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메세나 활동 제언

2022. 11. 2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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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경춘추 ◆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나라 예술영재들은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세계 유수의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한 콩쿠르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개의 콩쿠르에서 상을 받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기량이 뛰어나다는 것이고,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욕심이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들이 입상하고도 또 다른 콩쿠르에 도전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교과서적인 절차는 콩쿠르에서 1등을 한 후에는 세계적 귄위의 기획사와 연주자 간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리 1등을 했다고 하더라도 기획사의 관심을 못 받게 되는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기획사들이 콩쿠르의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요즘은 본선 채점표까지 공개가 되니, 어떤 성적으로 1등을 했는지 알 수 있게 되어버렸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심사위원에게 최고점을 받아서 1등을 한 것인지, 아니면 2등과 거의 차이가 없이 1등을 한 것인지 이 채점표를 통해 면밀히 밝혀지게 된다. 심사위원들끼리 쓰는 말로서 사실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표현이 있다. "1등이라고 다 같은 1등이 아니다." 콩쿠르 종료 후 채점표를 보면 심사를 한 사람조차도 놀라는 경우가 있는데, 가까스로 1등을 한 경우는 대부분 기획사로부터 '콜'을 받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콩쿠르 기간에 진행된 심사 절차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심사위원을 사퇴하는 경우도 있고, 모 심사위원에게서 청탁을 받았다며 양심선언을 하는 심사위원도 종종 본다. 이쯤 되면 기획사에서 콩쿠르 결과를 믿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기획사에서 자체적으로 아티스트를 발굴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연주자는 1등을 하고도 기획사와 계약이 안 돼서 또 다른 콩쿠르에 참가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보기에 욕심이 과한 연주자로 찍히는 순간이다. 게다가 기획사와 계약이 성사되는 과정은 실력만 갖추고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획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날고 기는 연주자 중 굳이 한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실력 이외에도 다른 현실적인 명분이 확실해야 한다. 그중 가장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부분은 바로 자국 기업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후원 규모이다. 이것이 연주자가 각고의 노력으로 1등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노력만으로는 계약이 성사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이 과정이 얼마나 어려우면 'competition after competition'이라는 표현이 생겨났겠는가….

한국메세나협회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업의 연간 문화 예술 지원 규모는 20년 전에 비해 확대되지 않고 정체된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경우, 해외 유명 연주자나 단체의 내한 공연과 같은 티켓 수요가 보장된 연주자들의 국내 예술 활동에 대한 후원이다.

이웃 일본의 어느 기업은 이미 오래전에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를 통째로 후원한 적이 있고 (그 당시 일본 피아니스트가 1등을 수상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해외 유수 콩쿠르와 페스티벌을 후원하고 있다. 미국 카네기홀이나 링컨센터 후원 명단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의 기업들은 많이 볼 수 있는 반면, 우리나라 기업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다. "네 나라가 음악 선진국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너희 나라 사람들밖에 없다"고 뼈 있는 말을 해준 내 독일인 동료의 말처럼, 이제는 우리나라 기업들도 해외 문화예술 행사 지원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가 음악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고, 그 긍정적인 효과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 예술영재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지금 너무 잘하고 있으니, 이제는 어른들이 잘해야 할 차례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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