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인구에서 뽑았는데 중국 축구 실력은 왜 저조한가?”
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56회>
최고 권력자의 오만과 독선이 파멸적 결과를 초래한 사례
21세기 현재 세계 여러 국가의 중장기적 군사·외교 전략은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가? 국가의 지도자들은 과연 국익 극대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으로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합리적 행위자(rational actor)라 할 수 있는가? 아니라면, 그들 역시 보통 사람들처럼 감정, 편견, 무지, 아집에 휘둘리는 불합리한 존재들인가? 국제 외교사를 돌아보면,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선 그 두 가지 모습이 중첩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대숙청으로 800여만 명을 구속하고 80여만 명을 죽음으로 내몬 스탈린의 편집증, 평화협상에 집착하다 나치에 조롱당한 대영제국의 수상 챔벌린(Neville Chamberlain, 1869-1940)의 순진함, 소련 침공 후 스탈린그라드의 점령을 위해 26만 이상의 병력을 소진했던 히틀러의 허영심, 한국전쟁에 300만 인원을 투입해 90여만의 사상자를 냈던 마오쩌둥의 도박 근성, 주체의 광기 속에서 개혁개방을 거부한 채 핵 개발에 몰두해 온 북한 김씨 왕조의 피해망상증 등등. 권력자의 파괴적 도그마를 보여주는 역사의 실례는 무수하다. 먼 데 볼 필요 없이 김씨 왕조의 선의만 믿고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며 핵무장을 추구하는 북한 정권에 천문학적 뒷돈을 제공해온 대한민국 지난 정권의 군사·외교적 패착을 보라.
진정 최고 권력자의 오만과 독선, 무지와 편견은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권력의 독점과 전횡을 막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정부 조직 내부의 상호감시와 상호견제뿐만 아니라 언론 및 시민사회의 적나라한 고발과 냉철한 비판이 절실하다. 권력 비판의 핵심은 권력자의 아집과 편견, 오만과 독선, 허영과 광기, 가치관과 사유 습관, 지배욕과 열등의식까지 낱낱이 발가벗기는 인격 검증과 정신 감정에 있다.
개인의 능력엔 한계 있어...권력 집중은 정치 위기를 고조시킨다
1960년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Hyek, 1899-1992)가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에서 이미 논했듯, 특정 개인이 제아무리 영리하고 해박하다 해도 인간의 두뇌가 파악하고 처리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인류가 쌓아 올린 지식은 도서관에 수천 만권의 책으로 정리되어 있다지만, 실제로 지식이란 책에 적힌 문자가 아니라 인간의 뇌리에 어떤 형태로든 저장되어 생체 에너지를 통해서 처리되는 극히 제한된 정보에 불과하다.
아무리 빅데이터를 집적하고 인공지능을 사용한다 해도 중대사의 결정이 최종적으로 권력자의 판단력에 맡겨져 있기에 현실정치엔 언제나 판단 착오의 위험이 존재한다. 권력자 역시 어리석은 욕망에 미혹되고, 그릇된 정보에 오도되고, 약물 한 방울에 정신적 착란을 일으킬 수 있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부분 현대 국가는 최고 권력자 일인에 최종 결정의 책임을 오롯이 떠넘기는 대신 전문 관료집단과 국가 조직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익을 극대화하는 정책 결정의 합리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점에서 최근 일당독재의 미망도 모자라 일인 지배의 불합리로 나아가는 중국공산당의 앞길은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이는 시진핑의 천재성까지 운운하며 중국공산당 집단 지도 체제가 선거 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지만, 무리한 제로 코비드 정책의 역리(逆理)에서 드러나듯 오늘날 중국을 둘러싼 현실적 위기는 세계사의 상식은 물론 중국공산당의 관행까지 어겨가며 구태여 일인 지배로 나아가는 시진핑 정권의 오만과 독선에서 비롯됐다.
