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둥이 바리스타' 박옥기씨…"지금이 내 인생 황금기"

강준식 기자 2022. 11. 26.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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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80 실버청년] 청주 솔밭공원 '카페솔솔'서 바리스타로 인생 2막
젊은 손님 보면서 힘 얻어…"건강이 허락하면 계속"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오는 2026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100세 이상 인구 역시 2020년 이미 5000명을 넘겼다. 칠순잔치도 옛말이 되고 있다. 현실로 다가온 초고령화 사회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 청년처럼 살고 있는 80~90대 현역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 솔밭공원에 마련된 '카페솔솔'에서 바리스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박옥기씨(77)가 직접 커피를 내리고 있다.2022.11.24/ⓒ 뉴스1 강준식 기자

(청주=뉴스1) 강준식 기자 = "나이가 이래도 지금이 내 인생에 황금기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 솔밭공원에는 다소 특별한 카페가 있다. 공원 한편에 자리 잡은, 흔히 말하는 작은 '커피차'인 '카페솔솔'이다.

이 커피차에서 음료를 만드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젊은 바리스타가 아닌 우리네 어머니다.

커피차에서 만난 맏언니 박옥기씨(77·여)는 환한 표정으로 커피를 내리면서 지금이 '황금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호적상으로는 1947년생이지만, 실제로는 1945년생인 '광복둥이' 박씨가 이 커피차의 '대장'이 된 것은 지난해 6월.

솔밭공원 옆에 위치한 SK하이닉스는 2019년 사회공헌사업으로 '실버 바리스타'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박씨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다.

박씨는 "60대부터 봉사활동을 많이 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로 봉사를 할 수 있는 곳이나 일자리가 많이 사라졌다"라며 "자격증이나 따보자고 생각했는데 마침 하이닉스에서 좋은 기회를 줘 6개월간 배우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던 중 청주흥덕시니어클럽에서 카페를 한다고 해 신청했다"라며 "고맙게도 저를 뽑아줘서 기분 좋게 일하고 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카페솔솔은 흥덕시니어클럽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실버카페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송정동 솔밭공원에 마련된 '카페솔솔'에서 바리스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박옥기씨(77)가 직접 내린 커피를 건네고 있다.2022.11.24/ⓒ 뉴스1 강준식 기자

박씨가 속풀이 하듯 설명한 그의 인생은 '치열', '열정' 그 자체였다.

23살의 어린 나이에 첫째를 출산한 그는 수십년 동안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낸 적이 없다.

젊은 시절에는 남편과 4남매를 키우기 위해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이제 좀 살만해지니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20여년째 병간호까지 하고 있다.

가장으로서 홀로 생계를 책임진 박씨가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아이들이 장성하고 난 뒤였다.

박씨는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 시부모님도 30년 넘게 모시고…. 그때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라며 "바쁘게 살다 보니 지금도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하고, 움직여야 산 것 같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구연동화도 해보고, 주간보호센터에 다니면서 만들기 봉사도 해보고, 문화의 집에서 책 읽는 봉사도 하고, 아동센터도 다녀봤다"라며 "지금은 밤에 글도 쓴다"라고 했다.

부지런한 박씨가 스스로의 인생을 기록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소소한 일기는 수필이 되고, 한 편의 시가 됐다.

지금까지 수필 4권, 시집 2권을 출간한 그는 어엿한 작가다. 지자체 공모전에서 심심치 않게 당선돼 상금도 받은 적 있다.

'대단하다'는 칭찬에 그는 "살면서 있었던 일상생활을 글로 적었는데 좋게 봐준 것 같다"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른 아침 대중교통을 이용해 1시간 넘는 거리를 출근하면서도 바리스타 박옥기로서 손님을 보고 있으면 힘이 솟는다. 손님 대부분은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다.

하루에 150잔 정도의 커피를 만들지만, 젊은이들을 보고 있으면 지칠 줄 모르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씨는 "일주일에 하루, 주말까지 포함하면 많으면 이틀을 출근한다"라며 "출근하는 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나 남편 끼니를 준비하고 오전 7시30분에 집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이어 "집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쯤 걸린다. 오후 5시까지 근무하는데 힘든지 모르겠다"라며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오히려 힘을 얻는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런 박씨는 요새 젊은이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것만 같아 아쉽다.

"이 나이가 돼보니 1시간 흐르는 것도 아쉽게만 느껴져. 좋아하는 것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야. 젊은 사람들도 좋아하는 거 찾으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

삶의 조언을 남긴 그는 "자식들이 힘들다고 그만하라고 하는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짧은 인사를 마지막으로 다시 커피차에 올랐다.

jsk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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