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유대인 수의사, 세계 1위 제약사 CEO 되다 [글로벌 노마드]

손진석 기자 입력 2022. 11. 27. 15:01 수정 2022. 11. 2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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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경쟁 이끈 글로벌 제약사 CEO는 모두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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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021년 세계 제약업계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 개발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미증유의 전염병을 서둘러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한 백신 확보전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백신 개발 및 접종과 관련한 치열한 경쟁을 지켜봤습니다.

오늘 ‘글로벌 노마드’에서는 코로나 백신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제약사들의 최고경영자(CEO)를 둘러싼 스토리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백신 경쟁에서 앞서갔던 ‘빅 파마’의 CEO들은 모두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로이터 뉴스1

독일 바이오엔테크 창업자인 우구르 사힌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는 ‘흙수저 이민 2세’였습니다. 미국 화이자의 앨버트 불라,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파스칼 소리오, 미국 모더나의 스테판 방셀은 모두 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라와 소리오는 수의대 출신이라는 교집합이 있고요. 소리오와 방셀은 둘다 프랑스인이란 게 같은점입니다.

코로나 백신의 효능이나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확산되지 않게 막는 데는 백신이 어느 정도는 역할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늘 ‘글로벌 노마드’에서는 코로나 백신의 주역들이 어떻게 다른 나라에 가서 최고경영자로 성공하고 전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지를 놓고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세계 1위 제약사 CEO는 그리스의 수의사

독일 신생 기업 바이오엔테크와 손잡고 가장 성공적인 코로나 백신을 생산한 화이자의 CEO 앨버트 불라는 한국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장 과정이 별난 독특한 사람입니다.

그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유대인 핏줄로 태어난 그리스인이며 수의사라는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백신을 둘러싼 불라와 화이자의 행보를 보면 유대인 네트워크의 강력한 힘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올해 61세인 불라는 고대 문명의 도시이자 그리스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에서 태어나 이곳에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대를 졸업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적인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불라는 스페인계 유대인을 말하는 세파르딤입니다.

세파르딤은 이베리아반도에 정착했던 유대인들의 후손을 말하는데요. 이베리아반도에서 흩어진 이들이 다시 네덜란드, 영국,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지중해 연안으로 이주했습니다.

유명한 세파르딤으로는 ‘돈 키호테’를 쓴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미국 가수 폴라 압둘, 벤자민 디즈레일리 전 영국 총리, 영국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 등이 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세파르딤 중에서 가장 출세한 사람은 앨버트 불라라고 봐야 할 겁니다.

테살로니키는 그리스에 온 세파르딤이 대거 몰려 살던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약 5만명의 세파르딤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중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불과 2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불라의 부모가 그 2000명에 포함돼 있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다

불라는 작년 초 이스라엘 신문사인 예루살렘 포스트와 인터뷰에서 가슴 아픈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2차 대전 중 불라의 아버지네 가족은 테살로니키의 유대인 게토로 강제 이주됐습니다.

1943년 3월 불라의 할아버지는 불라의 아버지와 삼촌에게 게토에서 뭔가 상황이 급박하게 굴러간다면서 게토를 잠시 떠나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날 오후에 불라의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막내 삼촌 등 4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태워졌고, 이후 불라의 아버지와 삼촌은 부모를 두번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테살로니키는 그리스 북부에 있는 이 나라 제2의 도시다.

불라의 아버지와 삼촌은 유대인들이 나치로부터 탈출하는 걸 도와주던 경찰관 덕분에 기독교식 이름이 있는 위조 신분증을 얻어 아테네로 도망갔습니다. 두 사람은 2차대전이 끝난 후 테살로니키로 돌아와서 맨땅에서 주류 도매상을 해서 크게 성공했다고 합니다. 유대인의 피가 맞죠.

