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권력 주변에 독버섯처럼 자라는 비선을 조심해야 한다 [열국지로 보는 사람경영]

장박원 기자(jangbak@mk.co.kr) 입력 2022. 11. 26. 12:03 수정 2022. 11. 2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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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임명장 수여식 마친 윤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국정농단 사건은 권련 주변에 독버섯처럼 자라는 비선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은 곳곳에서 이권에 개입해 돈을 챙겼습니다. 뇌물을 준 사람들은 최씨 뒤에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부 허가를 받아야 사업가들이 최씨를 활용한 측면도 있습니다. 비선실세가 판치다 보니 권력에 대한 국민 신뢰가 무너졌고 결국 탄핵 사태로 이어진 것입니다.

진시황이 20대 청년일 때 왕의 모친인 조태후를 배후에 둔 비선실세가 있었습니다. 노애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승상 여불위의 계략으로 조태후의 정부(情夫)가 됐습니다. 진시황의 모친인 조태후는 원래 여불위의 애인이었습니다. 여불위는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던 진나라 왕족 이인에게 조태후를 바쳤습니다. 이때 태후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태후의 뱃속 아이가 여불위 자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말 사실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많습니다.

여불위의 치밀한 작전으로 이인은 극적으로 진나라 왕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조태후는 청상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불위는 옛 애인을 잊지 못해 태후와 사통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태후와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정도 식었고 위험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태후와 자연스럽게 이별하기 위해 그는 '노애’라는 화류계 명사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노애는 잠자리에서 상대를 만족시키는 기술이 탁월했다고 합니다. ”양물이 크기로 유명해 마을의 음란한 여인들이 다투어 그를 섬기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여불위는 일단 그를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누명을 씌어 궁형을 선고합니다. 하지만 형을 집행하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고 거세하는 척만 하게 합니다. 이렇게 환관 아닌 환관으로 만든 노애를 조태후 거처로 보냈습니다. 태후도 노애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는데 막상 잠자리를 하고 보니 만족감이 커졌습니다. 여불위의 계획이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여불위는 노애라는 인간을 잘못 봤습니다. 노애는 출신이 미천했지만 야욕이 컸습니다. 조태우가 노애를 정부로 삼은 뒤 두 사람은 사실상 부부처럼 생활했습니다. 궁궐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 사는 곳을 수도 함양에서 멀리 떨어진 옹주에 있는 별궁으로 옮겼습니다. 태후는 노애 아들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노애는 더 큰 욕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외부인도 알 정도로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 됐습니다. 태후는 진시황에게 노애가 자신을 극진히 모시고 있으니 넓은 땅을 내려달라고 청했습니다. 이에 진시황은 노애를 '장신후‘에 봉하고 봉토도 하사했습니다. 노애는 신분까지 높아지자 더욱 대담해졌습니다. 태후를 배경 삼아 궁궐의 모든 일을 좌지우지했습니다. 대저택에 수천명의 시종을 거느리고 사병도 키웠습니다. 권력자의 비선실세 노릇을 한 것입니다.

진시황이 스물여섯 살이 됐을 때 태후가 거주하는 옹주에서 그의 성년식이 거행됐습니다. 닷새 동안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이때 노애는 고관들과 도박을 하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사달이 났습니다. 중대부 안설이 더 이상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뺨을 때리고 심한 욕을 퍼붓는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앙심을 품은 안설은 진시황에게 노애의 비밀을 고했습니다. ”노애는 기실 환관이 아닙니다. 거짓으로 거세하고 태후마마를 모시며 지금 아들을 낳아 밀실에 기르고 있습니다. 그는 진나라를 찬탈하려 합니다.“

이 말에 진시황은 불 같이 화를 내며 비밀리에 장수 환의가 이끄는 부대를 옹주로 소환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동향을 파악한 노애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궁궐을 지키는 기병들을 모아 진시황 거처를 포위했습니다. 도적이 들었다는 명분으로 왕을 감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촉즉발의 위기에서도 청년 진시황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궁궐에 무슨 도적이 있겠느냐? 장신후 노애가 바로 도적이다. 그를 생포하는 자에게 100만금의 상을 내리겠다. 그를 따르는 역적의 머리를 하나씩 베어 바치는 자에게도 벼슬을 한 등급씩 올려주겠다. 마부와 천민에게도 모두 똑같이 상을 주겠다.“ 그러자 기병들은 창끝을 돌렸고 노애의 반란은 순식간에 진압됐습니다. 노예는 사로잡혀 삼족이 멸망했고 반란에 가담한 자들은 모두 처형됐습니다. 반란의 원인을 제공했던 조태후는 감금되고 여불위는 진시황의 추궁을 받고 자살했습니다. 비선실세가 진나라 태후와 승상을 몰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비선실세에 대한 논란이 많습니다. 사실이 아닌 소문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권력자는 주변을 잘 돌아봐야 합니다. '개인적인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일거수일투족이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음지에서 비선들이 그의 말과 행동을 이용해 이권을 챙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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