‘권력의 역설’... 독재자 일인 지배의 위험성
지난달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 대표 대회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군·정·관의 권력을 오롯하게 거머쥐고 일인 지배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관행을 거슬러 68세 이전의 리커창(李克强, 1955- )과 왕양(汪洋, 1955- ) 등을 강제로 퇴출하고, 마지막 순간 후진타오(胡錦濤, 1942- ) 계의 젊은 기린아 후춘화(胡春華, 1963- )까지 내쳐서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온전히 초록 동색 자기 인맥으로 채웠다. 스스로 황위에 올라 종신 지배로 가겠다는 강력한 집권 의지를 중국 안팎에 천명한 셈이다. 이로써 과연 시진핑 총서기의 권력 기반은 완벽하게 정비되었는가?
<<장자(莊子)>><천하(天下)>편에서 혜시(惠施)가 논하듯, “하늘은 땅만큼 낮고(天與地卑), 산과 늪은 모두 평평하고(山與澤卑), 정오의 태양은 기우는 태양이다(日方中方睨).” 47년 전 세상을 떠난 마오쩌둥까지 되살려내서 일인 지배를 미화하려 하지만, 인류사의 상식에 비춰볼 때 권력자의 도행역시(倒行逆施)란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미국의 저명한 중국 관찰자(China watcher) 민신 페이(Minxin Pei, 1957- ) 교수는 최근 <<포린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실린 “시진핑과 권력의 역설”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시진핑 정권이 앞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위기를 짚었다.
첫째, 일인 지배로 나아가는 중국공산당은 이제 권력의 속성상 권력의 승계를 둘러싼 권력투쟁을 피할 수 없다. 1969년 문화혁명의 절정에서 마오쩌둥은 중앙위 정치국을 모조리 무비판의 충성스러운 자기 사람들로만 채웠지만, 그 결과는 린뱌오 집단과 사인방 사이의 파멸적인 권력투쟁으로 펼쳐졌다. 천하의 마오쩌둥도 권력 승계를 둘러싼 분열과 반목을 막을 수 없었는데, 시진핑 정권이 역사의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이 지적하는 “권력의 역설”이란 권력의 크기와 권력자가 느끼는 안도감의 반비례를 의미한다. 더 큰 권력을 가질수록 독재자는 더 큰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일인 지배의 전제 정권에선 독재자가 권력 장악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수록 원한 관계의 정적들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절대 권력자 마오쩌둥의 심적 불안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가 류샤오치(劉少奇, 1898-1969)를 숙청한 동기, 후계자로 직접 지목했던 린뱌오(林彪, 1907-1971)를 제거한 까닭, 중앙 정계로 복귀시킨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을 다시 축출하고, 만년 총리로 충성을 바쳤던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까지 4인방을 사주해서 비판했던 이유가 소명되지 않는다.
2022년 시진핑은 1969년 마오쩌둥을 답습해서 충성을 바친 자기 사람들만을 엄선해서 권력의 핵심층을 새로 꾸렸지만, 마오쩌둥 정권과 마찬가지로 이미 그 내부에 권력투쟁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일인 지배의 외로운 독재자로 홀로 선 시진핑 총서기는 권력 유지의 과정에서 격심한 불안감과 의심증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중국공산당 정부의 지도부에서 격렬한 권력투쟁과 파벌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둘째, 표면상 시진핑의 일인 지배가 개시되었지만, 현실정치에서 그의 권력이 막강한 힘을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겉으로 강력해 보이는 독재자라도 그 권력은 실제로는 최고위 엘리트층 내부의 중추 세력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현실에선 통상 300명 미만으로 구성되는 중공 중앙위원회가 시진핑의 지배력이 미치는 현실적인 권력 범위이다. 그 한계를 넘어 더 큰 권력을 행사하려면 마오쩌둥처럼 개인적인 카리스마를 발휘하거나 덩샤오핑처럼 유능한 부하에게 권력을 위임해야 하는데, 과연 시진핑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처럼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시진핑의 정치적 카리스마는 대중적 숭상(崇尙)을 한 몸에 받았던 마오쩌둥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다. 실제적인 통치의 능력에서 보아도 시진핑은 혁명지도자들과 권력을 공유하고 유능한 후계자를 발탁해서 경제성장의 박차를 이어간 덩샤오핑의 전설을 따를 길이 없다. 마오쩌둥도, 덩샤오핑도 될 수 없다면, 최고 영도자로서 시진핑의 일인 지배는 과연 어떤 형태의 통치가 될까?
