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결과, 학생 집 화장실 개수로도 예측 가능” 불평등한 잣대 버리는 미국 대학들[기울어진 운동장, 대입 교육]

유경선·강연주 기자 2022. 11. 27.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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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한국과 미국, 같은 고민 정반대 해법
워싱턴대학교 바델캠퍼스 입학사정관 데니스 가고인, 워싱턴대학교 바델캠퍼스 교수 웨인 아우
대입에 SAT 반영률 확대하는 건
소수 인종·저소득층 차별하는 격

“1900년대 초 SAT를 만든 사람들은 ‘누구나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공정한 시험’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SAT는 줄곧 ‘부유한 백인’이 유리하다는 결과를 일관되게 보여왔습니다.” 미국 워싱턴주 워싱턴대학교 바델캠퍼스의 웨인 아우 교수는 지난 21일(현지시간) 자신의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아우 교수는 비판교육학 분야 연구자로, 교육과 불평등에 관한 연구·저술 활동을 해왔다. 시험 점수에 의존하는 ‘시험만능주의’가 어떻게 불평등을 고착화하는지 책 <설계된 불평등>(아래 사진)에서 다뤘다.

한국 사회에서 ‘정시냐 수시냐’는 논의가 진자처럼 반복되는 모습과 비슷하게 미국에선 SAT(대학 입학 자격시험)가 과연 공정한 대학 입학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공정성’이 화두인 한국 사회에서 한날한시에 시험을 치르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가장 공정한 입시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고위층 자녀의 입시·교육 스캔들을 거치며 학생의 활동 내역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수시 전형에 사회적 불신이 커진 탓이다. 이 흐름을 타고 대학 입시에서 정시 선발 비율이 확대되고 있다.

반면 미국 대학들은 오히려 SAT 점수를 입시에 반영하지 않거나 점수 제출을 선택사항으로 전환하고 있다. SAT는 표준화된 시험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수능과 비견된다. 교육과 불평등에 관한 문제의식은 같지만 두 나라는 왜 정반대의 해법을 추구할까. 미국 사회에선 어떤 과정을 거쳐 ‘탈SAT’ 흐름이 형성되었는지 현직 연구자와 입학사정관들에게 물었다. 미국 대학 입시를 겪은 한인 유학생들의 생각도 들어봤다.

“SAT는 ‘자본 차이 측정’ 시험일 뿐”

아우 교수는 SAT가 줄곧 ‘특정 집단에만 유리한 시험’이었다는 것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고 말했다. 특정 집단이란 곧 부유한 백인이다. 한국과 중국 등 교육열이 높은 아시아 국가 이민자들도 SAT 경쟁에서 비교우위에 있다. SAT 점수는 인종뿐 아니라 가계소득과도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아우 교수는 시험 응시자의 가구소득과 부모의 학력으로 SAT 점수를 추론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SAT는 자본의 차이를 측정하는 시험일 뿐”이라고도 했다.

“시험 제작자들은 공정하고 평등한 시험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 결과는 인종과 가구소득에 의한 차별이었습니다. 만일 100명이 SAT를 치른다고 할 때, 응시자들의 가구소득과 부모들의 대졸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면 100명 중 몇 명이 SAT 합격선을 통과할지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요. 소득·인종·부모 학력과 SAT 점수 간 인과관계가 입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우 교수는 “높은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의 자녀가 시험을 더 잘 준비할 수밖에 없다”며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경력 18년차 입학사정관인 데니스 가고인의 의견도 같았다. 그는 시애틀퍼시픽대학교과 곤자가대학교 등을 거쳐 3년 전부터 워싱턴대 바델캠퍼스에서 일하고 있다. 가고인 사정관은 “SAT 같은 표준화된 시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지표가 ‘집에 있는 화장실 개수’라는 연구도 있다”고 했다. 집에 화장실이 여러 개일수록, 즉 집이 크고 부유할수록 높은 SAT 점수를 얻는다는 것이다. 가고인 사정관은 “백인 남성 집단에 특히 유리한 시험이고, SAT 점수 반영률을 높이는 것은 결국 소수자·비백인·저소득층을 차별하는 것이 된다”고 했다.

캘리포니아대학, SAT 제출 의무 폐지

SAT가 과연 학생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시험인지를 두고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아우 교수는 “SAT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기술’을 측정하는 도구일 뿐”이라며 “SAT 시험은 학생 전체의 아주 작은 한 단면(slice)을 평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학생의 신체 상태, 시험장의 온도와 습도 등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는 연구가 있다”고 했다. 각종 변수의 영향을 받는 한 번 시험으로 응시자를 온전히 평가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SAT가 학생에게 잘 맞는 대학을 매칭하는 데 고작 25%의 정확도를 보일 뿐이라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가고인 사정관은 “SAT가 보다 다양한 지표를 평가할 수 있는 시험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탈SAT’ 흐름이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미국 대학들이 SAT 점수를 보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며 더 많은 대학들이 SAT 점수 제출 의무를 폐지하거나 선택사항으로 전환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는 2020년 SAT 점수 제출 의무 폐지 방침을 발표하면서 “그동안의 대입 시험이 특권층을 위한 것이었다”고 자성했다. 워싱턴대도 코로나 유행 전부터 SAT 점수 제출 의무를 폐지했다. 아우 교수는 “최소 3년 전부터 학생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입학사정관제가 더 공평한 경기장
잠재력 등 ‘종합적 면모’ 평가 위해
한국의 학생부 같은 포트폴리오 봐

“‘포트폴리오 방식’으로 모두에게 기회”

SAT의 빈자리는 ‘포트폴리오’가 대체하고 있다. 학생이 쓴 에세이, 고등학교에서 활동한 각종 비교과 내역, 한국의 ‘내신’에 해당하는 GPA(평균 평점) 등을 각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한국의 학생부종합전형과 유사하다.

