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유배·명성황후 피란…비운의 역사 내려다본 산성 [배기동의 고고학 기행]
편집자주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음미한다.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겨진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자.
<26> 여주파사성(驪州婆娑城)
파사성은 경기 여주 이포보의 동편 파사산 꼭대기를 둘러싸고 있는 산성을 이른다. 파사(婆娑), 묘한 이름이다. 신라 파사왕(재위 80∼112년)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도 하고, 파사국이 있던 자리라고도 하지만 그 기원을 분명하게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나 저녁 석양에 비치는 한강의 파노라마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산성터다. 일찍이 사적(제251호)으로 지정되었는데, 경기문화재연구원과 한성문화재연구원 등이 9차례 발굴조사한 것을 토대로 성벽의 많은 부분이 복원되고 공원으로 단장되었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남한강은 도시 삶의 찌든 기분을 한눈에 날릴 정도로 시원스러운 절경이고, 아래쪽 이포보 일대에는 한강 자전거길의 중간 쉼터와 조각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남한강 수운의 중간 기착지, 이포나루
성 아랫마을의 이름 이포(梨浦)는 아마도 ‘배개’, 즉 배가 드나드는 갯가라는 뜻의 우리말이 한자어로 바뀌면서 쓰인 한자명인 듯하다. 태백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충북 단양과 충주를 지나면서 깊어지고 넓어졌다, 여주를 지나면서 흐름이 느려져 고운 모래가 쌓인 이곳에 나루가 만들어졌으니 옛날부터 풍경이 좋았던 모양이다. 건너편에 백애산(白崖山)이 있는데 '배개'라는 말의 또 다른 한자 표현일 것이다. 갯가 풍경이 유명하여 다산 정약용도 이곳을 묘사한 시에 ‘…물가의 풀꽃이 너무 좋아서 상앗대 하나로 아침 저녁 봄물을 건너네’라고 읊었다. 이 나루는 충주, 여주, 이천 등지에서 양평이나 한양으로 나가는 뱃길에서는 반드시 거쳐야 했기에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농사보다도 장사로 생활하는 것이 훨씬 나은 곳’이라고 하였다. 교통거점이라는 의미다.
이제는 이포대교가 생기는 바람에 나루는 없어졌지만 옛날부터 남한강을 따라 이동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애환이 짙게 깔린 곳이다. 대표적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로 단종이 영월로 유배가면서 이곳에서 대성통곡을 하였다는 것이나, 명성황후가 임오군란을 피해 이 나루에서 사흘을 머물렀다는 것은 이 지점에 많은 역사의 흔적들이 깔려 있음을 보여준다. 성 바로 아래에 강을 바라보는 마애불이 있고 매해 제를 올리는 것은 인간의 맺힌 마음을 풀기 위한 몸짓이라는 증거이다.
파사산에 오르면서 보는 남한강
막국수로 유명한 천서리의 북쪽에 있는 산이 파사산이고 그 꼭대기에 산성이 있다. 성남과 여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에서는 율촌IC에서 내려서 북행을 하거나, 양평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북여주IC에서 내려 동쪽 방향으로 이포다리를 건너면 바로 천서리를 만난다. 파사산은 여주와 양평의 경계로, 두 도시의 중간에 위치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산꼭대기의 파사성에 오르면서 하얀비단폭처럼 남북으로 긴 남한강 풍경을 내려다보면 산이 높지 않음에도 이곳에 산성을 쌓은 이유를 알게 된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성 꼭대기 누대(樓臺)에 서면 남한강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과 배, 그 누구도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전쟁을 위해 만든 성이지만 멋진 남한강의 파노라마 경관을 보노라면 아픈 역사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아마도 이 성에서 살던 사람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강빛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 중기 문신인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 대감도 ‘파사성 아래에 강이 돌아가고(婆娑城下水縈廻) 성 모서리에 날리는 붉은 꽃은 셀 수가 없구나(落紅無數飛城隈)‘라는 시를 남긴 걸 보면 그 풍광의 호쾌함은 옛사람이나 오늘날 관광객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신라 파사왕이 맞을까?
한강유역의 많은 산성들은 애초에 만든 주체가 누군지를 놓고 논란이 많다. 파사성에서 나온 유물들도 고고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파사성 발굴에서 백제 주거지와 토기 다수가 발견되었고, 유사한 축조법을 보이는 이천의 설성산성이나 할미산성 등을 들어 파사성을 백제가 축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일찍이 한강유역을 차지한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경로인 남한강을 지키기 위해 세운 성으로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성돌의 치석(治石)법, 성벽의 보축을 포함한 축성방식이나 현문의 구조 등으로 미루어 신라의 축성술이라 할 수 있고 토기 역시 신라의 것들이 많다. 그래서 6세기 중엽 진흥왕 대에 신라가 한강유역에 진출하면서 죽령에서 한강하류지역, 즉 파주의 칠중성, 화성의 당성, 하남의 이성산성 등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연결되는 교통로를 보호하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결국 어느 주장이든 간에 남북으로 배치된 고대 정치세력 간의 경쟁에서 전략적 핵심 교통로를 보호하는 요충임을 의미한다.
