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 억울함 풀어주려 했는데" 출고되지 않는 기사를 쓰는 기자
[인터뷰] 이창호 민주노총 인천일반노조 기호일보분회장
[미디어오늘 김예리 윤유경 기자]
이창호 민주노총 인천본부 인천지역일반노조 기호일보분회장은 현직 사회부 기자다. 2014년 기호일보에 입사한 그는 “기자가 되고 싶은 적도, 동경한 적도 없었다”고 했다. “돈 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싶은데, 기자를 하면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기자로 10년, 노조 탄압에 맞선 지 5년째를 맞은 그는 “그 꿈은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정작 필요한 보도를 하지 못하는 문화를 깨고자 노조를 한다. 지역신문에 변화가 필요한 걸 모두 알고 있다”고 했다.
현재 이창호 분회장이 쓰는 기사는 출고되지 않는다. 기호일보 편집국장이 그가 쓰는 기사의 데스킹을 무기한 거부하고 있다. 기호일보는 앞서 올해 그에게 정직 4개월 징계를 내렸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징계 판정하자 재차 2개월 정직 징계했다. 노조 활동을 알리는 인터뷰와 기고, 사측 비판 성명 등이 이유다.
이 분회장과 조합원들은 2019년 기호일보노동조합을 세우고 사장 범죄 혐의와 편집권·노동권에 목소리 낸 뒤 회사로부터 인사 불이익과 민·형사 고소를 겪어왔다. 그럼에도 회사 규탄 성명을 내며 목소리를 이어간다. 지난 8월엔 이 분회장이 한 사장의 배임과 노조법 위반 엄벌을 촉구하며 삭발을 했다.
그는 “지난한 싸움이 벌써 4년이 됐다. 무기력하게 만들려는 회사의 노림수가 어느 정도 적중하긴 했다”면서도 “변화를 일으키고 싶고 또래 동료들과 오래 일하고 싶기에 노동조합을 한다”고 했다. 인천 남동구 기호일보 인천본사 1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지난 9일 그를 만났다.
사장 잇단 비위 재판…노동권·편집권 침해에 목소리 터져
인천지검 특수부는 지난 2018년 8월 기호일보와 경인일보, 중부일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인천 대표일간지 간부들이 지역행사 개최 명목으로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빼돌린 횡령 사건이다. 경인일보 사장이 이를 계기로 사퇴했다. 기호일보 한창원 사장과 사업국장도 징역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한 사장은 '형사상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해고'하도록 한 취업규칙을 거슬러 자리를 지켰다.
“그 때 내부에서 목소리가 나왔어요. 재판이 끝났고, 기호일보가 대시민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노조 설립 목소리도 그 때 모였다. “노조도 없고, 사내 민주화는커녕 (회사가) 기자들의 사적 모임 자체를 싫어하던 때”였다. 기자 5명이 기호일보노동조합 2019년 2월 창립총회를 열었다. “활동 시작하자마자, 한창원 사장이 대시민 사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과 부당한 보도시스템을 개선하자는 선언문을 냈어요.” 그는 사무국장을 맡았다.
기호일보 내 편집권 침해 사례도 쌓여왔다. 그해 인천개인택시조합의 김아무개 의원(당시 지선 출마) 출판기념회 동원 의혹 보도가 한 사장 전화로 포털에서 내려왔다. 같은 해 이 분회장이 썼던 박아무개 국회의원 보좌관 갑질 폭로 연재 보도도 한 사장 압박으로 불발됐다. 2년 앞서 인천시 고위공무원 부부의 '공짜진료' 고발 보도도 한 사장이 막았다.
노동권 침해에도 내부 비판이 턱밑까지 올라왔다. 회사는 연차 사용을 70%까지 제한하는 일부 관행을 유지하고 회사 행사에 직원을 공짜로 동원해왔다. 노조가 회사에 개선을 요구해 이들 관행은 중단됐다. 그는 “70여명의 기자들이 인천과 경기 31개 시군으로 흩어진 기호일보 내에서 연말에 조합원이 20명을 넘었다”고 했다.
