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기보다는 살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겨레 2022. 11. 2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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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이선경의 나를 찾아가는 주역]

해돋이. 사진 픽사베이

※이번 연재는 지난 4회차의 후속편입니다.

“새벽해가 동방에서 떠오르매 그 빛이 만물에 통하고, 봄바람이 동방에서 일어나매 그 기운이 세상 끝까지 흡족하다.”(최치원, <대낭혜화상비문>)

▪ 동(東)을 말하는 이유는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는데, ‘풍류’라 한다. ‘풍류’는 실로 ‘삼교’를 포함하고 뭇 생명을 만나 변화시킨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고, 사람에게는 이방(異邦)이 없으니, 그래서 동인의 자손들(東人之子)이 불교도 하고 유교도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위의 두 문장은 최치원이 신라의 정신으로 ‘풍류’를 소개한 핵심 내용이다. 잠시 9세기 신라로 돌아가 해 떠오르는 서라벌 바닷가에서 최치원 선생을 조우(遭遇)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본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풍류가 삼교를 포함하고, 뭇 생명을 만나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도(道)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고, 도의 세계에는 이방인이 없기에 동인의 자손들이 유교도 하고 불교도 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도 하셨지요. 저는 이 말씀을 ‘진리를 탐구하는 목적은 참된 나를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신라인은 어떤 진리체계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여 다 함께 성숙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자양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위에서 ‘동인(東人)의 자손’이라고 하셨는데, ‘우리 신라인’이라고 써도 될 것을 굳이 그렇게 표현하신 이유가 있나요? 풍류의 전통은 우리의 선조인 ‘동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의미를 담으신 것일까요? ‘동인’은 누구인가요?”

마음으로 만난 고운(孤雲) 선생이 답을 할 리 없으니 그가 남긴 글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본다. 누군가는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동국’(東國)이라 불러왔으니, ‘동인’(東人)이란 그저 동쪽 사람이라는 뜻일 뿐일 텐데 그리 천착할 필요가 있느냐 물을지 모르겠다. 필자는 굳이 그럴 이유가 충분히 있다고 답하겠다. 왜냐하면 최치원은 그의 글 곳곳에서 ‘동’(東)의 의미를 화려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픽사베이

▪ 동(東)은 빛, 생명, 인(仁)을 상징

누군가의 생각처럼 ‘동인’은 ‘동쪽 사람’이므로 통상 대륙의 동쪽, 중심이 아니라 동쪽으로 치우친 곳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기 쉽다. 한반도가 대륙의 동쪽에 위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치원은 ‘동’(東)의 의미를 ‘치우침’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새벽해가 올라와 천하의 어둠을 깨뜨려 만물을 비추고, 봄바람이 온화하게 널리 퍼져 만물을 기르는데, 새벽해와 봄바람은 모두 동방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즉 동(東)은 빛과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에 최치원은 오행(五行)사상에 따라 동방이 ‘인’(仁)의 방위이자 봄(春)의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역사에서 음양오행은 세계의 기본질서를 나타내는 보편적 원리로 받아들여졌다. 이른바 오행의 체계는 정치 및 사회제도 그리고 문화의식을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서울의 동대문을 흥인지문(興仁之門), 서대문을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을 숭례문(崇禮門)이라 부르며,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 근처에 홍지문(弘智門)을 세우고, 동서남북 사대문(四大門)의 중심에 보신각(普信閣)을 배치한 것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동서남북중앙에 짝하는 다섯 방위의 성질로 본 것이다. 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동남서북의 네 방위에 배치한 것 역시 오행사상에 따른 것이다. 참고로 이 경우 중앙의 토(土)는 계절 사이사이의 환절기로서 각 계절의 순조로운 전환을 돕는다.

그런데 인예의지(仁禮義智)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가운데서도 으뜸은 역시 인(仁)과 봄이다. <주역> 건괘(乾卦)에서 볼 수 있듯 어떤 생명도 차별 없이 소생시키는 것이 바로 봄의 덕성인 인(仁)이요, 그러한 생명살림의 정신이야말로 모든 선(善)의 으뜸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봄과 인(仁)의 생명력은 자기 자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며 점차 성숙되어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적 배경 속에서 최치원은 ‘동방’에 ‘생명’과 ‘인’(仁)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니 동인(東人)은 그저 동쪽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빛의 사람, 생명의 사람, 인(仁)의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최치원은 이러한 동인(東人)의 연원을 고대 중국의 여러 역사서에 실린 ‘동이’(東夷)에 대한 기록에서 찾는다. 그는 ‘동이’ 기록을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로, 신라문화의 상고적 연원으로 인식한다. 그가 주목한 ‘동이’ 기록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 人, 夷, 仁는 어원이 같다

