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 조용필, 40년 같았던 4년 기다림 “오빠·형님부대 그리웠어요” [리뷰]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2. 11. 27. 14: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79年 1집 ‘단발머리’ 부터 22年 노래까지
과거부터 현재 넘나들며 2시간 채운 공연
칠순 넘겨도 현대적 사운드·여전한 가창력
20대 청년도 80대 할머니도 일어서서 열광
“관객 1/3은 남성” 오빠·형님부대에 눈길
‘찰나’ ‘세렝게티처럼’ 등 신곡도 떼창나와

“얼마 만이야? 아마 제가 가수 생활을 한 이후로 (공연을 쉰) 가장 긴 시간이 아니었던가 생각되네요. 4년이 40년 같았습니다. 그립기도 하고 또 반갑고 기쁩니다. 아주 좋습니다.”

지난 2018년 50주년 콘서트 이후 4년 만에 무대에 오른 ‘가왕’ 조용필은 공연 시간 내내 잠시의 휴식도 없이 무대를 지켰다. 1979년 발표곡 ‘단발머리’부터 이달 공개한 신곡까지 54년의 가수 활동을 아우르는 명곡들로 120분을 꽉 채웠다. 20대 청년부터 80대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1만여 명으로 붐빈 공연장은 영하권으로 떨어진 초겨울 날씨가 무색하게 후끈 달아올랐다.

가수 조용필이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열린 ‘2022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에서 노래하고 있다. <사진제공=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조용필은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2022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의 26일 첫날 공연 첫 무대를 1991년 곡 ‘꿈’으로 열었다. 그가 무대에서 걸어 나와 관객을 환영하듯 두 팔을 양 옆으로 활짝 벌리자 기타리스트 최희선, 베이시스트 이태윤 등 밴드 ‘위대한 탄생’이 연주하는 익숙한 전주로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미디어아트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무대 연출도 관객을 홀렸다. 압권은 무대에서 관객석을 향해 길게 뻗은 세로형 전광판 ‘플라잉 LED’였다. 길이 40m, 무게 2t의 대형 LED가 천장에 매달려있는 형태다. 공연 시작 전 무대 쪽으로 낮게 깔려 있던 이 LED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신비로운 사운드와 함께 위쪽을 향해 천천히 솟아올랐다.

LED 영상은 노래에 따라 공연장을 순식간에 꽃밭으로 만들었다가(단발머리), 물속 깊은 곳처럼 연출했다가(추억속의 재회), 아프리카 초원 한복판(세렝게티초럼)에 있는 것 같은 경험까지 선사했다. 굿거리장단을 접목한 1982년 록 음악 ‘자존심’엔 한국적 문양이 깔리며 공연과 어우러졌다.

조용필 소속사 YPC 관계자는 “체조경기장 상부에 대형 LED 전광판을 설치한 건 이번이 첫 시도”라며 “안전 진단과 관련 허가 등 많은 절차를 거쳐 현실화한 연출”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무대 배경을 꽉 채운 곡선형 거대 전광판이 객석 곳곳에 조용필의 표정, 손짓을 전달했고 화려한 영상·레이저·불·폭죽쇼 등 볼거리도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26일 ‘2022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 네 번째 곡 ‘추억속의 재회’의 한 장면.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효과와 조용필의 애절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관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조용필은 노래로 내달리는 중간중간 오래 쌓인 회포를 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 오실 때 ‘저 사람이 어떻게 변했을까, 얼마나 늙었을까 궁금했을 것”이라고 하자 관객석에선 “그대로다” “더 젊어졌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용필은 “살이 3kg 불어서 확 쪄버렸다. ‘확찐자’가 됐다. 그래서 주름살이 좀 없어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원조 ‘오빠부대’의 창시자로 불리는 만큼 팬들과 편안한 소통은 공연의 일부였다. 관객석의 “사랑해요! 반가워요!”라는 소리침에 그는 “나두요”라고 화답했다. 관객들은 연신 웃으며 “귀여워요” “멋져요”라고 외쳤다. 또 조용필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앉아있는 관객들을 보면서 “저도 마스크를 쓸까요? 괜찮나요? 저는 코로나에 한 번도 안 걸렸으니까요”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모두 노래 마음껏 부르시면서 즐거운 시간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빠부대’뿐 아니라 ‘형님부대’도 눈에 띄었다. 조용필이 1981년 곡 ‘여와 남’을 부르기 전, 무대 위에서 관객 분포를 둘러보며 “오늘 가만히 보니 공연장의 3분의 1은 남자, 3분의 2는 여자다. 의외로 남자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했을 정도다. 관객석에서 “형님 멋있어요”라는 소리가 들려오자 조용필은 “형 여기 있어. 아직 형이다, 형님 아니야”라고 농담도 던졌다.