아우 교수는 “2년간의 학교 성적, 활동 내역, 에세이를 종합적으로 보는 것이 당연히 (SAT 점수에 비해) 더 제대로 된 평가”라며 “대학에 지원한 학생의 고등학교 생활 전반, 그의 생각과 가치관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입학사정관제와 유사한 한국의 학생부종합전형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외부 대회 수상·봉사활동·논문 저술 등의 활동을 기재하는 것이 불공정 경쟁을 유발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후 이 전형에서 수상·논문·봉사활동 실적을 기재할 수 없게 됐다. 2024학년도부터는 자기소개서도 폐지된다. 한국의 상황에 빗대 ‘과연 입학사정관제가 공정한 입시인지’ 물었다. 아우 교수와 가고인 사정관 모두 “저소득층 또는 소수집단 학생이 평가받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이 제도가 유일하다”고 했다.

“SAT 점수만을 보는 방식에는 다른 여지가 없습니다. 점수에 따라 ‘컷오프’되면 끝이죠. 하지만 입학사정관제를 따르면 SAT에서 불리한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든 입학할 가능성을 얻어요. 입학사정관의 재량이 작용할 수 있으니까요.”

아우 교수는 “불공정한 요소는 어디에나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입학사정관제 방식은) 상대적으로 덜 불평등하다”고 했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처지는 학생들에게서 가정 환경 이야기, 그가 한 경험, 집에서 겪은 투쟁사를 말해볼 기회를 주고 그걸 고려할 수 있는 방식은 이게 유일하다”는 것이다.

가고인 사정관도 “사회경제적 배경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다른 잠재력이나 가능성이 있는지 평가할 방법은 입학사정관제뿐”이라며 “SAT 점수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 더 공평한 경기장을 만든다”고 했다. 또 “지원서 하나를 최소 3명의 입학사정관이 본다”면서 “여럿의 견해와 관점을 반영할 수 있는 ‘위원회 방식’이 불공정 경쟁 우려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불평등연구회 소속 최율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지방 고교에서 내신 1등급인 학생이 특목고에서 내신 7등급인 학생과 정시에서 경쟁하면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입학사정관이 평가한다면 적어도 기회는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최성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수시는 입시스캔들 등 시행착오를 거쳤다”며 “입학사정관 평가 방식을 정비해 나가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만들 땐 ‘공정한 시험’ 목표했지만
SAT는 줄곧 부유한 백인에 유리
응시자 부모 소득·학력 파악하면
누가 합격선 통과할지 알 수 있어
학생의 단면만으로 평가하는 셈

“한국의 수능, 공평하지만 공정하진 않아”

“수능은 공평하지만, 공정하지는 않죠.”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 윤예지씨(21)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수능에 대한 거대한 공포를 느꼈다.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내신 시험은 찰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한 문제를 틀리면 목표에서 열 발짝 멀어졌다. 이 두려움을 극대화한 것이 수능이었다. “4년이나 남은 시험인데, 수능을 생각하면 두려웠어요. 18년 인생을 하루에 다 건다는 것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같은 대학서 교육학을 공부하는 강다은씨(20)도 “중학교 1학년 때 첫 내신 시험을 보고 나니 4년 뒤 수능이 너무 까마득하고 막막했다”고 했다.

두 사람은 SAT를 봐서 대학에 입학했지만 SAT 점수만을 입시에 활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데 동의했다. 강씨는 “어린 학생들을 점수로만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가 없다. 숫자에만 치중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윤씨는 “SAT는 시험지를 뒷돈 주고 거래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또 “SAT는 그나마 1년에 여러 차례 보지만 수능은 1년에 한 번만 보지 않나”라며 “작은 실험을 해도 표본을 여러 개 만드는데, 1년에 한 차례 치르는 시험으로 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유학생 김형준씨(19)는 SAT 점수를 내지 않고 워싱턴대에 합격했다. 김씨는 “한 달에 500만원 하는 SAT 학원을 다녔지만, 기계적인 훈련만 시키는 방식에 회의감을 느껴 시험을 보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SAT라는 기준점을 허물고 나서 학생들을 받아도 성과가 괜찮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미국 대학들이 더 이상 점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강씨는 대학 입시가 “한 사람의 경험, 생각, 성실도를 다 같이 평가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했다. 윤씨도 “한국도 미국 입시처럼 고등학교 활동 내역과 수능 점수를 종합적으로 보면서 지원자를 판단하면 좋겠다”며 “활동 내역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데 평가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맞지, 불공정 우려가 있다고 아예 정시로 전환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아우 교수와 가고인 사정관은 ‘종합적 평가’를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두 사람은 한국과 미국의 교육정책을 단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다만 수능이나 SAT 같은 ‘표준화된 시험’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고 했다. 아우 교수는 “정량평가·정성평가 중 양자택일할 것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인 평가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시험 점수와 포트폴리오 방식을 모두 고려할 시스템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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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 글·사진 유경선·강연주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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