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두고 간 분신들 고난 이기고 삶을 꽃피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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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곧잘하는 큰아들이 부르는 가곡을 듣고 있자니, 젊은 시절 역시나 노래를 잘했던 형이 생각났다 . 형은 노래뿐만 아니라 글씨도 잘 쓰고 , 시도 잘 짓고 , 공부도 잘했다 .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고생을 많이 했다 . 내가 가까스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나보다 8 살 많은 형 덕분이었다 . 그런 형이 어느날부터 소식이 끊겼다.
내가 제대한 이후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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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곧잘하는 큰아들이 부르는 가곡을 듣고 있자니, 젊은 시절 역시나 노래를 잘했던 형이 생각났다 . 형은 노래뿐만 아니라 글씨도 잘 쓰고 , 시도 잘 짓고 , 공부도 잘했다 .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고생을 많이 했다 . 내가 가까스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도 나보다 8 살 많은 형 덕분이었다 . 그런 형이 어느날부터 소식이 끊겼다. 내가 제대한 이후였던가. 사회생활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수십 년 동안 연락 두절이 되었다 .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오직 하나뿐인 혈육인데 이렇게 생이별하다니! 너무 외롭고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이 사무쳤다 . 나 혼자 삶에 매이고 바빠서 정신이 없다가 조금 한가한 날이 되면 도대체 생사를 알 수 없는 형이 야속하고 걱정되고 마음이 터질 듯 괴로워졌다 . 큰아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훌쩍거리고 있었다 . “ 형 어디 있는 거여 ~! 소식도 없고 , 너무 보고 싶다 . 어디서 뭘 하고 있어 . 연락 좀 해 . 좀 만나자 ~!” 한 번 터진 울음보는 그칠 줄 몰랐다 .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흑흑거리며 울고 또 울었다 . 올해가 형의 칠순인데 밥이라도 잘 챙겨 먹고 있는가 .’
그 순간 몸을 뒤척이는데 잠에서 깨는 것이 아닌가 . 아 ! 넋을 잃고 천장만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 눈물이 주르륵 흘러 베개에 떨어졌다 . 육십 평생 꿈에서 깨어나 눈물 흘리기는 처음이었다 . 형은 30년도 훨씬 전, 37살 이른 나이에 하늘로 떠났는데, 왜 나는 아직도 꿈 속에서 헤매며 형을 찾고 있는가 . 아직도 나의 무의식은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
내가 12살 때 어머니는 43살로 돌아가셨다 . 지독한 가난으로 영양실조와 알 수 없는 병마에 시달리다 눈도 감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 형은 그때 갓 스무 살이었다 . 삼일장을 치르고 단칸방에서 아버지와 형과 나 , 삼부자가 피곤함에 절어 잤다 . 다음 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났는데 형이 꿈 이야기를 했다 . 형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동생을 잘 키워라” 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린 내가 눈에 밟혀 눈을 감지 못하셨나 보다 .
어머니의 유언으로 동생 양육을 부탁받았으니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 형은 그 부탁을 잘 수행하였다 . 동생을 잘 가르쳐 어엿한 직장인 ( 은행원 ) 을 만들었으니 천국에서 어머니를 만나 칭찬받았을 거다 . 어머니와 형을 생각하면 이생에서 고생만 하다 떠나서 참으로 불쌍하고 애처롭다 . 나 역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너무 일찍 헤어져서 외로운 세월을 많이도 헤치며 살았다 . 황혼에 드는 나이가 되니 외로움이 그리움 되어 세상에 없는 형을 찾고 있나보다 .
나는 1977 년 다니던 은행을 휴직하고 군대에 갔다 . 하사관 훈련을 받던 그해 11 월 , 이리역 ( 익산역 ) 열차 폭발 사고가 났다 . 59 명이나 죽고 많은 사람이 다치고 재산 피해도 났다 형은 사고 즈음 익산역 근처에서 조그만 장사를 하고 있었다 .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사고 피해 보상금을 받아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 그렇게 운좋게 빈민의 굴레를 벗어나는 이들을 눈 앞에서 보면서, 정작 자신은 돈이 없어 발만 동동거리다 화병이 생긴 것 같았다 . 속상한 마음에 약한 술은 얼마나 마셨을까 ? 형은 군에 있는 나에게 그 괴로운 심경을 전혀 말하지 않았다 . 1980 년 군복무를 마친 내가 서울로 복직하여 타향에 적응하느라 바쁜 와중에 형의 병은 깊어갔다 . 그래도 젊은 나이이니 ‘죽을 병’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1984 년 여름 , 형의 부고를 받았다 . 험하고 힘든 세상에 유일한 형제요 , 친구처럼 의지하고 살면서 ' 언젠가는 우리도 남들처럼 잘 살겠지 !' 희망을 붙들고 살았는데 철석같이 믿던 기둥이 무너진 기분이었다 . 나는 그때 ‘삶은 허무한 것이구나 , 허망하구나 , 하늘은 있는 것인가 ?' 처음으로 세상을 회의했다 .
그렇게 형이 떠난 뒤 형수와 두 아들은 30 년 고난의 길을 헤치며 살았다 . 지난 6월 형의 둘째 아들, 5살 때 아버지를 여읜 내 조카가 어려운 성장기를 잘 극복하고 한 육군 부대의 대대장이 되었다 . 취임식 때 형을 대신하여 우리 부부가 참석했다 . 연병장 사열대에서 늠름한 조카와 부대원들의 사열을 받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형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서 있다니…. 5년 전 꿨던 꿈이 다시 생각나면서 비감한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 취임식이 끝나고 피로연에서 준비해 간 축시를 낭독했다 . ‘ 고난을 이긴 자여 ! 이젠 꽃을 피워라! '
광명/조형식·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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