권력의 공고화는 결국 광대한 대중의 지지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고, 대중의 지지는 이념 조작과 정치 집회가 아니라 과학·기술의 자립을 통한 지속적 경제성장을 통해서만 확충될 수 있다. 과연 시진핑 정권의 통치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성장을 지속할 만큼 합리적이고, 체계적인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제로 코비드 정책, 부자를 외국으로 내모는 공동부유의 구호,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외교적 강경책, 과격하고 억압적인 대민 통제는 시진핑 정권 앞에 지뢰밭이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시진핑” 일개인의 독특한 성격이 앞으로 중국공산당 정부의 성패를 가르는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미래를 보려면 ‘중국 모델’ 신화를 타파해야
지금껏 중국 안팎에서 이른바 “중국 모델”을 칭송해온 자들은 중국공산당 집단 지도 체제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주장해왔다. 흔히 그들은 중국의 통치 엘리트가 최고의 명문 대학을 나온 수재들로서 장시간 정부의 각 분야에서 단계적으로 국정 실무를 익히고 행적 실적에 대한 엄격한 고과와 냉정한 평가를 거쳐 발탁된 가장 유능한 행정가라고 주장한다. 우수한 영재들로 구성된 중국공산당 정치국의 집단 지도 체제는 국익의 최대화를 위한 최고의 전문성과 판단력을 발휘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보스턴 대학의 중국 정치 전문가 퓨스미드(Joseph Fewsmith) 교수는 중국공산당의 통치가 이미 제도화되었다는 일반론을 부정한다(Joseph Fewsmith, Rethinking Chinese Politic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그의 분석에 따르면, 시진핑 집권 초기부터 대규모로 전개된 반부패 운동은 정적을 제거하고 반대 세력을 억압하는 “권력 공고화(consolidation of power)” 과정이었다. 오늘날의 중국이 집단 지도에 의한 합리적인 시스템 통치가 아니라 민주집중제의 이름 아래 군사주의적 위계질서에 따라 독재적으로 운영되는 레닌주의 국가라는 분석이다.
스탈린, 마오쩌둥의 사례가 증명하듯 레닌주의 국가에서는 강력한 1인의 인격적 지배가 나타난다. 사회주의 혁명이 전위조직으로서 공산당의 지도력을 강조하는 레닌주의는 권력 집중, 이데올로기 강화, 강력한 대민 지배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시진핑 정권이 일인 지배로 나아가는 과정은 레닌주의 정치체제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를 거쳐 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지난 30년의 권력 승계 과정이 중국 정치의 제도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퓨스미드 교수는 외관상 그러할 뿐, 실제로 오늘날 중국 정치는 군권을 장악한 강력한 독재자의 인격적 지배(personalist rule)일 뿐이며, 그 점에서 레닌주의 통치 모델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덩샤오핑과 장쩌민은 실권에서 물러난 후에도 중앙군사위원회의 주석직은 놓지 않고 있었다. 시진핑의 정치권력 또한 강력한 군권 장악에 기초하고 있다.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가는 20년의 경험 역시 엄격한 의미에서 집단 지도 체제가 아니라 강력한 1인의 인격적 지배였다는 주장이다.
7년 전 사석에서 한 중국 전문가는 내게 시진핑을 위시한 중국 영도자들은 모두 하나 같이 두뇌가 탁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중공 최고 지도자 대부분이 최고의 명문대 출신들로 직관력, 정보력, 판단력, 결단력 등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한 행정의 달인들이라 주장했다. 선뜻 동의하지 않는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그가 따지듯이 물었다.
“14억 인구 중에서 극심한 경쟁을 뚫고 정상에 선 최고의 영재들이니 그들이 함께 모여 만든 집단 지도 체제의 수준이 얼마나 높겠소?”
그때 그 순간은 그저 멋쩍게 웃어넘겼지만, 지금이라도 그에게 되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14억 인구에서 발탁된 중국의 국가대표 축구팀은 왜 그렇게 성적이 저조합니까? 왜 피파(FIFA) 랭킹 세계 79위에 머물러 있습니까?”
누구든 시진핑 정권의 앞날을 점치려면, 한국 좌파 지식계의 엉터리 중국 신화부터 분쇄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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