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친절해져야 한다 [대통령의 독서]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나를 줄어들게 하는 것이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종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가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어니스트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존 던의 기도문’
한 송이 꽃이 피어나기까지
허망한 죽음 앞에서 꽃을 생각한다. 저 홀로 피지 못하는 꽃. 벌과 나비의 가벼운 날갯짓을 빌려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들. 느린 걸음마와 포대기 안의 유년들, 이른 아침 밥상과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소년들, 질풍노도와 실패의 강을 건너야 할 청년들. 한 송이 꽃이 피어나기까지 공감, 공생, 공존으로 살아온 생명들이 얼마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어왔는지 생각한다. 흩날린 꽃잎들 사이에서 얼마나 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살아야 할지, 또 생각한다.
정부는 미숙하다. 허둥지둥 선술집에서 술기운에 자기들끼리 나눈 이야기로 나라를 끌어간다. 그들은 일상의 고투, 함께 가고자 걸음을 늦춰야 했던 그 시련의 마음을 모른다. 자격시험으로 어른 대접을 받으며 성숙해질 시간을 갖지 못했다.(후지타 쇼조, <정신사적 고찰> ‘어느 상실의 경험’) 과보호 속에서 살아와 타인의 안전에 관심이 없다. 무엇보다 큰 책임은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의 일상을 이기심과 대결, 죄의 수렁에 빠뜨리는 광란에 호기심을 가진 것이다.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알아주지 못했다고, 그들이 승리하도록 내버려둔 책임도 아주 크다. 참혹한 골목길 앞에서 자유롭기란, 너나없이 힘겹다.
식물은 긴 세월 오래 견뎠고, 달라졌다. 겨울에 잎을 떨구고도 자손을 남길 수 있도록 씨를 보호했다. 곤충과 작은 동물의 도움이 있었고, 달콤한 꿀과 열매를 나눴다. 겉씨식물을 마구 먹어치웠던 공룡은 어느새 지구를 뒤덮은 꽃에 외면당했다. 공룡 멸종에 대한 많은 가설이 있지만, 받기만 하고 주지 못한 탓에 멸종했다는 이 가설이 접할 때마다 가장 아리다.
“사람들이 원래 친절하게 태어났다고 믿는 것은 감상적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화와 용서를 믿는 것은 용감하고 현실적이다. (…) 이는 세월만큼 오래된 진리이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더 많이 줄수록 더 많이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신뢰와 우정에 관한 진실이자 평화의 진실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참호에서 나온 병사들: 희망의 전염성’
비관론자는 인간의 타락을 강조하고, 그들의 예측은 항상 맞는 듯 보인다. 언제든 그러한 사례는 드물어도 나타나게 마련이다. 자신의 비관론 때문에 최악을 피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방관자 효과’는 대표적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언론에서 방관자로 지목당한 38명의 진실
1964년 3월 어느 날 새벽 3시, 미국 뉴욕에서 캐서린 제노비스가 아파트 현관에서 칼에 찔려 숨졌다. “나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어요”라는 한 목격자의 증언에 38명의 목격자는 38명의 방관자로 전락했다. 좀 안다는 사람들이 대중을 폄훼하며 늘 사례로 들었던 것이지만, 사실 캐서린은 혼자가 아니었다. 캐서린이 죽고 10년이 지나 새로 이사 온 아마추어 역사학자 조지프 드메이가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그림이 한 조각씩 나타났다. 소피아는 캐서린이 아래층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소피아는 친구를 팔로 감쌌고 캐서린은 잠시 긴장을 풀고 그에게 기댔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있었다.(<휴먼카인드> ‘캐서린 제노비스의 죽음: 언론이 만든 방관자 효과’)
희망은 충분하다. 지금도 가정에서, 거리에서, 회사에서 더 많은 사람이 친절을 베풀고 서로를 돕고 있다. “인간의 선함을 옹호한다는 것은 조롱의 폭풍을 뚫고 나가야 함을 의미”(브레흐만)하고, “적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시인이나 성인, 또는 변절자들의 특권일 뿐”(에코)일지라도 우리는 우정과 친절, 협력과 연민을 용감하게 드러내야 한다. 더 많이 전염시켜야 한다. 기후변화, 불평등과 같이 위기가 고조되는 마당에 인간의 선한 본성을 낙관하는 것에 경계하는 목소리가 있음을 안다. 그렇지만 국민을 피지배자로만 취급하는, 이 미숙하고 분노에 찬 정부는 안전보다 원자력을 지지하고, 다수보다 소수를 선택한다.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적 견해는 곧바로 위협이 된다. 규제 대신 민주주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기를 극복할 희망의 단초는 서로의 안전을 걱정하는 평범한 우리의 본성 안에 있을지 모른다.