불라의 어머니 역시 테살로니키의 세파르딤이었는데요. 그녀는 독일군에 끌려갔지만 처형당하기 직전에 가족이 몰래 몸값을 지불해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불라의 부모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결혼했는데요. 불라는 인터뷰에서 “내 아버지의 꿈은 2가지였는데 하나는 내가 과학자가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유대인 여자랑 결혼하는 것이었다”며 “나는 아버지의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뤄드렸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유대인 네트워크로 이스라엘이 화이자 백신 입도선매

아리스토텔레스대에서 수의학으로 학·석사를 거쳐 박사까지 마친 불라는 1993년 화이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스의 화이자 동물 의학 분야 기술 이사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1995년 그리스를 떠났고 화이자의 여러 나라 사무소를 옮겨다니며 일합니다. 4개 대륙 7개 도시에서 근무했습니다. 2005~2009년 유럽·아프리카·중동 지역 동물의학 사업부장, 2009~2010년 유럽·아프리카·아태 지역 사업부장 등을 지냈습니다.

이후 불라는 글로벌 백신·종양사업부장(2014~2016년), 혁신 건강그룹 사장(2016~2017년)을 마친 뒤 2018년 최고운영책임자(COO)가 됐고, 2019년 1월 대망의 CEO에 오릅니다. 홀로코스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리스 수의사가 세계 1위 제약사의 최고경영자가 됐습니다. 그가 화이자 CEO가 된 3개월 후 미국 주재 그리스대사는 불라에게 ‘탁월한 그리스 지도자상’을 전달했습니다.

앨버트 불라의 최근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제약업계 거인이 된 이후에도 불라는 그리스인이자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끈적하게 유지합니다. 그는 뉴욕에 살고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태어난 그리스 동북부 휴양도시 할키디키에 집을 갖고 있는데요. 매년 여름 휴가 때마다 할키디키에 가서 휴식을 취하고 뉴욕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리스에 코로나 백신을 사비로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불라는 이스라엘 언론과 종종 인터뷰를 해서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 백신을 유럽보다 빨리 들여와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이스라엘 정부의 빠른 대응에 주목하는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숨어 있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화이자 CEO인 불라가 유대인이라 이스라엘 정부와 대화가 잘 되는 겁니다. 불라가 월가를 지배하는 유대인 금융 권력의 측면 지원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유대인의 노벨상’ 받아 홀로코스트 기념관 건립에 기부

올해 1월 아이작 허조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백신을 빨리 공급해줬다면서 ‘유대인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제네시스상’을 불라에게 수여했습니다. 불라는 상금 100만달러를 고향 테살로니키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세우는 데 기부했습니다.

테살로니키에 지으려는 홀로코스트 기념관 조감도. 앨버트 불라는 '유대인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네시스상을 받아 상금 100만달러를 이곳에 기부했다./테살로니키 유대인 모임

문재인 정부는 애초에 백신 도입 시도를 늦게 시작해서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백신 확보전에 참전한 이후로도 세계 주요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화이자-이스라엘의 유대인 커넥션은 넘어설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화이자와 불라는 이스라엘과 미국 다음으로 유럽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죠. EU 수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독일 하노버대 의대 교수 시절 전염병학을 가르쳤던 의사였습니다. 당연히 폰데어라이엔은 의학 용어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죠.

EU가 백신 도입을 서두르려고 노력할 때 폰데어라이엔은 불라와 대서양을 가로질러 수시로 통화하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백신 수급을 상의했습니다. 불라의 고국인 그리스는 EU 회원국이구요. 한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가 이런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백신을 먼저 당겨온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터키에서 독일로 넘어온 이민 2세 부부, 세계 제약계 혁명 일으켜

한국에서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 공동 개발 백신을 흔히 ‘화이자 백신’이라고 불렀죠. 하지만 지난해 독일에 갔을 때 보니 독일인들은 “바이오엔테크 백신’이라고 부르더군요. 엄밀히는 핵심인 mRNA 기술을 바이오엔테크에서 개발하고 화이자는 대량 생산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독일 마인츠에 있는 바이오엔테크 본사./AP 연합뉴스

