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과 언론의 적정 거리는 얼마일까

성한용 입력 2022. 11. 27. 07:05 수정 2022. 11. 2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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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의 정치 막전막후][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56
역대 대통령과 언론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과 약식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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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이하기도 어렵고 멀리하기도 어려운 관계를 말합니다. 권력과 언론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권력과 언론이 너무 가까우면 권언유착(權言癒着)입니다. 권력과 언론이 너무 멀면 언론이 권력을 감시할 수 없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 역대 정권과 언론의 관계는 파란만장한 대한민국의 역사 그 자체였습니다. 독재 정권에서 정권은 가해자, 언론은 피해자였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경향신문>을 폐간했습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소장은 <민족일보>를 폐간하고 조용수 사장을 사형시켰습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에 압력을 넣어 언론인들을 무더기로 해직시켰습니다.1980년 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채찍과 당근을 사용했습니다. 쿠데타에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해직시키고 언론사를 통폐합했습니다.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을 국가보위입법회의 위원으로 참여시켰습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최병렬 조선일보 편집국장, 강용식 한국방송(KBS) 보도본부장을 민정당 전국구 의원으로 발탁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제와 권언유착 실상은 1986년 보도지침이 폭로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보수언론과 전쟁’ 벌였던 DJ

1987년 6월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거쳐 들어선 노태우 정부는 언론의 자유를 크게 확장했습니다. 언론기본법이 폐지됐고, 정기간행물 등록이 개방됐습니다. 신문사가 지면 수와 구독료를 자체적으로 책정하는 ‘자율화’가 이뤄졌습니다. <한겨레>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이 이 시기에 창간됐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표출되는 민심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개혁 정책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언론사 간부들과 청와대에서 식사하면서 “내일 아침 1면 톱기사가 뭐냐”고 물어본 뒤 그날 오후에 중요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언론도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노태우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정권과 언론의 관계가 뒤집히기 시작합니다. 대통령 권력은 5년이었지만 언론 권력은 임기가 없었습니다. 언론은 임기 말에 힘 빠진 대통령이나 퇴임한 대통령을 공격했습니다. 언론의 이런 모습을 하이에나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호남과 재야 기반의 소수 세력이었던 김대중(DJ) 정권은 아예 집권 과정부터 언론과 피투성이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세개의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1989년 조평사태(조선일보-평민당 소송 사태)입니다. <주간조선>에 ‘김대중 평민당 총재 일행의 유럽 순방 동행 취재기’가 실렸습니다. ‘좌파에도 우파에도 손짓, 수행 의원들 추태 만발’이라는 제목으로, 의원들이 맨발로 비행기 안을 돌아다니고, 교황에게 ‘헤이’라고 부르고, 외국인 부인에게 ‘너 ○○ 좋아해’ 하고 물었다는 등의 기사를 쓴 것입니다. 김대중 총재는 ‘조선일보 허위·왜곡 보도 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싸웠습니다.

“조선일보의 과오와 그로 인한 해악은 실로 심대했다. 첫째, 유신 시대는 물론 5공화국 시절에도 수많은 기자와 언론인들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그러면서도 국민들을 교묘하게 속여 독재의 나팔수 역할을 했다. 둘째, 민중의 편에 서기보다는 독재자와 재벌의 이익을 대변해 왔다. 셋째, 그럼에도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거나 국민에게 사죄하는 최소한의 양심적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김대중 자서전) 조선일보는 1992년 대선,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불리한 기사와 논평을 이어갔습니다.

둘째,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조선일보와 케이비에스 취재를 거부했던 사건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이 입북을 거부한 기자들을 비행기에 태우라고 지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한은 민주 국가이다. 민주 국가에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정상 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고 누가 수행 취재를 가느냐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취재 기자 선별까지 양보하면서 정상 회담을 할 필요는 없다.” 조선일보와의 갈등은 갈등이고, 언론의 자유를 민주주의 체제의 가치에 관한 문제로 인식한 것입니다.

