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먹는가, 요리의 과학-(上)[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노성열 기자 2022. 11. 2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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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란 불과 물을 조화시켜 소화하기 쉽고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일
전도·대류·복사의 열 전달과 상(相)변화의 물리, 화학 법칙이 기본

‘맛있는 과학’의 세 번째 질문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먹을까요.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날것 그대로 자연의 영양분을 취합니다. 침팬지 같은 고등 포유류 중에서 가끔 먹이를 씻거나 도구를 이용해 깨트려 먹는 행동이 관찰된 적은 있으나 요리의 탄생은 오로지 인간 사회에서만 일어난 일대 사건입니다. 식재료를 토막 내서 형태를 바꾸고, 가열 또는 발효시켜 내부의 분자·원자 구조를 바꾸는 가공 과정은 문명의 발달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지금도 요리가 발달한 국가는 과거 강력한 중앙집권 권력체제가 힘과 문화로 주변을 지배했던 문명국이고, 그 반대는 미개국이라고 보면 됩니다. 물리와 화학뿐 아니라 미생물학·생리학에 인문학까지 망라된 종합 학문, 요리의 과학을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알아보겠습니다.

요리(料理)란 사전적 의미로 ‘헤아려서 다스림’을 의미하죠. 조리(調理)도 비슷한 말입니다. 말 장난을 하자면 요리는 불과 물을 요리조리 조화시키는 일입니다. 열을 가해 식재료 내부의 수분을 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죠. 요리는 결국 야생의 동·식물 식재료를 보다 소화하기 쉽게,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하는 과학적·문화적 행위라는 것입니다. 자르고 으깨고 다듬는 물리적 변형을 가하거나, 열과 산(酸,acid) 등으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면 훨씬 소화하기 쉬워집니다. 소화란 우리가 먹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기다란 분자 사슬 고리를 끊어 더 자잘한 당과 아미노산, 지방산의 형태로 영양분이 소화 기관의 점막에 잘 흡수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입니다. 더 많은 영양분을 흡수할수록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할 수밖에 없겠죠. 바로 요리의 발명과 그 발달 배경입니다. 그러나 요리가 생존만을 염두에 둔 건 아닙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즐거움을 위해서도 먹기 때문입니다. 맛있게, 멋있게 먹으려고 요리에 문화가 가미되면서 기법은 더 정교해졌습니다. 오늘은 요리의 과학, 첫 번째 순서입니다.

요리에는 물리와 화학 법칙이 작용합니다. 자르고 다지고 으깨는 힘과 압력의 역학은 재료의 형태와 물성을 바꿔 바삭바삭, 푹신푹신, 찐득찐득 같은 식감(食感)에 영향을 미칩니다. 당근이나 양배추를 가늘게 채 썰면 혀와 입천장에 닿는 면적이 늘어나면서 훨씬 아삭한 느낌이 들지요. 압력용기에 요리를 하면 짧은 시간 안에 재료의 속까지 푹 익힐 수가 있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역학 법칙입니다. 재료를 가열해 물성이 바뀌도록 하는 게 요리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식재료의 내부에는 적든 많든 모두 수분이 있습니다. 채소의 90%, 생선의 75%, 육류의 60%가 물입니다. 외부에서 열을 받아 내부의 온도가 올라가면 수분이 빠져나가고 재료는 보통 더 단단해집니다.

이때 열을 전달받는 방법은 크게 전도, 대류, 복사의 세 가지로 나뉩니다. 전도는 고체의 열 전달이고, 대류는 액체·기체의 분자 충돌 에너지가 열을 전달하는 현상입니다. 복사는 전자기파가 매질(媒質) 없이 직접 열을 전달하는 방식이죠. 예를 들어 부엌에서 가스 불을 켜면 금속 냄비가 뜨거워지는 것은 전도, 냄비 속 물이 끓는 것은 대류, 전자레인지에 넣은 햇반이 데워지는 것은 복사입니다. 열에너지의 전달 방식 차이를 이해하고 요리별로 활용하면 됩니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보통 뜨거운 팬이나 석쇠 위에서 굽는 전도 방식을 씁니다. 하지만 진공 팩에 고기를 넣은 다음 저온의 물속에 담구어 오래 익히는 수비드(sousvide) 요리법이 새로 나왔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에어프라이어에 넣어 복사열을 이용하는 방식도 있죠. 맛과 식감이 다 다릅니다.

아무튼 스테이크에 열을 가하면 고기 단백질 가운데 미오신은 섭씨 40~50도, 다른 근육 단백질은 60도, 콜라겐은 70도 정도에서 변성이 일어납니다. 미오신은 긴 실 모양의 근원섬유 단백질, 중간의 근육은 알갱이 형태의 근형질 단백질, 이들을 둘러싼 근육 보자기와 힘줄 단백질은 콜라겐입니다. 콜라겐은 75도가 넘으면 분해돼 젤라틴으로 변합니다. 흐물흐물 도가니탕을 만드는 비법이죠. 또, 고기나 견과류의 겉면에 높은 온도를 가하면 표면의 수분이 제거되면서 단백질과 당분이 서로 반응해 갈색으로 변하며 새로운 향과 맛을 냅니다. 이것이 마이야르 반응입니다.

‘겉바속촉’의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면 고기의 앞뒤를 먼저 고온에 재빨리 구워 육즙을 가두고 마이야르 반응을 유도한 뒤, 7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좀 더 익히면 됩니다.

요리의 기본은 화학입니다. 소금, 지방, 산, 열이란 요리책 제목이 있을 정도입니다. 가열에 따른 재료 수분의 감소, 산과 알칼리 또는 무기물질에 의한 분자 상태의 변화가 다양한 맛과 향을 만듭니다. 재료 안의 물은 온도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로 변합니다. 이렇게 분자 배열의 상태가 달라지는 현상을 상(相, phase)변화라고 합니다. 상변화는 우리가 입안에서 씹는 느낌(식감)에 크게 영향을 줍니다. 예컨대, 달걀을 삶을 때 62도에서는 노른자가 흘러내릴 정도의 부드러운 반숙이 됩니다. 64~66도로 올라가면 흰자와 노른자가 단단해지면서 완숙이 됩니다. 설탕도 온도가 올라가면 시럽-물엿-캔디 상태를 거쳐 170도 이상에서는 갈변 반응을 해서 캐러멜이 됩니다. 2가지 상이 혼합된 요리도 있습니다. 물과 기름이 섞인 반고체 연성 물질을 에멀션(emulsion)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게 마요네즈입니다. 탄수화물 다당류인 팩틴을 가열한 다음 식히면 응고해서 고체 그물 구조를 만들고 그 속에 수분을 가두어 젤(gel)이 됩니다. 곤약, 젤리 같은 재료입니다. 액체 속에서 공기 방울을 가두고 있는 액체-기체 혼합물도 있습니다. 거품이나 무스(mousse)가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면서 요리에서 가볍고 부드러운 식감을 내기 위해 사용합니다.

요리의 과학 중 물리와 화학을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산과 알칼리가 춤추는 발효의 세계로 들어가 생화학과 미생물학, 생리학을 배워볼까요?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뉴튜리노 블로그 https://blog.naver.com/neutrino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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