독일인들은 바이오엔테크가 독일 기업이라는 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순수 독일인’이 설립하지 않았습니다. 이 회사는 2008년 터키 이민자 2세인 우구르 사힌(57)과 외즐렘 튀레지(55) 부부가 공동 창업한 기업입니다. 두 사람의 부모는 모두 1960년대 터키에서 넘어온 이주민이었습니다. 독일 인구의 약 3%는 터키 출신 이민자인데요. 독일 어디를 가나 운전을 하거나 식당에서 서빙을 하는 터키인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남편 사힌은 터키에서 태어나 4살 때 독일로 이주했고요. 아내 튀레지는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사힌의 아버지는 혼자 먼저 독일에 가서 쾰른 근교의 포드 자동차 공장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아버지가 독일에서 자리를 잡고 나서 터키의 가족을 독일로 불러들였죠. 사힌의 아버지는 쾰른 근처에서 공장 근로자였고, 공부를 잘했던 사힌은 쾰른대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아내 튀레지는 이민자 2세이긴 했어도 사힌보다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터키에서 넘어온 외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생물학자였습니다. 아버지를 보고 의사의 길을 걷기로 하고 독일 서부 끝에 있는 자를란트대에서 의학을 전공했습니다.

바이오엔테크 창업자인 우구르 사힌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AP 뉴스1

◇빌 게이츠의 거액 투자를 유치하고 나스닥에 상장

사힌과 튀레지는 둘다 종양학·면역학을 전공했습니다. 사힌이 대학 졸업 후 자를란트대에 와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2001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둘다 면역 체계를 활용해 암을 극복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과 터키계라는 공통점을 갖게 돼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둘은 2002년 결혼식도 실험실에서 실험복을 입고 올렸고, 결혼식 당일 혼인 신고를 한 뒤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을 정도로 연구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바이오엔테크는 2008년 사힌이 마인츠대 의대 교수로 재직할 때 아내와 함께 공동 창업한 회사입니다. 본사가 마인츠에 있습니다. 이 회사는 mRNA 기술을 활용한 암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했고, 지금도 이 목표를 위해 뛰고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건 mRNA 기술을 활용해 약간 옆길로 샜던 것입니다.

사힌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발병하자 즉시 500명 규모의 백신 개발팀을 가동했습니다. 사힌은 전세계적인 전염병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하죠. 코로나 발병 3개월만인 2020년 3월 바이오엔테크는 이미 20가지의 백신 후보 물질을 개발했습니다. 화이자와 손을 잡고 백신을 만들자고 합의한 게 이때입니다.

미국의 화이자와 독일의 바이오엔테크는 코로나 백신을 공동개발한 이후 협업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로이터 뉴스1

바이오엔테크가 성공한 건 사힌·튀레지 부부의 열정과 재능이 바탕이었지만 외부에서의 적극적인 투자가 뒷받침된 게 큰 발판이 됐습니다. 유망한 기술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는 위대한 기업이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펀딩을 받아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자본의 도움이 필요하죠. 바이오엔테크는 그런 점에서 교과서적입니다.

2008년 이 회사를 설립할 때 사힌 부부는 독일 억만장자 쌍둥이 형제 슈트륑만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슈트륑만 형제는 1986년 제너릭 의약품 전문 생산업체 헥살을 설립하고 2005년 노바티스에 회사를 매각해 큰 돈을 벌었는데요. 바이오엔테크 투자도 성공해서 독일에서 부자 랭킹 1~3위 안에 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9월에 5500만 달러를 이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잠재력을 빌 게이츠가 제대로 봤던 거죠. 무엇보다 이 회사는 독일 증시가 아니라 나스닥에 2019년 10월 상장해서 한번에 1억5000만달러의 투자금을 끌어왔고, 이것이 백신 개발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바이오엔테크가 백신 개발에 가능성을 보이자 독일 정부가 3억7500만유로, 유럽연합(EU) 산하의 유럽투자은행이 1억유로를 대출했습니다.

◇8조원대 거부됐지만 여전히 자전거로 출퇴근

3년전 나스닥 상장 직후 주당 14달러 정도였던 바이오엔테크 주가는 작년 8월 380달러대까지 상승했습니다. 지금은 주가가 조정됐지만 여전히 15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시가총액은 약 376억달러(약 50조원)에 달합니다.