사장 퇴진 요구, 노조탄압 시작…22명 이르던 조합원이 5명으로
2020년 8월 기호일보 비리 보도가 또 터졌다. 뉴스타파는 기호일보 경영진이 2019년 2월 인천관광공사 예산으로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 사장단의 '공짜팸투어 취재 지원'을 다녀왔다고 보도했다. “다른 팸투어 사례와도 다른 게, 신문사가 먼저 제안한 거예요. 그 때 본격적으로 사장 비위를 비판하고 사퇴를 촉구하기 시작했어요.”
이 시기와 맞물려 노조탄압이 본격 시작됐다. 시작은 노조위원장 징계였다. 회사는 상사의 별명을 언급한 문자를 실수로 당사자에게 보냈다는 이유로 당시 위원장 A씨에게 정직 2개월 처분했다. 조합원 괴롭힘도 있었다. 노조가 성명을 내 연차 사용을 제한한 한 부서장을 지적하자 해당 부서장이 성명을 작성한 기자를 색출해 괴롭힌 사건이다. 위원장과 조합원 괴롭힘이 이어지면서 노조원은 점점 줄어갔다. “그러다 우리가 1인시위를 했더니 두 명이 또 탈퇴했어요. 그렇게 다섯 명이 지금까지 남아있어요.”
이후 기호일보분회는 한 사장의 이어지는 편집권 침해를 규탄하고, 퇴진을 요구하며 사측에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가 세워진 뒤에도 한 사장이 직접 기사 삭제를 지시하는 등 편집권 침해 사건이 두 차례 불거졌다. 이에 한 기자는 자괴감에 퇴사했다. 2020년 말엔 한 사장을 옹호하는 전 간부와 직원들이 '기호일보를 사랑하는 노조'를 세웠다. 한 사장은 1인시위를 한 조합원 전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한 사장은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했다. 한 사장은 업무상 배임과 노조법 위반(교섭해태)으로 징역 1년을 구형받고 선고를 앞두고 있다.
“두 번째 징계는 아내에게 말 못하겠더라”
빌린돈 몰래 갚으며 노조 활동 계속
지난해엔 회사가 이 분회장의 대내외 노조 활동을 모아 정직 4개월 징계에 나섰다. 기호일보는 △한 사장 편집권 침해 사건 언론 인터뷰 △노조활동에 대한 인천저널 기고 △근무평가제도 추진 반발성명 △칼럼 수정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인천지노위는 기호일보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넉 달 정직을 저는 꼬박 채웠어요. 나중에 근무에 갈음한 돈을 받긴 하지만 이 기간 동안 기자로서 생활을 못한 건, 취재원과 관계가 끊긴 건 어떻게 보상할까요. 제보를 받아도 기사를 쓰지 못하는 게, 어느 순간 무기력감이 찾아와요.”
회사는 지노위 판정을 받아들인 뒤 재차 정직 2개월 징계에 나섰다. 지노위가 인정한 사유만을 적용해서다. 그는 “회사의 노림수가 적중한 건 맞다”며 “연속해 징계를 받으니 노조 일은 계속하겠는데 개인적인 무기력증이 심하게 오더라”고 했다. 지노위는 이 분회장의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첫 징계때는 아내에게 얘기했어요. 택시기사도 하고, 월간지 교정, 영상 제작 PD 알바도 하고. 뉴스타파 저널리즘스쿨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두 번째 징계를 받고선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월급은 꿔서 가져다 주고, 어차피 (지노위에서) 이길 테니 받아 채우면 되겠지 했는데. 질 줄 몰랐네요.(웃음) 대여금을 몰래 갚고 있습니다.”
