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지방선거 집권당 참패…차이잉원, 당 주석직 사퇴

이종섭 기자 2022. 11. 2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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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위협’ 호소한 민진당, 코로나 대응 등 민생문제 놓쳐
국민당의 ‘정권 심판론’에 무릎…2024년 총통 선거 ‘빨간불’
타이베이 시장엔 장제스 증손자…단숨에 유력 주자로 부상

대만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이 참패했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사진)은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당 주석직에서 물러났다. 민진당은 중국의 위협에 맞선 민심 결집을 호소했으나 유권자들은 민진당의 민생 문제 대응 실패를 심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27일 대만 중앙선거위원회가 공개한 개표 결과를 보면 전날 치러진 ‘지방공직인원 선거’에서 민진당은 21곳의 현(縣)·시장 선거 중 5곳에서 승리하는 데 그쳤다. 반면 제1야당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은 13곳의 단체장 자리를 석권했고 무소속 후보가 2곳, 대만민중당(민중당) 후보가 1곳에서 당선됐다.

초라한 지방선거 성적표는 집권 민진당에 뼈아픈 결과다. 민진당은 6명의 현·시장이 당선된 4년 전 지방선거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얻었다. 1986년 창당 이후 최악의 결과다. 이번 선거가 현 정부와 집권당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 만큼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차이 총통의 국정운영 동력 상실과 레임덕도 불가피해 보인다.

차이 총통은 전날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국민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모든 책임을 지고 민진당 주석직에서 즉각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선거 이후 쑤전창(蘇貞昌) 행정원장(국무총리 격)도 사의를 표명했지만 반려했다고 밝혔다.

‘승리의 주먹’ 26일 대만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당 장완안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불끈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장 당선인은 장제스 대만 초대 총통의 증손자이자 장징궈 전 총통의 손자이다. 타이베이 | AP연합뉴스

반면 제1야당인 국민당은 지방선거 승리의 여세를 몰아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총통 선거 준비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당의 지방선거 성적도 15명의 현·시장 당선인을 배출한 2018년 선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하는 6대 직할시 중 4곳에서 승리하며 차기 총통 선거에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특히 두 번이나 무소속 후보에게 내줬던 수도 타이베이 시장 자리를 8년 만에 되찾아 온 것이 큰 성과다.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서는 국민당 장완안(蔣萬安) 후보가 42.29%의 득표율로 차이잉원 정부 위생복리부장 출신인 천스중(陳時中) 민진당 후보(31.93%)를 누르고 당선됐다. 대를 이어 집권한 장제스(蔣介石) 대만 초대 총통의 증손자이자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손자인 장 당선인은 올해 만 43세로 역대 최연소 타이베이 시장 당선 기록을 세우면서 향후 국민당의 유력한 스타 정치인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중국의 위협에 맞선 민심 결집을 호소한 민진당의 선거 전략이 코로나19 대응 실패 등 민생 문제에 대한 정권 심판론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이 총통은 선거 막판 “전 세계가 중국의 군사훈련과 공산당 20차 당 대회 이후 진행되는 이번 선거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대만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 결심을 보여주자”고 호소했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이번 선거에서 야당의 승리는 민진당의 ‘중국 공포’ 카드가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준다”며 “차이 총통이 선거 막판 무력통일을 하려는 중국에 맞서 대만을 지키자고 호소했지만 방역 정책 등 내정 문제에 대한 국민 불만을 이기지 못했다”고 전했다. 왕쿵이 대만국제전략연구회 회장은 “대만은 처음에 코로나19 대응에서 국제적 찬사를 받았지만 유권자들은 정부가 초반에 충분한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높은 사망률로 이어졌다고 본다”면서 “유권자들은 정부가 내세운 소위 중국 위협 카드에도 설득되지 않았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말했다.

지난 두 차례 총통 선거에서 연패했던 국민당은 이번 선거 승리로 2024년 1월 총통 선거에서 정권 탈환을 위한 동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다음 총통 선거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당은 2018년에도 지방선거에서 압승했지만 2020년 총통 선거에서 차이 총통의 재선을 막지 못한 바 있다. 중앙통신사는 “이번 선거로 국민당은 2024년 정권 탈환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게 됐지만 어떻게 ‘친중 꼬리표’를 떼고 대미관계를 돌파할지가 여전한 숙제”라고 짚었다. 홍콩 명보는 “지방선거 결과를 토대로 총통 선거 결과를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그런 판단은 완전히 틀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며 대만 독립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27일 주펑롄 중국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고 잘살아야 한다는 대만 내 주류 민의가 반영된 것”이라며 “대만 독립 분열과 외부세력의 간섭을 단호히 반대하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밝은 미래를 함께 창조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서는 현재 각각 만 20세와 23세로 돼 있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자의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도 함께 진행됐지만 통과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결됐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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