2021년 3월 바이오엔테크 창업자 부부인 우구르 사힌과 외즐렘 튀레지 부부가 독일 정부로부터 연방공로십자훈장을 받았을 때 모습. 맨 오른쪽이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다./유럽연구평의회(ERC)

사힌은 독일 100대 부자 중 유일한 터키계로 꼽힙니다. 미국 포브스는 사힌의 재산이 61억달러(약 8조1600억원)로서 올해 세계 부호 순위 408위라고 했습니다. 사힌 부부는 엄청난 부자가 됐지만 여전히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힌은 “자전거가 가장 효율적인 이동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바이오엔테크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자 독일에서는 이민자 신화로 집중 조명하면서 이민자를 포용한 정책이 얼마나 큰 사회적 부가 가치를 창출했는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지지율이 임기 말에 높게 유지된 것에 사힌·튀레지 부부가 큰 기여를 한 측면도 있죠.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작년 3월 메르켈 총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힌·튀레지 부부에게 연방공로십자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이 훈장은 독일을 위해 큰 국가적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는 최고 훈장입니다.

◇모더나 CEO는 ‘스티븐 반셀’이 아니라 ‘스테판 방셀’

백신을 빨리 못 구한다는 질타를 받은 문재인 정부는 ‘쇼’를 기획합니다. 2020년 12월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이 미국 모더나의 최고경영자 스테판 방셀과 화상 통화를 하고 이 장면을 국민들에게 홍보합니다. 당시 청와대는 2000만명분의 백신이 5월이면 들어온다고 했는데 이건 하반기로 늦춰져 지탄을 받았습니다.

당시 국내 일부 언론은 프랑스인 방셀(Stéphane Bancel)을 미국인으로 여겨서 ‘스테판 방셀’이 아니라 ‘스티븐 반셀’로 표기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프랑스인이라는 게 알려져 불어식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모더나 CEO 스테판 방셀

방셀은 전형적으로 프랑스가 답답해서 고국을 등진 인재입니다. 저는 나폴레옹 집안의 대표인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이 왜 런던에 사는지를 비롯해서 프랑스의 엘리트들이 프랑스 밖으로 뛰쳐나가는 현상을 ‘글로벌 노마드’에서 다룬적 있는데요. 방셀은 그런 식으로 해외에 나가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72년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의사 어머니 사이에서 마르세유에서 태어난 방셀은 쭉 프랑스 남부에서 자랐습니다. 파리의 이공계 연구중심 그랑제콜(프랑스 특유의 고등교육기관)인 ECP(에콜 상트랄 파리)를 나왔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셀은 최상위 레벨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공부 잘하는 프랑스인 코스를 밟았습니다. 그랑제콜을 다닐 때 교환학생 방식으로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생물공학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미·불 양국에서 받았습니다. 학교 졸업 후 잠깐 은행에서 일한 뒤 제약업에 흥미를 느낍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모더나 본사./로이터 연합뉴스

1995년 프랑스 의료 진단회사인 비오메리외의 일본지사에서 일하기 위해 고국을 떠납니다. 이후로 50세가 된 지금까지 프랑스에 머무른 기간은 4년에 불과합니다. 비오메리외에서 3년 일한 다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딴 뒤 2002~2006년 사이 미국계 제약사 일라이 릴리의 벨기에 지사 책임자로 일했습니다. 이어 방셀은 2007년 원래 일하던 비오메리외의 부사장으로 파리로 돌아와 4년을 일했습니다.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고국에서 일한 기간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2011년 모더나에 최고경영자로 영입돼 합류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꿈꾸기 어려운 7조원대 잭팟 터트려

아시다시피 모더나는 백신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방셀은 모더나 주가가 대박나 58억달러(약 7조7600억원)의 재산을 가진 걸로 추정됩니다. 방셀의 성공을 두고 프랑스인들은 심경이 복잡합니다. 대체로 자랑스러워하지만 왠지 꺼림칙한 대목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달 초 대학 시절을 보낸 파리를 방문했을 때 스테판 방셀의 모습./AFP 연합뉴스

방셀은 ‘프랑스가 싫어 프랑스를 떠났다’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딱 그런 사례입니다. 규제가 많고 일처리가 느려 답답하고 자본을 터부시하는 좌파 기류가 강한 프랑스를 떠나 런던·뉴욕·실리콘밸리에 정착한 프랑스인 젊은 엘리트들이 많은데요. 방셀은 그런 부류의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로 볼 수 있습니다.

방셀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성공은 프랑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방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프랑스에서도 우파 성향이 강한 지배 계급 사람들은 방셀과 같은 사람이 해외로 떠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성공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열을 올립니다.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CEO 역시 프랑스인

재미있는 건 백신으로 재미를 본 또다른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최고경영자 파스칼 소리오도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입니다. 방셀과 비슷하게 프랑스를 떠나서 성공한 사례입니다. 게다가 아스트라제네카는 프랑스와 라이벌 관계인 영국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죠.