가수 조용필이 ‘2022 조용필&위대한탄생 콘서트’ 첫날인 26일 뛰어난 가창력과 트레이드 마크인 짙은색 선글라스 등 변함 없는 모습으로 무대 위에 등장했다. <사진제공=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2013년 ‘바운스’ ‘헬로’ 등 신곡으로 음원 순위 정상에 오르며 대중성은 물론 음악적 진화·혁신의 아이콘이 된 그는 최근 9년 만에 신곡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을 발표한 소회도 밝혔다. 새로운 사운드와 싱잉랩 등의 시도가 녹아있는 곡이다. 그는 “항상 녹음할 때는 열심히 한다. 그리고 나선 궁금하죠, 사람이 좋아할까 그저 그럴까. 그리고 마지막에 발표하고는 ‘에라 모르겠다’가 된다”며 “그래도 신곡을 낼 수 있다는 것이 저는 행운”이라고 말했다.

후반 60분은 멘트 없이 히트곡 메들리로 꽉 채웠다. 관객들도 흥을 주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응원봉을 흔들고 소리치거나 떼창을 하며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고추잠자리’ ‘어제, 오늘, 그리고’ ‘못찾겠다 꾀꼬리’ ‘모나리자’ 등 전주만 들어도 몸이 들썩이는 곡들이 이어지면서 관객석 분위기는 흡사 록 페스티벌 현장처럼 고조됐다.

조용필은 올해 일흔둘, 칠순을 넘기고는 첫 단독 공연인 데도 무대 위에서 힘든 내색이 없었다. ‘바람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친구여’ 등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에서도 오히려 쨍쨍하고 또렷한 성량과 음색이 도드라졌다. 직접 일렉트로닉 기타를 연주하기도 했다.

가수 조용필이 26일 밴드 위대한탄생과 함께 연주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이날 ‘그대여’ ‘미지의 세계’ ‘모나리자’ 등에서 기타 연주와 함께 라이브를 소화했다.
관객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이날에 이어 27일, 다음달 3~4일 총 나흘간 서울에서 열리는 공연 좌석은 일찌감치 4만여석 전석 매진되며 조용필의 티켓파워를 입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오랜 팬이라는 조봉숙 씨(52)는 팬클럽 활동을 하며 만난 십년지기 또래 친구들과 공연장을 찾았다. 조씨는 “신곡 무대가 제일 기대된다. 떼창 부르려고 노래 연습도 많이 하고 왔다”며 “가족들도 오늘 만큼은 엄마·아내를 찾지 않을 거다. 딸도 공연장에 같이 왔다”고 전했다.

공연장에서 만난 남성 성민호 씨(27)도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인데 무대와 라이브 등 공연이 가볼 만하다는 주변 얘기를 듣고 표를 구해 오게 됐다”고 했다. 오랜만의 조용필 공연을 놓치지 않겠다며 암표를 구해 온 83세 여성도 있었다. 미국에서 잠시 귀국했다가 공연을 관람했다는 손보미 씨(63)는 “역시 오빠는 살아있다. 공연에 오니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 했다.

조용필이 2023년 55주년 20집 앨범을 앞두고 이달 발매한 싱글앨범 ‘로드 투 투웬티 프렐류드 원’의 표지사진.
조용필은 공연 도중 ‘부산에서 왔다’고 소리친 팬에게 “이 공연 장비를 다 끌고 지역에 가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서울에서만 공연하게 돼 전국 각지에서 오신 분들이 많아 고맙고 죄송스럽다”고 했다.

다만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조용필은 이미 내년 데뷔 55주년 활동 준비에 여념이 없다. 내년 말에 정규 20집을 선보일 예정이고, 그에 앞서 상반기에 신곡을 담은 미니앨범(EP)을 발매할 계획이다. 조용필은 이날 콘서트의 끝 곡으로, 팬데믹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컴백 여정을 예고하듯 ‘여행을 떠나요’를 열창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