셋째, 2001년 언론사 일제 세무조사입니다. 국세청이 전국 23개 언론사를 상대로 4개월 넘게 세무조사를 벌여 6개 언론사와 3명의 사주를 포함해 12명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사주가 구속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권력과 언론의 유착 관계를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통령으로서 회피할 수 없었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후 해당 언론사들이 나와 정부를 거칠게 몰아붙였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나에게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처럼 분명하고 단호한 원칙으로 언론을 대했습니다.

‘언론권력’에 맞섰던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도 김대중 대통령 못지않게 조선일보와 사연이 많은 정치인이었습니다. 1991년 통합민주당 대변인 시절 주간조선의 비판 기사(‘노무현 의원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에 소송을 걸었습니다. 1심에서 2천만원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조선일보 사장과 기자의 사과를 받고 소송을 취하했습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조선일보가 이회창 후보를 노골적으로 민다고 생각한 노무현 후보는 조선일보를 친일·반민족신문, 반민주신문, 수구·냉전·특권 세력이라고 공격했습니다. 대선주자 인터뷰도 거절했습니다. 대선 하루 전날 정몽준 후보가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한 사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오다가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제목으로 1면을 시커멓게 깔아 놓은 조선일보를 보았다. 내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그런데 그 시각 수많은 지지자들이 동네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남의 집 현관에 놓인 조선일보를 몰래 치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몰랐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후 자서전에 정권과 언론의 관계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의 글을 남겼습니다. 제가 인상적으로 읽은 대목만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대통령에게는 언론을 개혁할 수단이 없다. 그것은 대통령의 일이 아니다. 내가 대통령으로서 개혁하려 한 것은 정치권력과 언론 권력의 관계였다. 나는 언론 권력과의 유착을 단절했다. 언론 권력의 부당한 특권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론 자유를 탄압한 적은 결코 없었다.”

“내가 대통령이던 5년 동안 대한민국 언론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언론 자유를 누렸다. 그들은 자기네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다 했다. 나는 다만, 언론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대통령이고자 했다. 그뿐이다.”

어떻습니까? 간명하지요?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언론의 싸움은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검찰이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했습니다. 2011년 출판된 <문재인의 운명>은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검찰과 언론이 한통속이 돼 벌이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은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사법처리가 여의치 않으니 언론을 통한 망신주기 압박으로 굴복을 받아내려는 것 같았다. 언론은 기꺼이 그 공범이 됐다.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기사는 보수 언론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칼럼이나 사설이 어찌 그리 사람의 살점을 후벼 파는 것 같은지, 무서울 정도였다.”

그때의 상처 때문이었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뒤에도 언론을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비서실에 홍보수석 대신 국민소통수석을 뒀습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전직 대통령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언론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역대 대통령들이 언론과 겪은 갈등과 비교하면 어린아이의 투정에 가깝습니다. 그는 언론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었던 4월6일 신문의 날 행사에 참석해 “언론과의 소통이 궁극적으로 국민과의 소통”이라며 “앞으로도 민심을 가장 정확히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소리도 잘 경청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뒤 말과 행동, 특히 국외순방 중 비속어 논란과 <문화방송>(MBC) 기자 전용기 탑승 거부, 출근길 약식회견 중단 등 일련의 행태는 소통과 경청과는 전혀 다른 태도입니다.

현재진행형인 ‘MBC 구박사건’

보수 언론과 언론인들도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러지 말라고 비판하지만 ‘쇠귀에 경 읽기’입니다. 도대체 왜 이럴까요? 세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정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언론과 야당이 바로 민심이고 여론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도 최소한 그 정도는 알았습니다. 정치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독선적 성격 때문입니다. 평생 검사만 해서 그런지 남의 비판을 받아들일 줄 모르고 ‘갑질’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과거 독재자 대통령들보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셋째, 지지율 하락 때문에 고정 지지층을 붙잡아두려고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쨌든 생각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효과는 없을 것입니다. 고정 지지층이 굳어지면서 고정 반대층도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윤석열 대통령 편이 아닙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엠비시 구박 사건’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말로 문화방송 기자들의 용산 대통령실 출입을 막을까요? 다음 외국 순방 때도 문화방송 기자들을 전용기에 태우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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