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군대]서정원부터 권창훈까지…태극전사 월드컵 역사와 함께한 軍

허고운 기자 2022. 11. 26. 0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54년엔 사실상 '군대팀'…2006년부터 5회 연속 군인 출전

[편집자주] '요즘 군대'는 우리 군과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하는 뉴스1의 연재형 코너입니다. 국방·안보 분야 다양한 주제를 밀도 있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권창훈이 지난 23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2022.11.23/뉴스1 ⓒ News1 이동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지난 24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의 경기 전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우리 대표팀의 한 선수가 거수경례를 해 눈길을 끌었다.

거수경례를 한 선수는 국군체육부대 축구팀 김천상무 소속 권창훈 상병이다. 프랑스 리그앙 디종 FCO, 독일 분데스리가 SC프라이부르크에서 활약했던 권창훈은 작년부터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뛰다 12월에 입대했다. 권창훈은 전역 예정일인 내년 6월26일까지 군인 신분이다.

현역 군인이 축구계 '꿈의 무대'인 월드컵에 출전하는 게 특이한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의 역사는 군과 함께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대표팀이 처음으로 출전한 월드컵은 정전협정(1953년 7월27일) 체결이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이었다. 선발전을 거쳐 20명의 대표단이 구성됐는데 선수들의 이들의 소속은 당시 유일한 기업팀 조선방직공장을 제외하면 헌병사령부, 특무대, 육군 병참단, 육군 첩보대, 해군 등 모두 군이었다.

우리 군은 한국전쟁(6·25전쟁) 시기에 민심을 수습하고 국방력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각 종목의 유명 체육인의 복무를 지원했다. 전쟁통에 운동을 제대로 하기 힘들었던 선수들 입장에서도 군 복무는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지난 24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대한민국과 우루과이 경기에 앞서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서 있다. 2022.11.24/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프로스포츠가 발전하기 전엔 전국 축구대회의 상위권을 군 부대팀이 석권하는 '군대스리가'의 시대가 이어진 만큼, 우리의 1954년 월드컵 명단은 군인으로 채워지는 게 자연스럽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954년 이후 계속된 예선 탈락의 좌절을 딛고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10회 연속으로 월드컵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월드컵에서 활약한 국군 용사들도 한두명이 아니다.

우리 군의 축구 부대는 육군 '웅비', 해군 '해룡', 공군 '성무' 등 크게 3곳으로 운영되던 시절이 있었고, 1984년 이들을 한 데 모은 국군체육부대 산하 상무 축구단이 탄생했다. 상무는 1984년부터 국내 실업대회에 출전했고, 2003년부턴 K리그에 참가하며 축구 선수들이 국방의 의무와 선수 생활을 병행할 수 있게 도왔다.

상무 소속 선수의 월드컵 맹활약이 본격적으로 두드러진 것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 출전한 서정원(현 청두 룽청 FC 감독)이 극적인 골을 넣으면서다. 그는 당시 스페인을 상대로 2대1로 지고 있던 후반 추가시간에 동점골을 넣어 2대2 명승부를 연출했다. 서정원은 입대하자마자 이등병 신분으로 월드컵에 나가 '세계최고의 가성비 선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당시 병장 월급은 1만원이 되지 않았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는 서동명(현 서울 이랜드 FC 골키퍼 코치), 최성용(전 수원삼성 블루윙즈 코치), 최용수(현 강원 FC 감독) 등 3명의 현역 군인이 출전했다. 서동명은 김병지(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에 밀려 출전하지 못했으나, 최성용과 최용수는 당시 대표팀의 주축으로 뛰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경기에서 후반전 이근호 선수가 득점하는 장면. 2014.6.18/뉴스1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한일 월드컵에는 현역 군인이 참여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역사적인 성과를 거둔 2002년 월드컵 대표팀에 병역 혜택을 제공했지만, 특혜 논란으로 2007년 12월28일 관련 규정은 병역법 시행령에서 삭제됐다.

2006년부터는 우리 현역 군인이 5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하고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엔 정경호(전 성남 FC 감독대행)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엔 김정우(현 안산 그리너스 코치)가 군인 신분으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이들 모두 지금은 한국 축구의 '레전드'로 꼽히고 있으며, 특히 김정우는 16강까지 대표팀의 남아공 월드컵 4경기에 모두 선발 풀타임 출장하며 중원을 책임졌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이근호(현 대구 FC)가 조별리그 1차전 러시아전에서 첫 골을 넣었다. 당시 러시아의 골키퍼는 이근호의 중거리슛을 안일하게 처리하다 뒤로 빠뜨려 '기름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이근호의 계급이 병장이어서 "병장 축구를 월드컵에서도 보게됐다"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군에서 병장들이 축구를 하면 하급자들이 그를 '피해가는' 모습을 빗댄 말이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는 현역 군인 신분이던 김민우(현 청두 룽청 FC), 홍철(현 대구 FC)이 발탁됐다. 두 사람은 왼쪽 수비수 경쟁자로 2018년 월드컵에선 2경기씩 뛰었다. 러시아 월드컵에선 경찰대학 부설기관인 무궁화체육단에서 의무경찰로 복무 중이던 주세종(현 대전하나시티즌)도 참가해 1도움을 기록했다.

한편 상무 소속 남자 선수의 경우 대부분 사병 신분이지만 여자 축구단 보은 상무의 경우 선수들이 모두 부사관이다. 이 때문에 의무 복무기간이 지나면 원 소속팀으로 돌아가는 남자들과 달리 상무 여자 선수들은 군에 남아 중사·상사로 진급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군인 축구선수로는 헝가리 출신의 전설적인 공격수 페렌츠 푸스카스가 꼽힌다. 푸스카스는 1943년부터 헝가리의 키슈페스트 AC라는 팀에서 뛰었는데, 이 팀이 1949년 헝가리 국방부에 인수되며 헝가리 육군 산하팀 부다페스트 혼베드 FC가 됐다. 부다페스트 혼베드는 소속 선수들에게 군대 계급을 부여했고, 푸스카스는 계급이 소령이었다. 부다페스트 혼베드는 당시 헝가리 최고의 선수들을 징집을 통해 영입하기도 했다.

hgo@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