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핵보유국’은 변하는데…‘과거의 북한’만 찾는 진보와 보수

한겨레 입력 2022. 11. 26. 14:05 수정 2022. 11. 27.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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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욱식의 찐 안보][한겨레S] 정욱식의 찐 안보
과거의 북한과 새로운 북한
경제난·주변국 압박 겪어오다가
재래무기 줄여 경제 예산 확보
중·러 등 주변국과 관계도 개선
‘달라진 북한’ 상대 방안 찾아야
지난 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국제공항에서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딸과 함께 시찰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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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게 북한은 어떤 존재로 보일까? 첫번째 키워드를 뽑아보면 ‘경제난’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이들은 북한의 경제난을 ‘상수’로 취급해왔다. ‘가난한 북한’은 진영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소비됐다. 대체로 중도와 진보는 북한을 인도적 지원과 경제 협력의 대상으로, 보수와 극우는 경제 제재를 통한 압박과 붕괴의 대상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북한의 경제 사정과 인민 생활이 점차 개선되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지난해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5.1%라고 보고했다. 또 최근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경제발전계획에 여러가지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고,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북한의 경제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을 “기쁜 마음으로 보고 있다”는 친서를 김 위원장에게 보냈다.

북한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핵’이다. 북핵에 대한 인식은 진보와 보수 사이에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중도와 진보는 대체로 북한이 오랫동안 추구한 목표는 핵개발을 수단으로 삼아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에 있다고 봐왔다. 반면 보수는 북한의 목표가 애초부터 핵무장에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전자의 진단은 과거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 후자의 진단은 현재에는 그럴듯하지만, 과거에는 틀렸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19년까지 북한이 추구한 핵심적인 목표는 북-미 관계 정상화에 있었지만, 2020년부터는 이에 대한 미련을 접고 핵무력을 국가 전략의 중추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태세 전환하는 북한

경제난과 핵이 만나면 ‘가난한 핵보유국’이 된다. 아마도 많은 사람은 오늘날의 북한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북 강경파들은 이 표현 속에서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척해왔다. “북한이 핵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말은 이를 상징한다. 이 표현 속에는 북한을 향해 ‘핵무장을 하든, 경제난으로 자멸하든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경제 제재는 이러한 압박을 가하기 위한 유력한 도구로 간주됐다. 대북 온건파들은 설득을 시도했다. 북한 정권을 향해 “핵무장을 고집하면 경제난을 극복할 수 없다”며 생각을 달리해달라고 호소해왔다.

그런데 김정은 정권 역시 경제난과 핵을 동시에 주목했다. 2013년에 채택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이러한 고심의 표현이었다. 2021년 8차 당대회에선 이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는 ‘병진노선 2.0’이다. 외부에서는 경제발전과 핵무장은 양립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김정은 정권은 만만치 않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자신한다. 병진노선의 한 축인 북핵 고도화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고, 또 다른 축인 경제건설도 세가지 측면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첫째는 핵무력을 국방력의 중추로 삼는 대신에 재래식 군사력의 비중은 줄임으로써 경제발전에 필요한 예산을 조달하는 것이다. 둘째는 ‘군민융합’을 통해 농업, 건설, 산업 생산에 있어서 군부의 역할과 임무를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군사 분야의 민수용 전환으로 최근 두곳의 공군기지를 대규모 농장으로 탈바꿈시킨 것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발견할 수 있다.

‘고립’ 역시 익숙한 북한과 떼어놓을 수 없는 단어이다. 실제로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국제적 고립에 처했었고, 북핵 문제는 그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전통적인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조차 북핵을 규탄하고 경제제재에 동의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조차도 달라졌다. 2020년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활동은 최고조에 달했는데도 북-중, 북-러 관계는 1990년대 초반 이후 최고 수준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의 전략 경쟁이 격화되면서 북핵 문제를 ‘비확산’보다는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보고 있고, 북한도 이를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북한은 크게 달라졌다. 부분적이고 전술적인 차원이 아니라 전면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에서 그렇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1990년대 초반 이래 30년 가까이 핵심적인 목표로 삼았던 “북-미 적대관계의 평화관계로의 전환”에 대한 미련을 사실상 접고, 안보는 핵으로, 경제는 자력갱생으로,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 중심으로 삼겠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북한의 이러한 선택이 결코 만만치 않은 성과를 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자신감의 발로일까? 달라진 북한은 최근 행태에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과거의 북한은 한·미 혹은 한·미·일 연합훈련에 주로 ‘말’로 반발했다. 하지만 9월 핵무력을 법제화한 이후에는 확연히 달라졌다. 한국, 미국, 일본의 군사 활동에 일일이 ‘행동’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군사적 열세에 있었던 과거에는 움츠러든 상태에서 삿대질하기에 바빴다면, 핵무력을 통해 군사적 균형을 이뤄냈다고 판단한 오늘날에는 삿대질뿐만 아니라 근력을 과시하기에도 바쁘다.

정리하자면, ‘새로운 북한’이 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과거의 북한’을 상대하려고 한다. 두가지 예를 들어보자. 북한의 의도를 두고 핵 고도화를 최고치로 끌어올려 대미 협상에서 몸값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의 황망함은 북한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이 2017년 11월에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이듬해에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해 성사시켰다가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고 판단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경제제재 탓조차 않는 ‘달라진 태도’

김정은 정권이 경제난 심화로 이반된 민심을 외부로 돌리려고 위기 지수를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유행한다. 하지만 이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2021년 하반기부터 경제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에 있어서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해왔고, 북한 주민들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이를 학습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경제난과 주민들의 불만이 심각해져 한반도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경제난과 민심 이반이 체제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면, 그 책임을 미국 등 외부에 돌리면서 미사일을 쏘아대는 것이 북한다운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북한은 경제제재 탓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 새로운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우선 각자가 원하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려는 노력이 시급하다. 특히 북한의 경제난을 ‘상수’로 취급하는 경향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북한은 이미 저만치 멀리 가 있는데, 과거의 자리에서 북한을 찾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을 반복할 우려가 커진다.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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