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지구·정치·신학 그 ‘파멸의 삼위일체’

장정일 입력 2022. 11. 27.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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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지구정치신학〉
캐서린 켈러 지음, 박일준 옮김
대장간 펴냄
ⓒ이지영 그림

서양 인류학자들은 유럽의 정복자들이 신대륙에서 목격한 원주민들의 식인 풍습(cannibalism)을 해석하기 위해 숱한 이론을 내놓았다. 희생제의설은 그 가운데 고상한 축에 들지만,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익숙할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작은 인간〉(민음사, 1995) 등 여러 곳에서 희생제의설을 비웃었다. 식인은 다른 동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게 되었던 현지 사정을 반영할 뿐, “아즈텍인들이 사람 고기에 그토록 높은 가치를 매긴 것은 결코 그들이 따르던 종교적 신앙의 자의적 결과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포도밭출판사, 2022)은 해리스도 몇 번이나 언급한 바 있는 브라질의 원주민 투피남바족의 식인을 연구한 책이다. 범(凡)투피족의 식인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지은이는 희생제의설과 식량공급설을 물리치고 그 자리를 사회문화적 해석으로 채운다. 마야·잉카·아즈텍처럼 왕국을 건설하지 못했던 브라질 원주민은 중앙집권화된 국가와 종교를 갖지 않은 대신 자신들만의 불멸관과 시간관으로 사회를 구성했다. 이들의 불멸과 시간 그리고 사회는 오로지 복수와 명예에 의해서만 지탱된다.

전쟁이 끝나면 전사들은 승리자와 포로로 나뉘고, 말싸움이 시작된다. 곤봉을 쥔 승리자가 포로에게 말한다.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사람들이 나의 친구들을 수없이 죽이고 먹었기 때문이다.” 포로가 대답한다. “나는 얼마나 대담했던가. 나는 너희들을 수없이 먹었다.” 승리자가 말한다. “너는 연기에 그을려서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먹힐 것이다.” 포로가 대답한다. “나의 친척들도 원수를 갚아줄 것이다.” 이 말싸움은 포로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자에 대해 이미 복수를 행하고 있으며(도치), 희생자와 살인자가 서로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순환)하는 극적인 의례다. 지은이는 브라질 원주민의 식인주의에 “시간의 초월론적 종합”이라는 이름을 달아주는 동시에, 그들이 먹은 것은 음식물이 아닌 기호라고 주장한다. 투피남바족에게는 국가 대신 사회가 있었다. 국가가 문명의 기본값으로 장착된 서양 인류학자에게 원주민들의 사회는 미개해 보였다.

다나카 히카루는 〈생리용품의 사회사〉(호밀밭, 2022)에서 생리용품은 그 사회의 월경관이나 여성관뿐만 아니라 정치나 경제도 반영한다면서 “생리용품은 사회를 읽는 지표”이기도 하다고 썼다. 과장이 아니다. 중국 의학서로 가장 오래된 〈황제내경소문〉은 월경에 대해 “14세에 이르면 천계가 도래하여 임맥이 통하게 되고 태충맥이 성해지는데 이때부터 월사가 있게 되어 자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라고 썼다. 일본의 고대 의학서 역시 ‘월경=여성이 성숙한 증거’라는 극히 사실적인 중국 고래의 월경관을 고스란히 따랐다.

하지만 12세기 전후에 이르자 ‘혈예(血穢:생리혈의 더러움, 불결함, 부정함)’를 이유로 월경 중인 여성을 단속하는 허다한 관습법이 생겼다. 그동안 월경 금기는 민간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났다는 설이 통용되었으나, 최근에는 중앙집중화된 정부 체계가 성립되던 헤이안 시대(794~1185)에 궁정과 귀족 사회에서 생겨난 여성 억압 시스템이 일반 사회와 지방으로 전파되었다는 설이 유력해지고 있다.

일본 사회의 월경관은 군인과 노동자가 필요했던 메이지 시대에 위생과 청결이라는 관점으로 크게 바뀌었으나, 그보다 더 큰 변화는 1961년부터 시판된 일회용 생리대의 출현에서 시작됐다. 일본 최초로 일회용 생리대를 만든 ‘안네사’는 〈안네의 일기〉의 저자인 안네 프랑크의 이름에서 회사명을 따왔다. 안네사의 사장 사카이 요시코는 〈안네의 일기〉(책세상, 2021)에 나오는 한 대목에 매료됐다. “나는 생리 기간만 되면(지금까지 생리를 세 번밖에 안 했지만), 비록 배가 아프고 불편하고 좀 역겹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마치 달콤한 비밀을 간직한 기분이 드는 거야.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런 비밀의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힘들기는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매번 그 기간이 찾아오기를 기쁘게 기다리지.” 요시코는 자신이 만든 상품에 생리를 ‘달콤하고 기쁜’ 것으로 여긴 안네의 낯선 인식을 접맥시켰다.

인간·백인·남성 중심의 성서 해석

정교분리는 근대의 시작이다. 우리는 이 교의를 철석같이 믿기에, ‘신학과 정치는 떨어질 수 없다’라는 주장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캐서린 켈러는 〈지구정치신학〉(대장간, 2022)에서 근대적 교의에 세뇌된 우리의 맹신을 바로잡는다. 마키아벨리 이후로 정치 이론이 결별한 것은 도덕이었지 신학이 아니다. 카를 슈미트의 〈정치신학〉이 그것을 노골적으로 입증한다. 나치의 어용 학자였던 그는 “국가에 관한 근대 이론의 모든 중요한 개념들은 신학적 개념들을 세속화한 것”이라는 논리로 정교분리를 간단히 부정했다. 전능한 하나님은 전능한 입법자 곧 총통이 되고, 하나님만이 행사할 수 있는 최후 심판은 총통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수권법(授權法:행정부에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는 법률)과 동일시되었다.

미국 대통령이 성서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것을 보면, 세속적 정치권력과 기독교 가운데 어느 쪽이 상대 몰래 숨어든 트로이의 목마인지 짚어내기 어렵다. 성서가 선민과 이교도를 구분하듯이, 기독교 근본주의와 대안(강경) 우파를 혼합한 도널드 트럼프는 여성·흑인·무슬림·멕시코 난민을 적으로 간주했다. 세속화된 기독교 신학은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권력자와 자본가로 하여금, 가난한 이들과 지구에 부여된 모든 희생은 그 어떤 것이든지 간에 “모든 가능한 세계 중 최선(라이프니츠)”을 위한 것이라는 정치적 신정론을 펼칠 수 있게 해주었다.

트럼프는 제45대 미국 대통령이 되자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했고 생태지향적 정책들을 되돌렸으며 기후위기를 부정했다. 이런 결정의 배후에는 인간 중심·백인 중심·남성 중심의 성서 해석이 도사리고 있다. 켈러는 인류세라고 불리는 오늘이 지구(생태)·정치·신학이라는 세 영역에서 삼중적 종말을 마주하고 있으며,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 영역을 ‘파멸의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슈미트의 정치신학이 하나님에게 전능과 예외주의를 부여하는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또는 성서 해석)에 의존한 까닭에, 민주주의는 혼란에 빠지고 파시즘이 합리화되었다. 반면 지은이의 하나님은 군주적 전능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만물과 상호연관된 반예외적 존재다. 이처럼 신학이 새로 구성되어야 정치가 새로 구성되고, 따라서 지구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지구정치신학〉의 핵심이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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