2020년 7월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노동기구(ILO) 글로벌 회담 연설에서 한국의 지역 상생형 일자리 모델을 소개했다. 대통령은 연설문에 그분들의 노력을 꼭 집어 담아내라 했다. 당시 지역 노사정은 상생 협력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우리의 전통적 상호부조 정신을 노사 간에 서로 양보하고 고통을 분담하는 문화로 키워나가고 있었다. 코로나19가 일자리를 위협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가운데 위기 극복의 힘이 돼주고 있었다. 연설 마지막에 문 대통령은 도도새 이야기를 새겨넣었다.
“인도양 모리셔스에서는 도도새가 멸종하자 도도새의 먹이가 되어 씨앗을 발아시켰던 나무들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상생이 먼저입니다. 이웃이 살아야 나도 살 수 있습니다. 인류는 협력하도록 진화해왔고, 분업을 통해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나눴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낍니다. 국제사회가 각자도생이 아닌 상생의 길로 가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격차와 불평등을 좁히는 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 ILO가 있고, 한국도 함께 협력하며 행동할 것입니다.”
‘적자’는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에 의한 친화력
2022년 7월, 문 전 대통령이 페이스북에서 추천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휴먼카인드>의 자연과학 버전이다. 우리는 자칫 멸종될 수 있었지만, 중기 구석기시대에 이르러 우리, 오로지 우리 종에게서만 집중적인 친화력 선택이 진행됐다. 옥시토신은 산모가 아이를 분만할 때 범람하는데, 이 옥시토신이 충만하면 낯선 사람에게서 친절을 느낀다. 설령 몸을 황토색 무늬로 치장한, 이상한 사람이라도 손을 잡을 수 있을 만큼 다가가 눈을 마주친다면 옥시토신이 다시 솟구친다. 그렇게 생긴 신뢰감과 돕고 싶은 마음이 우리 종을 특출하게 만들었다.(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가장 다정한 사람이 승리했다’)
우리는 또 그렇게 우리의 본성으로 돌아가 공감, 공생, 공존하고 다시 특출해질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적자생존’의 진화에서 ‘적자’는 강하고 냉혹한 것이 아니라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에 의한 친화력이란 뜻밖의 사실을 많은 자료로 보여줍니다. 사회와 국가의 번성도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라는 추천글을 남겼다. 정치 현실만 유독 친화력에서 멀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어지럽힌 현장의 청소가 오직 국민의 몫이라는 게 안타깝다. 전후 사정을 떠나 풍산개들을 품속에서 떠나보낸 일 역시 난감하다. 국민은 지도자가 초지일관 친절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꼽았다. 그는 모든 연설과 담화에서 ‘모두를 위해’(For every)라는 문구를 즐겨 썼고, ‘누구를 위한’(For whom) 희생정신이냐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 소설에서 공감과 공존을 읽었다. ‘인종도, 성별도, 사회적 위치도 다른 모든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에 변혁의 종을 울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마쓰모토 미치히로, <오바마의 서재> ‘헤밍웨이를 향한 동경’) 김대중 대통령이 꼽은 소설 목록에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자리하고 있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의 물음에 일일이 응답하는 자세는 타인에 대한 공감 없이 가능하지 않다.
흩날린 꽃잎들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길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증오를 부추기지만(증오는 그들 집권의 일등 공신이다), 우리는 더 친절해져야 한다. 그것이 허망한 죽음을 막는 길이다. 불행한 시대에 우리의 관습이 되었던 비난, 폭력, 권위주의의 굳은 얼굴을 우리가 먼저 풀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방법이며, 흩날린 꽃잎들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서둘러야 할 것이 있다. 더 많은 우리가 친절해져야 한다, 반드시, 후손을 위해.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오.” ―베르톨트 브레히트, <나, 살아남았지> ‘후손들에게’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대통령의 독서: 지도자는 진지한 삶과 독서로 탄생합니다. 그의 말과 글에는 마치 수면 아래 빙산처럼 오랜 시간 다져진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신동호 시인이 역대 대통령들의 독서가 어떻게 말과 글에 반영됐는지 좇아가는 글을 연재합니다. 3주마다 연재.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