이(夷)라는 글자는 통상 ‘오랑캐’를 뜻하고, 또 역사적으로도 줄곧 그런 의미로 쓰여 왔다. 그러나 은대의 갑골문이나 청동기에 쓰인 금문(金文)의 시기로 올라가면 오래전 이(夷)의 뜻은 달랐다는 것, 특히 이(夷)의 어원이 본래 인(人) 그리고 인(仁)과 같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仁이란 사람다움이다”(<중용> <맹자>)라 하듯이, 유교사상에서 애초에 仁과 人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런데 우리가 유교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仁의 연원이 실상 동이(東夷)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볼 수 있는 단서들을 갑골과 금문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사천(四川)대학에서 펴낸 <갑골금문자전>은 상고대에는 人이 ‘사람’이라는 뜻의 보통명사가 아니라, ‘人’이라는 족속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서 人과 夷가 모두 ‘人’족을 가리키는 같은 글자임을 알려준다. ‘尸’ 역시 죽은 사람을 구부려 뉘어 놓은 모습을 그린 것으로 모두가 ‘人’족을 지칭하는 글자임을 볼 수 있다. 또한 <중문대사전>은 ‘尸+二’가 仁자의 옛글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人+二가 仁인데, 尸와 人이 같은 글자이기 때문이다. 중국학자 노간(勞幹)은 그의 책 <중국문화논집>에서 “우리들(중국인)은 동방사람을 동이(東夷)라 부르는데, 夷자와 人자는 통용되며, 人자와 仁자는 한 근원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중국어에서 人이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東方)에서 나왔다”라 쓰고 있다. 위의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동인’(東人)과 ‘동이’(東夷)는 결국 같은 말이다.

이(夷)와 인(仁)이 하나라는 생각이 반영된 후대(5세기)의 기록으로 범엽(范曄, 398~445)의 글을 들 수 있다. 그는 <후한서․ 동이열전>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동방을 이(夷)라 한다. 이(夷)는 뿌리로서, 어질어서(仁) 살리기를 좋아하니 만물이 땅에 뿌리박고 자라남을 말한다. 그러므로 천성이 유순하고 도로써 다스리기 쉬워 군자가 끊이지 않는 나라가 있게 되었다.”

최치원은 범엽의 기록뿐 아니라 여러 역사서에 실린 ‘동이’ 기록들을 중시하여, 바로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로 수용한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에는 동이(東夷)에 대해 주목해 볼 만한 기록들이 꽤 있다. 몇 가지만 언급하면 “동이(東夷)는 대(大)를 따르며 대인(大人)이다. 이(夷)의 풍속은 어질다. 어진 자는 장수하니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이다”라든가, ‘동방에 군자국이 있는데, 그 풍속이 서로 양보해서 다투지 않는다’라든가, 공자가 중원에서 도가 행해지지 않음을 한탄하며 구이(九夷)에 가서 살고자 하면서, 구이(九夷) 지역에 대해 ‘군자들이 사는 곳으로 누추할 것이 없다’라 언급한 내용 등이 있다.

물론 인류학이나 고고학적으로 이 기록에서의 이(夷)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매우 뜨거운 주제이지만, 주목할 것은 최치원이 이 기록들을 신라인의 이야기로 흡수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사상사에서는 이 점이 중요하다. 최치원이 갑골문을 볼 수는 없었겠지만, 기타 역사서에 실린 각종 ‘동이’ 관련 기록은 그의 글에 어김없이 등장한다.

범엽은 이(夷)란 뿌리이자 인(仁)으로, 만물이 그것을 터전으로 자라난다고 하였다. 뿌리는 생명의 원천이다. 최치원은 이러한 동이의 문화를 신라문화의 연원, 즉 “은은한 상고의 교화”라 불렀다. 신라에는 상고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인(仁)의 바탕이 있었기에 유, 불, 도를 수용하여 이 땅에서 꽃피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땅은 이미 살리기를 좋아함(好生)을 근본으로 해왔고, 서로 양보함(互讓)을 주로 하였기에 불교가 설파하는 자비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였다”고 말이다. 그러니 최치원이 쓴 ‘동인의 자손’이라는 표현에서 참으로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사진 픽사베이

▪ <주역>의 귀결도 인(仁)과 인(人)

이야기가 이쯤 진행되면, 독자들은 이렇게 물을 듯하다. ‘풍류’도 종고, ‘동인’도 좋은데, ‘풍류’와 ‘동인’이 무슨 상관이며, 게다가 이것이 ‘주역’과는 또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말이다. 이제 마지막 산고개를 넘어보자. 풍류, 동인, 그리고 ‘주역’이 하나로 이어지는 통로는 어질 인(仁)과 사람 인(人)이다.

