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납치 후 강제노역 '형제복지원'…'국가 사과' 권고 후 "바뀐 게 없다"

박상곤 기자, 하수민 기자 입력 2022. 11.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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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시설에 모여있는 어린 아이들. '한국판 아우슈비츠'라고 불리는 형제복지원은 사회적 약자와 무고한 시민들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았다./사진제공=형제복지원 피해자 황정복씨


"첫째도 인권유린, 둘째도 인권유린, 셋째는 인간 존엄의 가치 자체를 말살시킨 거죠."

형제복지원 피해자 황정복씨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이같이 표현했다. 황씨가 9살 어린 아이였던 1975년, 부산역 근처 파출소 경찰관은 화장실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황씨를 데려가 탑차에 태웠다. 황씨가 기억하는 탑차엔 아이들과 어른들이 이미 가득 타고 있었다. 20~30분을 달린 탑차가 이들을 데려간 곳은 부산직할시 북구 주례동 산 18번지. 부산의 부랑인 수용 시설인 형제복지원이었다.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0~80년대 부랑자 선도를 명분으로 운영한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노숙자·청소년·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무고한 시민의 인권을 짓밟았던 사건이다. 황씨와 같은 피해자들은 불법 감금과 강제노역, 집단 구타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지난 8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 결과 형제복지원에서 목숨을 잃은 공식 사망자는 657명이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8월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국가가 자행한 인권 침해"라는 규정을 내리며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지원을 권고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받은 사과나 피해보상에 대한 진척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황씨는 23일 머니투데이와 한 인터뷰에서 "국가가 '가해자'고 우리가 '피해자'로 확정된 사건이다"며 "이제라도 진정한 사과와 배·보상 문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맞아서 다 깨져버린 이빨…적자생존 속 감시와 싸움도 비일비재
형제복지원의 옛모습. 황정복씨는 9살에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가자마자 10㎏이 넘는 모래가마를 짊어지고 다녔다./사진제공=형제복지원 피해자 황정복 씨
9살부터 형제복지원에 갇혀있었던 황씨는 형제복지원을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건물도 지어지지 않은 복지원에선 천막을 쳐놓고 60~70명 아이가 한꺼번에 잠을 잤다. 먹는 건 물론이고 이와 피부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은 한둘이 아녔다.

노동과 가혹행위는 일상이었다. 바람 불면 날아가는 꽁보리밥만 먹으면서 어린아이들은 복지원 건물을 짓는데 동원됐다. 황씨는 "새벽마다 10㎏이 넘는 모래가마를 짊어지고 다녔고 군가를 부르게 하고 제식훈련을 시켰다"며 "못하면 맨 바닥에 머리를 박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감시와 폭행은 모두 형제복지원 안에서 이뤄졌다. 복지원에 끌려온 성인 중 일부를 차출해 소대장을 시켰고 힘 있고 똘똘한 아이들을 골라 조장 일을 맡겼다. 황씨는 이를 두고 "적자생존 속 강자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었다"며 "이유 없는 학대 말고도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폭행하는 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황씨는 일방적인 구타 말고 아이들끼리 싸우는 경우도 허다했다며 "적자생존 속에서 강자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에 싸움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고 했다.

형제복지원에 갇힌 지 11년째 되던 1986년. 황씨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4번째 탈출 시도 끝에 형제복지원에서 빠져나왔다. 아동소대 소대장을 맡게 된 지 4일 만이었다. 아이들이 교회 예배를 들어간 사이 몽둥이를 들고 경비를 서던 황씨는 자유와 가족을 찾기 위해 형제복지원에서 도망 나왔고, 곧바로 서울로 가는 기차에 탑승했다. 황씨는 "고향인 울산이나 부산에 있으면 다시 붙잡혀 들어갈까 봐 가장 먼 서울로 갔다"고 말했다.
살기 위해 버텨온 삶…"주변 시선 두려워 말도 하지 못해"
황씨는 주기적으로 형제복지원에서 함께 있었던 친구들과 만난다. 왼쪽부터 황정복, 이세근, 김인수, 최태환, 안덕화씨./사진제공=형제복지원 피해자 황정복씨
탈출 후 당장 먹고 잘 곳이 필요했던 황씨는 서울 남대문 한 의류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형제복지원에 있는 동안 경제활동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황씨는 "이때 월급이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며 "돈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생존과 가족을 위한 분투에 비교적 다른 피해자보다 빨리 사회에 적응한 황씨였지만, 그렇다고 형제복지원에 대한 트라우마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1986년에 형제복지원에서 탈출한 황씨는 2년이 지나서야 가족들을 찾아 나섰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밝혀지기 전, 부산이나 울산으로 가족을 찾으러 갔다가 혹여 다시 잡혀갈지 모른단 두려움 때문이었다. 황씨는 "한동안 '부산' '형제'란 단어에 트라우마가 있었다"며 "부산 방향으론 소변도 보지 않았고 다시 무참히 짓밟힐까 하는 두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부산과 형제복지원에 대한 공포심만이 트라우마 전부가 아니다. 자신이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주변 시선이 달라질까 두려워 최근까지도 말을 아껴온 황씨였다. 서류에 본적을 쓸 때 '부산 북구 주례동 산 18번지도 쓰지 않는다'고 한다. 형제복지원에 있던 게 알려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황씨는 아내와 세 딸에게도 4년 전에 처음으로 형제복지원에 있었단 사실을 말했다. 황씨는 "나로 인해서 가족들이 피해를 볼까 봐 말을 못 했었다"며 "내 아픔을 이해해 준 가족들과 서로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고 회상했다.

황씨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아직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회에 적응하기도 힘들어한다고 했다. 황씨는 "피해자 모두가 한창 자라고 배울 시절 끔찍한 고초를 겪었다"며 "부랑인 프레임에 씔 거란 걱정에 휩싸이고 사회에 적응을 못 해 힘들게 사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국가 사과' 권고했지만 사과와 배·보상 없어...싸움은 지금부터 시작
주민등록등본과 원적을 비교하고 있는 황정복씨. 원적 상 황정복씨는 1966년생이지만, 주민등록 상 황씨는 형제복지원에서 기입한 1968년으로 등록돼있다. /사진=박상곤 기자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구나.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지난 8월 24일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을 받은 소감을 묻자 황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했다. 국가가 가해자로 확정된 사건이지만 지난 8월 24일 이후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고 황씨는 말했다. 황씨는 "(진화위 권고 후) 국가가 사과한 것은 하나도 없다"며 "정부가 모르쇠로 있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전했다.

피해자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뭐냐는 물음에 황씨는 '조속한 배·보상 문제 해결'을 꺼냈다. 황씨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할 기본적인 틀을 배우지 못한 건 누가 책임지는 거냐"며 "어린 시절 형제복지원에서 빼앗긴 시간과 신체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씨는 자신에게도 앞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적인 싸움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형제복지원에서 입은 피해에 대한 보상, 바뀌어버린 내 호적 등 모든 걸 다 돌려놓으려면 법원에서 처리가 돼야 하더라"며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에 참여했고 앞으로도 법적인 해결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형제복지원 사건 같은 피해자가 세상에 없도록 감시하는 것,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일가의 불법재산 환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씨는 "복지시설을 빙자해 사람들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곳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도록 하며, 박인근 원장 일가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을 착취해 빼돌린 재산도 환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할 일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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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곤 기자 gonee@mt.co.kr,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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