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용어의 조건]⑪ "엄선된 용어 필요한 건 아냐...친숙한 표현 고려해야"

고재원 기자 ,박정연 기자 2022. 11. 26.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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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사이언스 영상기획
심재앙 가천대길병원 정형외과 교수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 때 굉장히 많은 전문용어들이 일상적으로 허용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도 의사이지만 쉽지 않은 용어들이었습니다."

이달 중순 인천 가천대길병원에서 만난 심재앙 가천대길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어려운 전문용어가 자주 사용되며 익숙해진 사람도 있을 것이나 그 용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심 교수는 쉬운 진료에 심혈을 기울이는 의료진 중 한 명이다. 어려운 의학용어는 의료인과 환자 간 의사소통의 걸림돌이 된다. 그가 전공한 정형외과에선 길고 어려운 한자어로 이뤄진 진단명이 많다. 우리 인체는 206종류의 저마다 다른 이름을 가진 뼈로 구성돼 있다. 수많은 뼈를 용도에 따라 분류하다 보니 명칭이 복잡해진 것이다. 의대에서 교육을 받은 의사들은 뼈의 이름과 뼈와 관련된 질환명에 익숙하지만 일반 대중에겐 ‘처음 듣는 용어’인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반월상연골판손상(半月像軟骨版損傷)이 대표적이다. 넓적다리뼈와 정강뼈 사이에 있는 ‘C’자 모양의 연골이 파열된 상태를 의미한다. 격한 스포츠 경기 도중 흔히 발생하는 부상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이 같은 명칭이 익숙하지 않다.

 

또 의학용어 자체가 가진 한계점도 존재한다. 심 교수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의학용어는 일본말로 옮겨진 원어를 한문으로 옮긴 것이 대부분”이라며 “환자의 이해 측면에서 진단명이나 검사 소견에 사용하기에 곤란한 용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한자어에 익숙치 못한 젊은층, 영어에 익숙치 않은 노년층 모두 동일하게 겪는 문제점이다. 심 교수는 "환자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만한 친숙한 표현을 고르는 방식으로 소통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반월상연골’의 경우 어르신들이 자주 쓰는 표현인 ‘도가니’라고 하며 ‘관절연골(關節軟骨)’은 ‘물렁뼈’라고 설명한다. 심 교수는 “환자들에 대한 진료는 교육이 아닌 질환을 이해시키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아주 엄선된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며 "진료에서는 환자가 자신의 몸 어디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 정확히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 교수의 수십년 간 진료 경험으로 미뤄볼 때 환자들이 가장 편하게 받아들이는 진료 용어는 비유를 곁들인 우리말이었다. 예를 들어 증상명 중 ‘infection’과 ‘inflammation’은 모두 한자어로 ‘염증’이라고 표현된다. 임상적으로는 두 증상 모두 열이 나고 빨개진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infecton’은 고름을 동반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심 교수는 “기존 한자어로 정확한 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고름이 나오는 염증’과 ‘염증반응’으로 구분해 설명한다”며 “우리말은 표현이 더 자유롭기 때문에 전달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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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환자가 이해하기 쉬운 단어나 비유법을 고를 때는 환자의 연령대, 직업, 생활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 교수는 “‘쪼그려 앉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는 생활수칙을 설명할 때 어르신들에게는 ‘밭농사는 되지만 논농사는 안 된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농업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직장인들에게는 이러한 비유법이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물론 의학용어 중에선 대체하기 어려운 용어가 많다. 관련해 심 교수는 순화가 필요한 의학용어를 선정하기 위한 기준으로 ‘의미를 명확히 전달할 필요가 없는 용어’와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용어’를 제시했다. 그는 “이처럼 소통을 위해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무리해서 용어를 순화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앞으로 쉬운 의학용어를 사용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 전망했다. 용어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원 기자 ,박정연 기자 jawon1212@donga.com,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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