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첫 왕조의 후손이 한국에 산다?…베트남 관광대사 된 왕손
리 왕조(1009~1225년)는 중국 책봉 체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국왕을 결정한 최초의 베트남 왕조다. 200여 년간 번영하며 베트남의 기틀을 다졌고 현 수도인 하노이를 도읍으로 정하기도 했다. 리 왕조는 9대, 216년 만에 몰락했는데, 다음 왕조인 쩐 왕조는 리 왕조 후손을 거의 몰살했다. 리 태조의 7대 왕자인 이용상은 가까스로 도망쳐 남송과 타이완, 금나라, 몽골 등을 거쳐 지금의 황해도 옹진에 상륙했다. 때문에 이용상을 '베트남 최초의 보트피플(boat peopl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려 조정은 이용상을 크게 환영했다. 고려 여인과 결혼시켜 일대의 땅을 식읍으로 하사했다. 또 그가 정착한 곳인 '화산'(황해도 옹진군)을 본관으로 삼게 했다. 현재 이용상의 후손인 '화산 이씨'는 약 1,3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이창근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는 양국을 오가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이다. 2000년 가족과 함께 베트남으로 이주한 뒤 2010년엔 베트남 국적을 취득했다. 이 대사와 화산 이씨의 이야기는 1995년 KBS 다큐멘터리 '일요스페셜'을 통해 대중에 알려지기도 했다. 한-베트남 수교 30주년인 2022년, 리 왕조의 후손 이창근 대사를 다시 만났다.
Q. 주한 베트남 관광대사로서 주로 하는 일은?
"2017년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가 나를 관광대사에 임명했다. 일종의 명예직이었지만 베트남 관광 발전에 실질적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2018년에 주한 베트남 관광청을 설립해 베트남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그런데 2019년에 코로나19로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최근에야 다시 베트남 전통무용 공연 같은 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Q. 요즘 한국 사람들에겐 베트남이 여행지로 매우 친숙하다.
"오죽하면 다낭을 '경기도 다낭시'라고 부르겠나. 여행업계에서도 놀랄 정도다.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지인 다낭은 산과 바다, 강이 어우러져 있어 한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또 한국과 베트남은 유교적 전통을 공유하고 있어 정서적으로 친근하다."
Q. 어렸을 때부터 리 왕조와 이용상 왕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나?
"집안 어른들로부터 족보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들었다. 어릴 때는 친구들에게 장난스럽게 나는 왕의 아들이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너희들은 나를 쳐다도 못 볼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기도 했다. 1966년에 소설가 강무학 씨가 쓴 '황숙 이용상'이라는 역사소설이 있는데 그 책을 여러 번 읽었다."
Q. 베트남과 수교 당시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그땐 직장생활을 하던 때였고 결혼 직후였는데 베트남과 교류가 시작된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작은아버지는 월남이 패망한 뒤 수교가 끊기면서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는데, 작은아버지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조상의 땅 하노이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베트남 정부의 초청도 있어 직장을 그만두고 사비를 털어 베트남으로 갔다."
한국과 베트남이 국교를 정상화한 뒤 1995년, 베트남 정부는 화산 이씨의 존재를 확인하고 한국에 있는 종친회 주요 인사를 초청했다. 당시 베트남 공산당 지도부는 공항까지 마중을 나가 이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이용상 왕자가 대규모 살육을 피해 고국을 떠난 지 769년 만에 그의 후손인 화산 이씨는 그렇게 조상의 땅에 다시 돌아왔다.
"베트남은 굉장히 민족주의적이다. 매년 음력 3월 15일은 리 왕조 창건 기념 축제가 대대적으로 열린다. 그동안 베트남 지도자들도 한국을 방문하면 항상 화산 이씨를 찾는다. 오는 12월 방한할 예정인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과도 만남이 예정돼 있다."
Q.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첫 왕조라서 그런가?
"그렇기도 하고 지금의 수도 하노이를 도읍지로 정한 왕조이기 때문에 베트남 국민들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베트남이 가장 부러워하는 게 경복궁인데 베트남은 이제 리 왕조 왕궁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Q. 조상의 땅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비행기로 5시간이나 걸리는 베트남에 살기로 한 건 어려운 결정 아니었나?
"베트남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리 왕조의 후손으로 인정해주고 받아줬기 때문에 뭔가 기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죽어도 베트남에서 죽겠다는 마음으로 갔다."
Q.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
"당시 아이들이 어릴 때라 아빠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당시엔 불만이 있었지만 얘기를 못 했다. 그런데 지금은 농담 삼아 '이제는 당신 마음대로 안 돼'라고 한다.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지만 가족들은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둘째 아이는 베트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왔다."
Q. 리 왕조의 후손이니 국적 취득은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데?
"베트남 정부와 국적 취득 얘기가 오고 가긴 했지만 베트남이 이중국적을 허용한 건 2010년부터다. 2010년은 리 왕조가 하노이를 도읍으로 정한 지 천 년이 되는 해인데 그때 이중국적을 허용했다. 그러면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 국적을 취득했다."
Q. 관광대사로서 앞으로의 포부는?
"한국과 베트남의 오랜 관계를 알리겠다. 역사적으로는 악연도 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과거부터 피를 나눈 형제국이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미래를 향한 준비를 해야 한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베트남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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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모 기자 (maria61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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