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는 좋고 '토끼'는 나빠요 내 몸 건강 알려주는 똥
100세 건강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똥이 똥이라고 불리지 못하고 점잖은(?) 배변으로 불려 그 중요성이 묻히니 안타깝도다."
조선시대 서자이자 의적 홍길동(허균의 '홍길동전' 주인공)의 이름을 빌려 배변(똥)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배변, 즉 똥은 냄새가 고약하고 보기 흉해 기피의 대상이지만, 소중한 건강 정보가 숨어 있다. 이 때문에 대장항문외과를 전공한 '똥박사'들은 똥이 폄하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자주 토로한다.
잘 먹고 잘 싸는 게 100세 건강의 지름길이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묻는 대표적인 문진이 "잘 드시고 대소변을 잘 보십니까"이다. 몸에 들어오는 음식 못지않게 몸 밖으로 배출하는 대소변이 매우 중요하다는 얘기다.
똥은 어디서,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질까?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입→식도→위→소장→대장(결장)→대장(직장)→항문을 거쳐 똥으로 배출된다. 입~항문의 길이는 약 8.5~9m에 달한다. 의학적으로 '먹고 마신 물질이 지나가는 몸속의 통로'를 소화관이라고 한다. 남호탁 박사(예일병원 원장·'똥은 기똥차다' 저자)는 "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그야말로 눈물겹다. 위나 소장이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음식물로부터 영양분을 최대한 흡수하며 온 힘을 다하는 것도 그렇고, 남아 있던 수분마저 대장에게 다 내주고 미련 없이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똥의 희생 또한 그렇다. 어디 그뿐인가?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대장암이나 궤양성 대장염 등 각종 질환에 대한 정보를 남김없이 인간에게 전해주고 사라지니 이보다 더한 사랑과 헌신을 또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라며 똥을 더럽다고 거들떠보지 않는 자는 배은망덕하다고 지적했다.
음식은 입안에서 잘게 부서져 침과 뒤섞여 식도로 들어가 30초~1분 후에 위로 이동한다. 위에서는 강한 소화력을 지닌 위액(펩신)에 의해 죽 상태로 소화된 후 서서히 십이지장으로 이동한다.
소장은 길이가 약 6~7m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분절(分節)운동을 통해 내용물과 소화액을 잘 섞어서 영양을 흡수한다. 소장은 음식을 약 4시간에 걸쳐 통과시키면서 대부분의 영양소와 일부의 수분을 흡수하고, 여기서 남은 찌꺼기는 대장으로 운반돼 변의 재료가 된다.
대장은 맹장, 결장(상행·횡행·하행·S결장), 직장으로 이뤄져 있으며 길이는 약 1.5~2m로 대개 그 사람의 키와 비슷하다. 대장에 도착한 음식물 찌꺼기는 질척한 액체상태로 약 18시간에 걸쳐 결장을 통과한다. 그동안 수분과 나트륨, 칼륨 등과 같은 미네랄은 연동운동을 하는 대장에 서서히 흡수되고, 남은 성분은 점점 굳어져 변이 된다. 변은 직장(항문)과 연결된 S결장에 잠시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어느 정도 양이 모이면 장이 '대(大)연동'이라는 수축운동을 통해 변을 직장으로 밀어낸다.
일본 대장항문외과 전문의 마쓰이케 쓰네오 박사는 '내 몸 해독의 시작, 배변력'이라는 책에서 "대연동은 하루에 3~4회, 즉 음식과 수분을 섭취할 때, 흡연이나 걷기를 할 때, 특히 아침에 강하게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대연동에 의해 변이 직장으로 이동하면 직장이 팽창하고 장의 신경을 자극한다.
