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풀’의 목소리와 선언···정은귀·신형철이 읽은 루이즈 글릭 <야생 붓꽃>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루이즈 글릭의 시집 세 편(시공사)이 나왔다. <신실하고 고결한 밤>(2014)은 전미도서상 수상작이다. 노벨문학상 발표 때 한림원이 언급한 대표작 <아베르노>(2006)도 번역 출간됐다. 또 다른 대표작인 여섯 번째 시집 <야생 붓꽃>(1992)은 퓰리처상을 받았다.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010082114015
이 시집의 화자는 식물, 인간, 신이다. 루이즈글릭연구재단 설립자인 옮긴이 정은귀(한국외국어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와 해설자 신형철(문학평론가,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부교수)은 “꽃과 정원사-시인의 기도와 신이 함께 거주하는 정원의 세계”(정은귀)에서 식물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식물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담은 시가 ‘개기장풀’이다. 풀 학명은 ‘Panicum capillare(파니쿰 카필라레)’인데 보통 ‘witchgrass(위치그라스)’라 부른다. 즉 ‘마녀의 풀’이다. 풀 모양이 마녀 빗자루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정은귀는 “정원사의 손에 뽑혀 나가야 하는 잡초의 운명, 이는 문명사회에서 화형에 처해지는 ‘마녀’의 운명과 비슷하다”고 했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나 끔찍이 싫어한다면/ 내게 애써 이름 붙여 주시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언어에/ 비방하는 말이 하나 더/ 필요한가요./ 한 부류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또 다른 방식-”(‘개기장풀’ 중).
신형철은 이렇게 해석한다.
“이 화자-식물은 정원을 가꾸는 인간에게 힐난한다. 당신은 소중한 꽃들이 죽어 가니 무언가 탓할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그래서 ‘잡초’인 ‘나’를 원인으로 지목해 ‘마녀의 풀’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왜 인간들은 이런 식이냐고, 왜 슬프다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느냐고(‘애도하면서 동시에 탓하는’), 개기장풀은 날카롭게 꼬집는다. 그것은 당신이 사실상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그래서 이와 같은 낙인과 혐오는 인간이 자주 범하곤 하는 실패의 ‘작은 모범 사례’일 뿐이라고 말이다.”
개기장풀은 당신이 정원을 만들기 전부터 여기 먼저 있었다며 “살아남기 위해서 당신의 찬사는/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시는 “그리고 나는 태양과 달만 남게 되어도/ 또 바다, 그리고 이 드넓은 들판만 있어도/여기 있을 것입니다.//내가 그 들판을 만들 것입니다.”로 끝난다.
마지막 구절은 “I will constitute the field”를 번역한 것이다. 정은귀는 옮긴이의 말에서 “‘constitute’는 부분으로 전체를 이루겠다는 말이며 내가 이 세상의 ‘입법자’가 되겠노라는 공식 선언이다. 마치 하느님이 이 세계를 만든 것처럼. 예쁜 꽃만 남겨 두고 잡초는 뽑아 버리는 정원사가 정원을 가꾸는 방식과는 다르게, 잡초가 이 들판을 무성하게 덮어 버리겠다는 선언, 비체들의 반란인 셈”이라고 했다.
여러 식물에 관한 시들이 이어진다. 신형철은 “‘야생 붓꽃’은 “죽음, 망각, 침묵에서 귀환해 오는 강인함으로 인간의 무지를 다그쳤고, ‘꽃양귀비’는 인간이 신성을 잃어버리고 손에 쥐게 된 부서진 말들의 한계”를 알려 주었다”며 “이곳은 목소리들의 정원이다. 루이즈 글릭이 아니었더라면 식물들이 인간을 향해 이렇게 많은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은귀도 “미국 시사에서 식물에게 이렇게나 다양하고 생생한 그들만의 목소리를 부여한 시인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다”며 “글릭에게 이르러 꽃은 비로소 꽃 자체가 된다”고 적었다.
전권(14권) 판권 계약을 맺은 시공사는 12월 글릭의 첫 번째 시집 <맏이>(1969)와 두 번째 시집 <습지대>(1975)도 출간한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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