을 떠날 때, 그 곁에 없었다고 자신을 질책하던 아빠는 너를 떠나보내지 않았다고 너로 인해 다시 웃을 수 있게 되었다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한다.

하늘의 엄마 곁에 있는 안나는 아빠가 자신을 기억하는 이 자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빠가 직접 찍은 사진들. 세상에 태어나 갓 눈을 뗀 아기 시절에서부터, 동생과 함께 말괄량이짓을 하거나 학교를 졸업하고 함께 여행을 하면서 포착된 자신의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안나는 어떤 감흥에 젖어들었을까. 특히 일기장처럼 순간적 감정들을 담아 그려둔 자신의 그림들을 두루 꺼내 고운 액자에 끼워 전시장 가득 채워둔 아빠의 마음을 안나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빠 김호웅만이 할 수 있는, 안나를 기억하는 이 새로운 자리의 감동이 여전히 가슴을 울린다. 올 한해 내내 호웅이 형과 많은 만남의 시간들이 있었다. 이 전시를 기획하고 그 형태와 구성을 이루는 것에 있어 나는 다시한번 사진의 치유적 역할과 그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잃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기존의 내 생각은 이제 ‘다시 사랑을 찾은’ 사람으로 호웅이 형을 바꿔 부르게 되었다. 또한 형의 기대대로 나는 안나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 듯 싶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났지만 안나가 남긴 소중한 삶의 흔적들을 그리고 호웅이 형이 보여준 사랑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법을 얻고 배운 것이다. 전시 오프닝 행사가 열린 지난 22일 저녁. 수많은 이들의 감동 가득한 시선을 머금은 호웅이 형은 내게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지금 참 좋아.”

아빠와 안나가 다시 만나 전하는 소중한 사랑이야기 <고맙다 안나야>는 12월4일까지 열린다.

임종진/사진치유자·사진작가

원고료를 드립니다-<한겨레>가 어언 35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mkyoung60@hanmail.net),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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