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짓고 만화 그리고”…인공지능(AI), 예술가 되다?

신승민 2022. 11.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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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출간된 인공지능 시집 ‘시를 쓰는 이유’ 중 첫 번째 시 ‘밤중의 밤’ 시구(왼쪽)들과, 네이버웹툰 AI 조직이 개발한 자동 채색 프로그램 ‘AI 페인터’가 색을 입힌 만화 캐릭터. 이처럼 최근 인공지능은 과학, 산업을 넘어 예술 영역에까지 도입되고 있다. (사진 출처=신승민 기자, 네이버웹툰 제공)


■ "밤은 나의 날개이며 몸이다"…촉촉한 감성, 'AI 작가'의 등장

"소리를 따라 / 취하면 / 나는 밤의 한가운데에 와 있다 // 밤은 / 나의 날개이며 / 몸이다" -「밤중의 밤」中

"손바닥 안에 갇혀 있던 / 곰팡이의 연대기를 읽는다 / 우주에서 내려온 햇볕이 / 몸을 기어 다닌다" -「동그란 원의 신비」中

어딘가 신비롭게 느껴지는 '은유와 상징'…. 어느 서정시인이 쓴 시(詩)들일까요?

놀랍게도 이 시를 지은 시인은 '사람'이 아니라 AI(Artificial Intelligence), 바로 '인공지능(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추리·적응·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이랍니다. 지난 8월 출간된 이른바 '인공지능 시집 - 시를 쓰는 이유'에 담긴 시편(詩篇)들인데요. AI 연구 회사 카카오브레인과 미디어 아트 그룹 슬릿스코프가 개발한, '시아(SIA)'라는 이름의 AI 모델이 1만 3천여 편의 시를 학습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지난 24일 국회도서관에서 해당 시집을 살펴보니, 등단 시인인 기자가 보기에도 시어(詩語)를 나열하는 구성이 제법 정교했습니다. 각각의 표현은 아직 서투르고 주제가 모호한 측면이 있지만, '기계가 지은 시에서 감수성이 느껴진다'는 점은 분명 놀라웠습니다.

그보다 1년 앞서, 우리나라에서 AI는 이미 소설가가 돼 있었습니다. "꿇어앉은 다리에서 쥐가 날 때까지 묵상한 채 긴 침묵을 지키던 백지 스님이 어느 순간 눈을 떴다." 작년 8월 출간된 '인공지능 소설 - 지금부터의 세계'에 나오는 한 구절인데요. 실제 소설가가 주제·캐릭터·스토리 등 서사의 요소를 설정하면, AI가 설계된 구조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으로 한 권의 장편소설을 만들어냈답니다.

이처럼 오늘날 발달된 인공지능은 첨단 과학·산업 분야를 넘어,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알려진 문학 등 예술에까지 도입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AI 작가(作家)'의 등장, 그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예술 장르마다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 채색 보조부터 '이현세 까치' 구현까지…웹툰 업계 'AI 새 바람'

기자가 직접 포털 사이트 검색을 통해 시연해 본 ‘웹툰 AI 페인터’. 색을 지정하고 밑그림을 클릭하니, 색의 명암이 그림에 맞게 자동으로 조절되는 등 자연스러운 채색 결과를 보였다. (사진 출처=웹툰 AI 페인터 화면 캡처)


최근 인공지능은 문학 작품을 넘어 '웹툰(Webtoon·인터넷을 통해 연재·배포하는 만화)' 같은 만화 창작에도 접목되고 있습니다. 네이버웹툰의 AI 연구 조직 '웹툰 AI'는 작년 10월 웹툰 작가들의 채색을 도와주는 프로그램 '웹툰 AI 페인터(Painter)'를 베타(시범) 서비스로 출시했습니다.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웹툰 1,500여 작품의 약 12만 회차 분에서 이미지 데이터 30만 장을 추출한 뒤, AI에 학습시켜 만화 속 캐릭터의 신체와 작중 배경의 특징에 맞는 '자동 채색'이 가능하도록 개발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아직 시범 서비스 단계로, 포털 사이트 검색을 통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데요. 기자가 직접 써본 결과, 색을 지정해 밑그림을 클릭하니 명도(明度·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까지 세밀하게 맞춰져 자연스러운 만화 속 인물이 탄생했습니다. 네이버웹툰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바탕색 칠하기' 같은 웹툰 작가들의 단순 반복 작업을 줄여주기 위해 AI 페인터를 개발했다"며 "몇몇 기존 작가들도 해당 서비스를 시험 삼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해당 AI 조직은 실사(實寫·실물 등을 그리거나 찍음) 장면을 웹툰화(化)하는 '웹툰미(Me)'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네이버웹툰의 AI 조직이 개발 중인 인공지능 기반 프로그램 ‘웹툰미(Me)’의 시연 장면. 실사를 비롯한 다른 그림체의 웹툰 캐릭터를 ‘적용 대상 웹툰’ 장면에 맞게 자동 변환하는 기술이다. (사진 출처=네이버웹툰 제공)


'공포의 외인구단' 등 일명 '까치 시리즈'로 유명한 이현세 만화가의 작품들도 인공지능이 '섭렵'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이현세 AI', 이 작가와 만화 기획사 재담미디어가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로, 이 작가의 만화·웹툰 등 약 4천 권 분량을 AI에 학습시키고 향후 창작 과정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인데요.