변의 양은 보통 100~250g이지만 음식물 종류나 먹는 양, 소화, 흡수상태에 따라 차이가 난다. 육식보다 채식을 할 때 변의 양이 많아진다. 변은 70%가 물이고 나머지 30%는 고형성분이다. 고형성분은 대장에서 소화·흡수되지 않는 음식물 찌꺼기, 장관 내벽에서 벗겨진 상피세포 및 그 잔해, 철, 칼슘, 마그네슘 등이며 인돌, 스카톨, 젖산 등 음식물의 분해산물로 구성돼 있다. 변의 냄새가 고약한 것은 주로 장내 세균이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스카톨과 인돌 때문이다. 스카톨과 인돌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할 경우 더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채식보다 육식을 많이 하고 난 후에 보는 변의 냄새가 훨씬 고약하다. 간혹 변이나 방귀냄새가 고약해 무슨 질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변의 냄새와 질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심리적으로 자신의 냄새보다 다른 사람의 방귀냄새가 지독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배변이 중요한 것은 몸 안의 독소를 배출하고 면역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면역력은 장의 건강에서 출발한다.
장, 특히 소장에는 '장관면역'이라는 면역시스템이 있다. 장관점막에는 장 특유의 림프조직(림프구가 몰려 있는 부위)이 있다. 림프조직은 크기가 장 전체의 약 25%에 달하며 외부에서 침입하는 이물질과 병원균을 효과적으로 퇴치하는 덕분에 우리 인간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물질, 세균,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 미생물은 음식 및 음료와 함께 장(腸·소화관)과 연결된 입을 통해 끊임없이 몸 안으로 들어온다.
대장과 소장에는 신경세포가 약 1억개나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약 150억개에 달하는 뇌의 신경세포에 비하면 매우 적지만 다른 장기들 중에서 가장 많다. 장은 뇌와도 밀접한 관계여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변비나 설사 등 소화기 증상이 발생하기 쉽다. 또한 인간의 장속에는 장내 세균이 평균 100여 종, 100조개 이상 서식한다. 주로 대장에 많다. 마쓰이케 박사는 "우리 몸에 이로운 유익균과 해로운 유해균이 공존하는 장내 세균은 편식이나 스트레스, 피로, 운동 부족 등이 발생하면 유해균이 늘어난다"며 "변비는 유해균이 늘어나 장내 세균의 균형이 깨졌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변비는 장내 환경이 흐트러졌다는 신호다. 하루에 19g의 섬유소를 포함한 표준식사를 하는 사람이 1주일에 2회 이하의 변을 누는 경우 변비가 있다고 정의한다. 변비에 대한 개념은 상당히 주관적이지만 의학적으로 △변을 보는 횟수가 1주일에 2회 이하 △변의 무게가 하루 25g 미만 △딱딱한 변을 누는 경우가 전체 배변의 25% 이상 등 5개 항목에서 2개 이상의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에 변비가 있다고 정의한다.
변비를 악화시키는 습관은 △배변을 자주 참음 △아침식사를 거르거나 너무 적게 먹음 △수면 부족 또는 밤늦게 활동 △몸이 차거나 수분 부족 △운동 부족 △고령 △대장 연동운동을 억제하는 여성호르몬 영향 △수술후유증(장관유착증) △특정질병(갑상선기능저하증) 또는 약(우울증) △변비약 남용 등이다. 무엇보다 변비를 악화시키는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다. 정신적 긴장은 교감신경을 우위로 만들어 변비를 부추긴다. 마쓰이케 박사는 "변비 환자의 장을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 장이 거의 움직이지 않고, 배변력이 극도로 약해져 음식을 먹어도 움직이지 않고, 장에 내용물이 가득 차 있어도 변의가 일어나지 않아 배변을 할 수 없다. 이를 오랫동안 방치하면 결국은 몸에 이상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시원한 똥 싸기(배변)는 올바른 식습관과 운동에 해법이 있다. 하루 세 끼를 잘 챙겨먹기, 잠들기 3시간 전에 식사 마치기, 수분 충분히 섭취하기, 식이섬유·식물성 유산균 먹기 등이 좋은 식습관이다. 걷기와 복근운동, 장 마사지 등도 배변력에 도움이 된다. 양형규 양병원 의료원장은 "걷기는 먼저 장운동을 촉진하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면서 "배변 때 힘쓰는 데 도움이 되는 배와 등 근육을 키우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이병문 의료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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