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나라 [백승주의 언어의 서식지]

입력 2022. 11. 27. 20:00 수정 2022. 11. 28.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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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현관문을 연다. 마이클 잭슨이다. 나는 영어로 마이클에게 몇 번째 거짓말인지 묻는다. 마이클은 예전의 그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가 나의 3만7,101번째 거짓말이라고 말해준다. 나는 마이클을 거실로 안내한다. 어렴풋이 오래전 어떤 꼬마에게 마이클 잭슨이 살아 있다고 거짓말한 게 기억난다.

나는 마이클에게 환영한다고, 언제부터인가 내가 한 거짓말이 실재가 되어 나를 찾아오는데, 지금까지 내가 했던 최고의 거짓말은 당신이라고 말한다. 빌리 진의 아들이 누구의 아이인지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창문 밖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가만 보니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밖으로 나가 물으니, 자신들은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 했던 거짓말들이란다. 기억난다.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거짓말했다. "아빠는 고등학교 때 아이돌급으로 인기가 많아서, 복도를 지나가면 창문에 붙어서 몰래 아빠를 훔쳐보는 여학생이 수십 명이었지. 하하."

고등학교 동창들과 즐거운 추억을 나눈 후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양복을 차려입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두리번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한다. 하이, 아임 날리면.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오, 리얼?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의 거짓말이 나를 잘못 찾아오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나는 짧은 영어로 날리면 대통령에게 잘못 찾아오셨다고, 거짓말의 주인은 서울 용산에 있으니 그리로 가보시라고 안내한다. 이것 참 난리도 아니구만.

거실에 앉아 마이클과 뉴스를 시청한다. TV에서는 한국 국회의원임을 주장하는 미국 국회의원들의 시위로 여의도 일대가 혼잡하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혀를 끌끌 차고 있는데 누군가 또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보니, 늑대와 마녀가 가수 이랑의 노래 '늑대가 나타났다'를 열창하고 있다. 나는 죄송하지만 잘못 찾아오신 것 같다고, 정부서울청사의 행안부로 가 보시라고 말한다. 노래를 부르며 떠나는 늑대와 마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노래 정말 좋다고, 거짓말 아니라고 중얼거린다. 똑똑. 또 누가… 아 여기까지만 하자. 나에게 잘못 찾아온 거짓말에 대해 쓰자면 끝이 없으니까.

사실 이 글은 에트가르 케레트의 초단편 소설 '갑자기 누가 문을 두드린다'와 '거짓말 나라'를 패러디한 것이다. 케레트 소설의 특징을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기이'와 '환상'. 그런 그의 소설을 여기서 패러디하는 이유는 우리의 정치 언어가 만들어내는 현실이 케레트의 소설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아, '환상'을 '환장'으로 바꿔야 하는 것 정도의 차이는 있다.

정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이 거론되는 개념은 조지 오웰이 만든 '더블 스피크'(double speak)라는 말이다. 더블 스피크는 자신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 현실을 왜곡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언어 사용 방식으로 고문을 '선진 심문'으로, 플랫폼 노동을 '공유경제'로, 정당한 조세를 '세금 폭탄'으로 명명하는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거짓말을 하는 행위의 목표가 '기만'이라는 점에서 더블 스피크도 거짓말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의 성공 조건은 무엇인가? 기만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숨길 것. 바로 이것이다. 더블 스피크, 즉 이중으로 말하는 이유도 상대를 기만하려는 의도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이처럼 거짓말하는 이는 의사소통 참여자 사이의 공동의 목표를 저버리고, 상대를 기만함으로써 자신의 목표를 성취한다.

그렇다면 거짓말은 언제나 비윤리적일까? 그렇지는 않다. 경우에 따라 거짓말은 참말보다 더 적절한 의사소통 행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에 산타가 찾아올 거라는 부모의 거짓말은 진실을 말함으로써 받게 될 아이의 상처를 예방한다. 정치인들도 이런 식으로 자신의 더블 스피크를 변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거짓말이 자신이 추구하는 대의, 자신이 생각하는 더 좋은 세상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이다. 그 대의라는 것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는 허위로 읽힐 수 있지만.

그런데 조지 오웰이 지금 한국 정치인들의 정치 언어를 봤다면 더블 스피크라는 말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아마 못 만들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요즘 한국의 정치인들은 굳이 애써서 이중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자신의 기만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대통령의 비속어 사용에 대한 대응, 참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사태를 보면서 사고라고 명명하는 행위,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에 '뭐 포르노라고?'라며 반발하는 게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책상은 책상이고 책은 책인데,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책상은 책이고, 책이 책상일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어느덧 우리 현실의 기괴함은 케레트의 소설을 한참이나 추월하고 있다.

기만 의도를 숨기지 않는 거짓말의 기능은 자신만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에 있지 않다. 이런 거짓말의 목적은 상대방과 소통하는 척하면서 결국은 소통하지 않는 것에 있다. 이 불통의 소통은 소음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이 소음들은 편을 가르고 자신의 부족을 모으는 동력이 된다. 이런 거짓말 마법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변신시킨다. 그렇게 책상을 책상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책상을 책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 사람들은 100년이 지나도 책상을 더 좋게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이 발 딛고 있는 소통의 토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정치란 책상이 책인지 아닌지를 서로 물고 뜯고 따지는 게 아니다. 정치란 책상을 어떻게 더 개선시킬 것인지 논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책상이 책인지 아닌지 따지는 동안, 대통령이 바이든이라고 했는지 날리면이라고 했는지 따지는 동안, 158명이 희생된 일이 참사인지 사고인지를 따지는 동안, 정치는 증발한다.

정치를 실종시키는 거짓말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트럼프의 거짓말들은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난입했고, 푸틴의 거짓말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우리가 묵인하고 눈감았던 거짓말이 문 앞에 서 있다.

백승주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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