파스칼 소리오 아스트라제네카 CEO./EPA 연합뉴스

1959년생인 소리오는 1766년 개교해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수의학 대학인 알포르국립수의대를 나와 프랑스 경영학 분야 1위 그랑제콜인 HEC를 나왔습니다. 제약업계에 입문한 소리오는 줄곧 프랑스 밖에서 살았습니다. 일본, 호주, 스위스, 미국, 뉴질랜드를 돌면서 글로벌 제약사에서 일했습니다. 2010년 스위스계 대형 제약사 로슈의 최고운영책임자가 된 소리오는 2012년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자로 영입돼 지금까지 10년간 버티고 있습니다.

소리오는 호주에서 오래 살았는데요. 아예 호주 국적을 따서 이중 국적자입니다. 호주가 살기 좋다는 이유죠. 특히, 그의 아내가 시드니 생활을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자녀들도 호주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답니다. 프랑스인들이 소리오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알쏭달쏭한 감정이 드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죠.

게다가 소리오는 코로나 사태 당시 고국 프랑스와 갈등을 벌였습니다. 글로벌 기업 경영자는 회사가 최우선입니다. 백신 공급 초기에 백신이라도 구해보려고 여러나라가 아우성일 때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에 우선적으로 공급을 했고, 이런 이유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영국 정부와 아스트라제네카를 맹비난했습니다. 이런 장면이 언론에 나오자 유럽에서는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인 영국 제약사 경영자와 다툰다’는 점에서 꽤나 흥미를 보였습니다.

◇프랑스인이지만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 받아

소리오는 2010년대 화이자의 계속된 아스트라제네카 인수 시도를 막아내서 영국에서는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가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장수하는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또한 그가 영연방 국가인 호주에 근거지를 두고 호주 국적을 딴 것도 영국 사회에서 호의적으로 봅니다.

파스칼 소리오 아스트라제네카 CEO와 찰스 3세 영국 국왕./아스트라제네카

소리오는 “은퇴하면 시드니로 돌아가서 손자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소리오는 또 거액을 투자해 아스트라제네카와 케임브리지대의 협력 관계를 끈끈하게 만들었는데요. 이것 역시 영국에서 호평을 받습니다. 소리오는 좋은 실적을 계속 이어가는데요. 그가 CEO가 된 이후 첫 5년간 아스트라제네카 직원은 1만명이나 줄었습니다. 감원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을 계속 해왔던 거죠.

올해 6월 소리오는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별세하기 3개월 전이죠. 소리오는 영국의 생명공학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프랑스인이 영국 기업을 맡아 영국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영국 왕실의 기사 작위를 받았다는 게 꽤나 흥미롭습니다. 기사 작위를 받았을 때 소리오가 밝힌 소감이 상당히 눈길을 끕니다.

“저는 왕실로부터 이런 인정을 받게 돼 정말 겸허해집니다. 프랑스에서 자라면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많았지만, 여왕 폐하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호주 국민으로서 영국 왕실의 기사 작위를 받게 된 것은 큰 특권입니다. 환자에게 의약품을 제공하기 위해 과학을 따르는 데 헌신하는 전 세계의 많은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코로나 백신./로이터 뉴스1

방셀과 소리오는 프랑스식 인재 유출의 대표 사례입니다. 우연히도 두 사람 모두 제약업계에서 성공했고, 코로나 사태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화이자의 앨버트 불라가 그리스인과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널리 공개하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것과 달리 방셀과 소리오는 프랑스인이라는 걸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고국 남아공을 향해 듣기 좋은 ‘립 서비스’조차 하지 않는 거랑 비슷하죠.

한국인 중에서도 앞으로는 방셀과 소리오 같은 사례가 나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한국이 싫거나 갇히기 싫어서 외국으로 떠나서 성공하고, 한국인들은 ‘저 사람 한국 사람’이라면서 치켜세워주지만 막상 당사자는 이른바 한국식 ‘국뽕’에 시큰둥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코로나 사태 당시 백신 개발에 성공한 제약사들을 이끈 기업인들을 조명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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