지난 10월 말 '공동 기술 개발 협약'을 거쳐 현재 CD 형태로 보관돼 있는 이 작가의 만화 데이터를,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이관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재담미디어 관계자는 "1년 정도 AI가 학습을 마치고 테스트를 거치면, 수십 년간 이 작가 만화에 등장해온 여러 사물·배경·캐릭터 등을 이미지 단위로 추출해 신작(新作) 제작에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특히 초창기 이 작가 화풍(畵風)에 드러난 굵고 거친 필치(筆致)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에게 '리메이크' 작품 등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만화 기획사 재담미디어의 AI 연구소 직원이 이현세 만화가의 작품 ‘천국의 신화’ 데이터를 정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담미디어는 이른바 '이현세 AI' 개발을 위해, 이 작가의 화풍과 필치를 인공지능에 학습시킬 계획이다. (사진 출처=재담미디어 제공)

박석환 재담미디어 이사(이현세 AI 연구소장) / 前 한국영상대 만화웹툰콘텐츠과 교수

"예컨대 '이현세 AI'가 만화책 몇 천 권에 있는 '까치' 캐릭터들을 학습하고 나면, '까치 그려줘'라고 요청했을 때 여러 유형의 '평균'이 되는 모습을 그리는 거예요. 거기에 사람이 명령어를 추가하면 캐릭터의 특징을 더욱 구체적으로 그리게 됩니다. '90년대 운동선수 스타일의 스무 살 까치' 그림도 가능해지는 것이죠.

향후에는 이 작가의 '2천 년대 이후 작품 스토리·세계관'에 인공지능을 적용, 작가의 '20대 시절 강렬한 필치'를 부여하는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겠죠. 그걸 일종의 '리메이크'로 본다면, 이현세 AI가 근작(近作)을 수정·보완하는 '리테이크' 방식의 작업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문학·만화에 '음악'까지 활용…AI가 만든 곡으로 '신인 가수' 데뷔도

인공지능은 문학·만화 이전에 음악 분야에서도 일찍부터 활용돼 왔습니다. 지난 2016년 구글은 인공지능에 예술적 기능을 부여하는 이른바 '마젠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AI 모델 '마젠타'가 작곡한 80초 분량의 피아노 연주곡을 공개했는데요.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올해 11월, 구글은 별도의 악보(樂譜) 입력이나 텍스트 명령 없이도 짧은 오디오 샘플을 기반으로 그에 이어지는 음악을 '자동 생성'하는 AI 작업기 '오디오LM'을 개발했습니다.

국내의 경우, 2020년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개발한 'AI 작곡가' 이봄(EvoM)이 만든 곡으로 한 신인 가수가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이봄은 현재 전문 지식 없이도 간단하게 조작해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뮤지아(MUSIA)'라는 이름의 인공지능 작곡 프로그램으로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안종배 국제미래학회 회장(한세대 교수)은 “예술의 영역이 인공지능을 만나 ‘인간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확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인공지능 활용 기준과 윤리를 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AI 발전할수록 '인간 개입 영역' 넓어져…기능과 역할,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야"

한편 일각에서는 '인공지능의 기술 수준이 고도화돼 예술 분야에까지 활용되는 시대'에 걱정을 표하기도 합니다. '이제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창작까지 따라할 수 있는 정도로 발달'됐다면, 머지않아 인간의 존립(存立)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인데요.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대체해 미래에는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비관이 대표적입니다. 지금처럼 인공지능이 계속 비약적으로 발전해간다면, 그 같은 우려는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그러나 인공지능의 발달을 무조건 비관적이거나 무조건적 낙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 냉정하게 인간이 어떻게 개입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안종배 국제미래학회 회장(한세대 교수)은 "지금 인공지능이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기능을 보인다 해도, 여전히 '키워드 입력' '작동 개시' '결과물 최종 선택'은 인공지능을 조종하는 '인간의 몫'이다. 인공지능의 역할이 확대될수록 인간이 개입해야 할 영역은 오히려 많아질 것 "이라면서, "인공지능 활용 기준과 윤리의 정립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김병필 카이스트 기술경영학부 교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는 경계선은 계속 조정될 수밖에 없다", 즉 계속 넓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어떻게 대처할 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승민 기자 (ssm0716@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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