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총선 지지표`·`재산권 확보`… 은마 GTX 논란 둘러싼 다른 속셈

김남석 2022. 11. 27. 18:5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은마 주민과 국토부 사이에 낀 현대건설
전문가 "공공기여 인정도 고려해야"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나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건설의 안전성을 보장했지만, C노선의 은마아파트 관통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GTX를 두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국토부와 현대건설, 은마재건축추진위(이하 추진위)는 각자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저마다 다른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내년 총선 겨냥 조기개통이 우선= 지난해 현대건설이 GTX C노선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은마 관통'을 사이에 두고 주민과 현대건설, 국토교통부 간의 신경전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안전 문제를 내세우며 강경하게 우회를 요구하고 있고, 국토교통부와 현대건설은 우회여부를 두고 고심하다 최근 '우회 불가' 입장을 내놨다.

논란이 잦아들긴 커녕 실시협약이 1년 넘게 지연되면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까지 직접 나섰다. 원 장관은 지난 23일 국토부와 현대건설, 주민, 국가철도공단 등이 모인 자리에서 "국토부가 직접 안전성을 담보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현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연일 시위를 벌이고 있는 주민들에게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조치까지 검토하겠다"며 강경대응을 예고했다. 정부부처 장관이 민원인을 대상으로 '저격'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원 장관의 발언에서 나타난 국토부의 속셈은 '민원 사전차단'이다. 현재 국토부가 추진 중인 GTX 사업은 A, B, C 세 개 노선이다. 여기에 향후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D·E·F 노선까지 추진해야 하는 국토부 입장에서 모든 노선이 주거지역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C노선만 봐도 은마와 과천주공, 청담동 일부 빌라 단지 등을 지난다. 특히 과천주공 9단지는 준공 시기가 은마와 2년밖에 차이나지 않는 노후 단지다. 은마의 민원을 받아들여 우회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경우 이와 비슷한 민원이 쏟아질 수 있다. 결국 상징성이 높은 은마를 본보기로 내세워 다른 민원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지부진한 사업 속도도 국토부에게는 부담이다. 대통령이 직접 '조기개통'을 지시했지만, C노선은 민원에 발목이 잡혔고, B노선은 시공사를 찾지 못하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C노선은 은마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현재 감사원 감사를 받고 있는 '창동 구간 지하화' 문제도 남아 있다. 대통령의 공약과 함께 내년 총선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GTX에는 인덕원, 양주, 파주 등 서울과 인접한 다수 지자체의 표가 걸려 있다. 결국 '은마 관통 문제는 현대건설과 주민이 먼저 해결해야 한다'던 국토부는 '우회 불가'로 입장을 바꿨다.

◇조합장 선거 걸려있는 추진위= 추진위는 재건축 사업과 내년 조합장 선거가 걸려 있다. 장관 발언 이후에도 주민들은 표면적으로 '구체적인 안전 확보 방안이 없다'며 생명권 보장을 위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또 장관 발언 중 "만분의 1 지분을 가지고 사업을 좌지우지 하려고 한다"는 말이 추진위 집행부에 대한 '저격'이라고 주장하며 대응 강도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 장관 발언으로 추진위 측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그동안 재건축 사업 우려에 대한 문제는 뒤로 숨긴 채 안전 문제만 내세운 것이 역풍으로 돌아왔다. 추진위의 주장처럼 최초 조성 당시 아파트가 습지에 지어진 것은 맞지만, 장관과 시공사 사장까지 안전성을 담보했고 이미 서울 내 고층건물 밑으로 지하철이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추진위의 표면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오랜 숙원 사업인 재건축 사업 우려를 앞세워 재산권을 주장하는 편이 현실성과 진정성 면에서 더 나은 선택지로 보인다.

추진위가 불참한 이번 간담회에 비대위 성격인 은마아파트·상가 소유자협의회(은소협)가 참석한 것도 부담이다. 추진위 측은 간담회 당일 은소협이 간담회에 참석한다는 것을 듣고 "주민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간담회 불참을 통보했다. 하지만 현대건설과 국토부와의 면담을 지속 요구해왔던 추진위가 결국 간담회에 불참하면서 역공의 기회를 줬다는 평가다. 지지기반이 약한 은소협이 오히려 대표성을 가진 단체로 비치게 했다. 현재 추진위가 내년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에서 이것이 오히려 악수로 작용할 수 있다.

◇끌려다닌 현대건설= 현대건설은 민원인인 은마 주민과 인허가 기관인 국토부 사이에 낀 피해자 이미지와 갈등을 조율하는 합리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다만 그동안의 '줏대없는 행보'와 주민 협의에 비대위를 끌어들인 것은 숨기고 싶은 모양새다.

사실 처음 현대건설은 피해자가 확실해 보였다. 현대건설은 국토부가 제시한 기본계획에 입각해 최적의 노선을 제시했다. 경쟁사였던 GS건설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은마 재건축 시공권을 의식한 듯 은마를 우회하는 안을 제시했고, 국토부는 결국 현대건설 노선을 최종 선택했다. 하지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부터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주민들은 시위 장소로 국토부 장관이 있는 세종시 대신 정 회장의 집이 있는 한남동을 택했다. 국토부는 "C노선은 민자구간"이라며 발을 뺐다.

결국 현대건설은 한 발 물러섰다. 결정적인 계기는 추진위에서 내건 오너에 대한 '근조' 현수막이었고, 현대건설 측은 현수막을 내리는 조건으로 우회안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했다. 실제로 지난 9월에는 국토부에 우회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추진위의 대응이 더 강경해지고, 국토부가 우회 반대 입장을 보이자 다시 말을 바꿨다. 현대건설 측은 "우회안에 적극 '협조' 하겠다고 했지, 우회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현대건설은 협의 대상도 추진위에서 은소협으로 바꿨다. 추진위가 일방적으로 협의 내용을 어기고 협의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어떻게든 더 많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현대건설의 설명에도, 추진위가 주민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 재건축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특히 향후 재건축 과정에서 상가 소유자가 다수 포함된 은소협과 추진위와의 갈등이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비대위 측과 관계를 다지는 것이 다른 속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이번 문제가 해결되고 최대한 빨리 GTX가 착공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결국 여론은 국토부와 현대건설 쪽으로 쏠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 보상 없이 '내 집 아래'를 지나는 것이 부당하는 은마 주민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정비사업을 위한 지반조사까지 마치고 재건축 심의를 통과한 은마 주민들은 GTX로 인해 또 다시 심의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20년 넘게 미뤄진 재건축 사업이 다시 미뤄질 수 있다는 주민들의 우려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전문가들은 국토부와 서울시가 GTX 노선을 일정부분 '공공기여'로 인정한 뒤 재건축 사업에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