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의 무비] 이태원 참사를 잊지않기 위한 세 개의 장면

김세윤 2022. 11. 26.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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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구하기 힘든 질문을 만났을 때 난 영화를 생각한다.

신을 믿는 사람은 신에게 묻겠지만, 난 영화를 믿는 사람이니까 영화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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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의 비장의 무비]

답을 구하기 힘든 질문을 만났을 때 난 영화를 생각한다. 신을 믿는 사람은 신에게 묻겠지만, 난 영화를 믿는 사람이니까 영화에게 묻는다. 영화가 해준 이야기에 기대를 걸어본다. 해답이 되진 못하더라도 어떤 단서는 될 수 있길 바라며 내가 떠올린 장면 셋.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마음으로 여기에 붙여두는 세 번의 대화.

#1 〈래빗 홀〉(2010)

주인공 베카(니콜 키드먼)는 아들을 사고로 잃었다. 8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고통스럽다. 엄마에게 물어본다. 어떻게 버텼느냐고. 11년 전, 역시 당신의 자식을, 베카의 오빠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가 말한다.

“글쎄, 무게의 문제인 것 같아. 언제부턴가 견딜 만해지더라고.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조약돌처럼 작아지지. 그래서 때로는 잊고 살기도 해. 그러다 문득 생각나 손을 넣어보면 그 조약돌이 만져지는 거야. 끔찍할 수도 있어.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냐. 뭐랄까, 아이 대신 너에게 주어진 무엇? 평생 가슴에 품고 가야 할 것? 그래, 절대 사라지진 않아. 그렇지만… 또 괜찮아.”

오래전에 동생을 잃은 감독 존 캐머런 미첼이 직접 겪은 슬픔의 물리학. 가슴을 짓누르던 바위에서 주머니 속 조약돌로. 결국 작아진다. 절대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도, 그렇지만… 견딜 만은 해진다.

 

 

#2 〈안녕, 헤이즐〉(2014)

열여섯 살 헤이즐(셰일린 우들리)과 열여덟 살 거스(앤설 엘고트). 암과 싸우느라 안녕하지 않던 두 사람이 함께 있어 비로소 안녕해지는 이야기. 하지만 이별을 피할 순 없었다. 거스를 보내며 헤이즐이 읽어 내려간 추도사.

“전 수학자가 아니지만, 이건 알아요. 0과 1 사이에는 무한대의 숫자가 있습니다. 0.1도 있고 0.12도 있고 0.112도 있고. 그렇게 끝도 없이 많은 숫자들이 있죠.”

0과 1 사이에 사실 무수히 많은 수가 있듯이, 아주 짧아 보이는 삶에도 무한의 우주가 있다고 말하는 그 추도사. 이렇게 끝이 난다.

“내 사랑 거스, 우리만의 작은 무한대가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 함께한 짧은 시간 안에서 넌 내게 영원을 주었지. 그걸 난, 영원히 고마워할 거야.”

 

 

#3 〈세인트 빈센트〉(2014)

아저씨 곁에 유골함이 있다. “그 안엔 뭐가 있어요?” 물어보는 옆집 아이에게 빈센트(빌 머레이)가 대답한다. “내 아내가 있지.” “돌아가셨나요?” “아니, 작아졌어. 작아져서… 이제 이 안에 살아.” “아, 죄송해요. 유감이에요 아저씨.” 그때 빈센트가 하는 말. “죄송하다, 유감이다, 다들 똑같은 말만 하고 있네. 좀 다른 걸 물어볼 순 없을까? 가령 ‘아내는 어떤 분이었어요?’ ‘많이 보고 싶으세요?’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이런 질문 말이야.”

이 영화에서 배웠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고. 어떻게 죽었는지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얘기할 기회가 더 주어져야 한다고. 그래야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래야 작아지니까. 그래야 조약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언제든 손을 넣으면 짧은 생이 남긴 무한의 기억이 만져질 수 있게.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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