언론노조 가입을 시도했다 불발을 겪기도 했다. 그는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아닌 인천본부에 가입한 이유를 묻자 “언론노조에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2020년 9월 교섭과 사장퇴진 요구 당시엔 “회사하고 싸우기보다는 조합원을 좀 늘리는 편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한 차례 더 만났을 때에는 “어려울 때 찾아오면 다른 사업장에서 형평성이 안 맞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기호일보노조가 지난해 초 참언론시민연합 소개로 민주노총 인천본부에 가입한 계기다.
백재웅 언론노조 전략조직국장은 이와 관련 미디어오늘에 “언론노조는 과거 기호일보 노조탄압 전적을 봤을 때 먼저 조합원을 확대할 것을 제언했다. 이후 노조탄압을 겪는다는 소식에 노조를 만났고, 기업별노조를 택한 뒤 노조가 어려움에 직면하자 가입 문의를 하는 데 지역신문노조 입장에서 탐탁치 않을 수 있다고 얘기했다. 교섭을 유연하게 풀어갈 것을 조언하고 연대기자회견을 했다”고 말했다.
복직하고도 기사 못 내…동료의 손가락질이 가장 힘들다
이 분회장은 정직 2개월 징계를 끝내고 지난 1일 복직했다. 그러나 그가 쓴 기사는 지난 7월부터 보도되지 않고 있다. 기호일보분회가 지난 6월 분회 유튜브채널로 우승오 기호일보 편집국장의 출입처 유흥업소 접대수수 사실을 밝힌 뒤부터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를 부정청탁금지법 위반으로 판단해 사측에 우 국장 과태료 부과 통보를 지시했다. 우 국장은 유튜브에 나온 이 분회장과 조합원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우 국장이 출고를 거부한 이들의 기사는 현재 300여건에 이른다.
(회사는 해당 출입처에서) 물 먹는 것을 감수하는 거죠. 일 그만뒀냐는 주변 연락이 많이 와요. 그럼 '편집국장이 기사를 안 내보낸다, 아예 막는다'는 치욕스러운 얘기를 매번 해야 해요.” 경찰은 해당 유튜브가 사실 적시에 해당하고 공익적 목적이 인정된다며 이들을 불송치했다. 노조는 우 편집국장을 업무방해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그는 노조활동을 하며 조직 내부의 손가락질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첫 고소를 사장이 시작했어요. 편집국장도 고소를 했고요. 저희도 고소를 했고요. 그런데 이걸 다른 직원들도 알잖아요. 손가락질을 해요. 한 사장과 경영진을 옹호하는 간부나 직원들이에요. 기자들이 모인 단체방에서 '가족같은 사람들을 흠집 낸다'며 노조원들을 나무라요. 나가도 다시 초대되고. 사이버불링이죠. 같은 직원끼리 하는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요.”
“오랫동안 같이 하고 싶기에 싸운다, 시스템 변해야”
이 분회장은 그럼에도 싸움을 이어가는 이유에 '지역언론 개혁'을 말했다. “지역신문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침몰하는 타이타닉 같다고'들 해요. 지역신문 자체가 고꾸라지고 있어요. 모두가 알지만 변하질 않아서. 인천·경기에서 기호일보 이직률이 제일 높아요. 주니어 기자들이 성장을 못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 기자들에게 광고를 받아오도록 해 수익 모델로 가져가는 비합리적 시스템도 문제예요.”
그는 “시스템이 변하면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신문은 서울에 있는 신문사들이 하지 못하는 탐사보도를 할 수 있다. 지역언론의 기자들이 현지 소식과 네트워크에 가장 강하다”며 눈을 빛냈다. “저도 당연히 이 회사에서 오래 일하고 싶고, 변화도 일으키고 싶어요. 같이 함께 한 노조원들, 직원들과 오랫동안 같이 가고 싶어요. 그래서 이 지난한 싸움을 해 온 지 벌써 4년이네요. (웃음)” 기호일보분회 조합원 5명은 현재 노조의 분투기를 담은 책을 쓰고 있다. 가제는 '계속 고생하겠습니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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