이 성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조선 초기이다. 잊혀진 성이었던 것이다. 그후 임진왜란 중이던 1595년 비변사의 유성룡 선생 주도로 승군총섭 의암(義庵)으로 하여금 이 성을 수축하여 지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허물어진 ’옛날 성(古山城)‘으로 기록된 경우들이 있어, 실제 용도는 그리 높지 않고 거의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발굴에서도 조선 후기 유물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고대 삼국의 경쟁과정에서 생겨난 성이 조선시대 내륙으로 들어오는 왜적 방어를 위해 일시적으로 활용됐던 것이다. 성 안 발굴에서 백제의 주거지는 성벽 바로 아랫부분에 나타나는데, 백제가 이곳을 지키기는 했어도 오늘날 남아있는 돌성을 쌓은 것은 신라가 아닐까 짐작된다.
서애 징비론의 현장
서애집에는 임진란 당시 포대가 설치됐다는 내용이 있는데 한강에 면한 성벽의 중간쯤에 있는 치(雉: 방어를 위해 성벽에 붙여 쌓은 구조물)일 것으로 추정한다. 서애가 파사성의 중요성을 주창하고 포대까지 설치하도록 한 것을 보면 임진란 초기 신립 장군이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패한 것을 뼈아프게 생각했을 법하다. 포대의 존재에 대해 미심쩍은 눈길도 있지만 발굴된 구조는 분명 그가 그렸던 포대 뒤편 모습과 유사하다. 돌출한 구조물에서 세 방향으로 포와 화살을 쏠 수 있도록 한 것이나 단(段)을 달리하고 상부에 건물을 지어 넓게 볼 수 있도록 만든 것 등이다. 이러한 모습은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크게 사용된 남한산성 포대나 수원화성 포대의 원형이 되었을 것이다. 서애의 징비(懲毖: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삼감) 뜻이 살아 있는 유적인 셈이다.
파사성 남문터에서
파사성은 산꼭대기를 둘러싸는 방식의 테뫼식산성인데 동문과 남문이 있고, 길이 936미터, 성벽 높은 곳은 6미터가 넘는다. 이포나루 쪽에서 남문으로 오르는 길은 좁고 급경사에 파인 곳이 많지만, 걸어 올라가기엔 적당한 거리인 800미터 정도다. 경사진 길을 한번 꼬부려서 들어갈 수 있게 만든 남문의 입구에서 성벽을 보면 덩그러니 하늘에 떠보일 정도로 높아서 고대성에 들어가는 기분을 들게 한다. 문은 사라지고 문지는 허물어진 채로 두었지만, 양쪽 문지와 연결된 성벽의 구조와 문지공석이 그대로 남아있어 쉽게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남문으로 들어서면 경사면 비탈이 앞을 가로 막는데 여기가 바로 2호 집수지(集水池, 빗물을 저장한 곳)자리이다. 원형 평면에 계단식으로 축조한 구조로 밝혀졌는데 바닥에는 뻘이 두껍게 남아 있고 그 속에서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이보다 북쪽인 성의 중심에도 약간 더 큰 집수지가 똑같은 구조로 드러났는데 분원(分院) 백자편들로 미루어 보아 조선시대에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일전에 이스라엘 사해(死海) 옆 마사다(Masada) 유적에서 이스라엘 병사들이 집수정에 물 한 방울을 더 모으려 엄청난 노력을 한 것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오늘날 우리는 펼쳐지는 경관에 감탄하며 무심코 성안으로 들어서지만, 성(城)은 전투상황에서 생과 사를 갈라지게 한다. 우리나라 고대 산성의 집수정은 현대 고고학자들에겐 나무로 된 귀한 자료인 목간(木簡)이나 뼈 같은 유기물 유물을 만날 수 있는 보물창고지만, 당시 전투의 처절함을 느끼고 숙연해지게 되는 유구다. 서애의 손길이 닿았으니 더욱 ‘징비’의 의미가 다가오는 자리이다. 전쟁은 일어나기 전, 평화 시에 대비해야 하는 법이라는 말이 더욱 새겨지는 시절이다.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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