이미 범엽과 최치원의 이야기를 통해 동인(東人)의 특징을 ‘살리기를 좋아하는 인(仁)’으로 보았다.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이 바로 인(仁)의 내용이다. 그리고 인(仁)이 사람 사이의 윤리 덕목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으로 뚜렷이 부각되는 것은 <주역>에서의 일이다.

<주역>에는 “낳고 살리는 것을 역이라 한다”(生生之謂易), “하늘과 땅의 큰 덕을 생(生)이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역(易)의 본질은 ‘낳고 살리는 일’이라는 뜻이다. ‘낳고 살리는 일’은 하늘과 땅이라는 음양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이러한 ‘생생’의 작용을 ‘인’(仁)이라고 부른다. 역(易)의 뜻은 ‘변화’이며 이 변화는 상반된 성질인 하늘과 땅이 만나 생명을 낳고 살림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니 <주역>에서 ‘인’(仁)과 ‘생명’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주역>의 복괘(復卦, ䷗)는 동지(冬至) 아침을 상징하는 괘이다. 가장 긴 밤을 지내고 새로운 태양이 떠올라, 세상이 새롭게 열리는 첫 시작의 순간이다. 은미하게 새 생명이 태동한 그 엄숙한 시간을 기리기 위해 옛날에는 동짓날 성문도 닫고 왕래하지 않으며, 임금도 정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름에서 ‘하늘과 땅의 마음’을 볼 수 있다고 복괘는 말한다. 하늘과 땅의 마음이란 다름 아닌 만물을 살리고자 하는 인(仁)의 마음이다.

<주역>의 작자들(聖人)이 ‘주역’을 지은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삶을 잘못 꾸려갈까 근심해서라고 한다. 그들은 고심 끝에 자연의 운행원리에 입각하여 삶의 원리와 방향을 <주역>에 제시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상(象)으로, 글(辭)로, 점(占)으로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역(易)을 활용하든 ‘역’을 공부하는 궁극적 목적은 “천명을 즐겨 근심하지 않고,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인(仁)을 돈독히 실천하여 널리 사랑을 베푸는 것”(<계사전>)이라 하였다.

‘주역이 나오기 전에도 주역은 있었다’(劃前易)라는 말이 있다. 이 동어반복적인 설명을 풀어서 말하자면, ‘주역’이 만들어 지기 이전에도 그렇게 형상화해낼 수 있는 진리의 내용은 있었고, 역은 그것을 담아낸 체계라는 의미가 되겠다. 자연의 변화에서 생명을 살리는 어진 마음을 발견하고 여기에서 ‘선’(善)의 가치를 느끼는 마음은 ‘주역’이 성립되기 전이라 해서 없으라는 법이 없다. ‘주역’이라는 이름이 있기 전에 또는 그 이론을 몰라도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를 삶으로 살아낼 수 있지 않은가? 최치원의 방식을 적용하자면, <주역>이 들어와서 한국인의 삶이 비로소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본래 그러했기에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 ‘주역’은 한국인의 삶 속에 깊이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에 비해서 한국에서는 <주역>이 대중소 가운데 ‘대경’(大經) 또는 ‘중경’(中經)으로 더욱 존중되었다. 또 현존하는 한국의 경학 자료 가운데 <주역> 관련 문헌이 다른 경전 자료에 비해 단연 수적으로 우세한 것도 특이한 일이다. 그러니 동인의 자손이 행하는 ‘뭇 생명을 만나 변화시키는’ 풍류의 내용이 <주역>이 담고 있는 생명철학과 그 지향이 일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진 픽사베이

▪ 풍류의 핵심은 ‘사람’

최치원이 말하는 풍류의 중심은 ‘접화군생’(接化群生)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다양한 진리의 가르침을 융화하여 생명살림의 에너지로 재창조할 수 있는 힘은 인(仁)을 체득한 ‘사람’의 역량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선(仙)의 역사’에 그 근원이 자세히 구비되어 있다는 풍류의 ‘현묘’함은 생명살림의 인(仁)을 체득한 군자를 떠나서 완성될 수 있을까? 선(仙)과 ‘현묘’(玄妙) 역시 사람의 일이다. 인(仁)이라는 용어는 유교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지만, 그것은 결코 유교로만 국한시킬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생명살림의 현현으로서의 인(仁)’과 마음의 중심이 결합한 인간의 모습은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으로부터, 풍류의 동인(東人), 훈민정음의 인간관, 퇴계 이황의 측은지심과 인(仁)의 인간학, 동학의 인내천과 생명사상, 그리고 일부 김항 <정역>의 ‘지인’(至人)으로 이어지는 한국사상의 핵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러한 철학을 품어온 한국사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까?

글 이선경(조선대 초빙객원교수・한국주역학회 차기회장)

*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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