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용어의 조건]⑫ 트라우마→감정상처...전문가 선정 바꿔야할 과학·의학 용어

고재원 기자 ,이영애 기자,박정연 기자 2022. 11. 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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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사회엔 방역, 백신 접종 등과 관련한 과학과 의학 용어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홍수처럼 쏟아진 용어들은 대중들을 덮치며 혼란을 가져왔다. 코로나19에 이은 다른 감염병이 또 다시 등장할 것은 확실시 된다. 전문가들은 다음 감염병에 대비하기 위해 용어의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과학과 의학 용어 순화에 수십년 간 힘써온 이들에 꼭 바꿔야 할 용어나 용어 순화작업에 반영해야 할 의견을 물었다.  

○ 감염재생산지수→전염지수

강창원 KAIST 생명과학과 명예교수는 '감염재생산지수(R0)'를 '전염지수'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감염재생산지수는 환자 한 명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 보여주는 값이다. 감염재생산지수가 1.5면 확진자 1명이 1.5명의 확진자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유행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로 활용됐다.

강 명예교수는 "감염재생산지수는 항상 '감염자 한 명이 몇 사람을 감염시키는 지를 나타내는' 이라는 식의 설명이 붙는다"며 "그냥 들어서는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염재생산지수는 'Reproduction Number'라는 영어를 잘못 번역한 것"이라며 "Reproduction은 생물에서는 '생식'이나 '번식'의 의미인데, 이를 재생산으로 번역하니 이상해서 앞에 '감염'을 덧붙였다. 쓸데 없이 길어진 잘못된 용어"라고 지적했다.

강 명예교수는 대체 용어로 '전염지수'를 제안했다. 강 명예교수는 "직관적으로 알기 쉽고 짧아서 좋다"며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용어"라고 말했다. 

○ 트라우마→감정상처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정신에 지속적 영향을 주는 격렬한 감정적 충격을 뜻하는 용어인 '트라우마'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 대표는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외상은 몸의 외부에 입은 상처를 뜻한다"며 "트라우마는 내상도 포함하는 의미이며 용어를 들었을 때 그 의미가 바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트라우마 대신 감정상처라는 용어를 쓰길 제안했다. 이 대표는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아무렇게나 가볍게 쓰이고 있다"며 "실제로 트라우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감정상처 외에 감정부상, 마음부상, 심리부상을 대체어로 제안했다. 

○ 해당분해→당분해

'해당 분해는 CoV-2 유도 단핵구 반응과 바이러스 복제를 유지한다(Glycolysis sustains CoV-2-induced monocyte response and viral replication)'

윤경식 경희대 의대 교수는 해당분해(Glycolysis)를 당분해로 바꿔쓰길 제안했다. 윤 교수는 "전형적으로 한자로 이뤄진 용어다보니 뜻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해당과정은 어떤 일에 관련되어 있다를 의미하는 식으로 느껴지는 부분으로 이해의 어려움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Glycolysis는 쉽게 말해 당분을 분해하는 과정"이라며 "해당이란 표현보단 당분해가 더 맞다"고 말했다. 이어 "당분해는 직관적으로 포도당과 같은 당분을 분해한다고 느껴진다"며 "현재 생화학 교과서들의 상당수에서 당분해 표현을 쓰고 있고, 한자를 잘 배우지 않는 젊은 층은 당분해가 훨씬 더 쉽게 느껴지는 단어로 생각되어 향후 당분해로 정리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 디스크→등뼈판

최무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일상용어인 '디스크'를 바꿔쓰길 제안했다. 등뼈판, 등뼈사이 원반 또는 등뼈원반을 대체용어로 제시했다.

최 교수는 "디스크는 단지 원반을 가르키는 용어이지만 일상에서 매우 널리 쓰이고 있다"며 "의학에서 뜻하는 '척추사이원반(intervertebral disc)'을 자연스레 연상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자어로는 원어의 뜻을 살려 추간판이라고 하는데 한자를 알지 못하면 오해하기가 쉽다"며 "무척 흔한용어로 누구나 이미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정확한 뜻을 살리기 위해 새로운 용어를 쓰는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 선(Gland)→샘..."논의 장 만들자"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는 우리 몸의 내분비 조직을 말하는 '선(Gland)'에 대한 논의 장을 열자고 제안했다. 선은 물질을 분비하거나 배출하도록 특수화된 세포의 집단이다. 우리 몸 여러 곳에 위치하며 한자 腺(샘 선)를 그대로 따와 선으로 불러왔다. 

의협은 의학용어집에서 '선'을 우리말인 '샘'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의료인들 조차도 기존에 익숙한 용어인 갑상선과 전립성을 사용하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조 학술이사는 "갑상선이나 전립선 등은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한자어이지만 다른 선인 '한선(Sweat gland)' 등은 어려운 한자어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학술이사는 "'선'을 모두 '샘'으로 변경하는 것에 대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한자어 용어를 순우리말 용어로 변경해가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좋은 예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의협 의학용어집 제6판에는 '선'은 모두 '샘'으로 변경돼 있다. 

○ 의사환자→의심환자...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검체'나 '가검물' 등 어려운 한자어를 바꾸길 제안했다. 가령 검체는 '검사대상', 가검물은 '검사물'로 변경하자는 제안이다. 의사환자는 의심환자로 바꾸자로 주장했다.

권 교수는 낯선 외국어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고 봤다. 'CPR' 대신 '심폐소생술'을, '골든 타임' 대신 '적정 시간', '백신 패스' 대신 '방역 증명'을 쓰길 제안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등장한 신 용어인 '코로나 블루'도 바꾸자 제안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찾아온 우울증을 뜻한다. 권 교수는 코로나 블루 대신 '코로나 우울'을, 좀 더 심한 우울 증상을 뜻하는 '코로나 레드'나 '코로나 블랙'은 각각 '코로나 분노'와 '코로나 절망'으로 바꾸자고 말했다. 

○ "한자 활용해 우리말 더 풍부하게 만들어야"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한자 문화의 전통을 활용해 우리말을 더욱 풍부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비록 한자의 사용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한자 문화의 전통까지 포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며 "비말을 굳이 '작은 침방울'이라고 해야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또 "전문용어가 반드시 의미나 기능을 서술적으로 설명해야할 이유는 없다"며 "'쿼크'는 물리학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문학 작품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쿼크는 현재 발견된 물질을 구성하는 단위 중 가장 작은 입자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피네간의 경야’에서 이름을 따왔다. 

○ 메타버스→디지탈 가상세계

이광근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란 용어 순화를 제안했다. 

메타버스는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3차원(3D) 가상세계를 의미하는데 기존의 가상현실(VR)보다 진보된 개념으로 가상과 현실이 상호작용하며 여러 사회, 경제, 문화 활동이 이뤄진다. 새로운 미래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메타버스는 외래용어로 그 소리만 빌려 우리말로 표현한 대표 용어다. 이 교수는 "컴퓨터과학 분야 용인 메타버스가 일반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며 "메타버스 대신 '디지탈 가상세계'나 '디지탈 상상계'를 쓰는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국어문화원연합회 쉬운 우리말 쓰기 취재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고재원 기자 ,이영애 기자,박정연 기자 jawon1212@donga.com,yalee@donga.com,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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