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성숙한 사랑의 토양은 '인내'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2. 11.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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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줄 모르고 이쁘지 않은 것을 이뻐할 줄 모르는 사람은 깊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경험하기 어렵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랑은 인내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사랑에는 기쁨 못지 않게 다양한 걱정, 불안, 시기, 오해, 갈등들로 가득차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달콤했던 기억들 못지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줬던 기억, 사랑했던 만큼 더 아파했던 기억들이 같이 떠오를 것이다.

아무리 관계가 좋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오래 지내다 보면 서로의 약점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오래 성공적인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서로 참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강인한 사랑은 버티고 인내하는 마음을 토양으로 자란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에는 달콤함 못지 않게 쓴 맛도 강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연인이나 배우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좋은 감정 못지 않게 다양한 부적 감정을 함께 보이는 편이다. 다 좋은데 설거지를 너무 못한다든가 가끔 보면 좀 이기적이라거나 또는 예전에 내게 크게 상처를 준 적이 있다는 등 상대를 향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나타난다. 

따라서 의외로 오래 좋은 관계를 유지한 연인들도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몸짓이나 표정, 직관적인 감정으로 나타나는)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호감도가 다소 어긋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얼마 전 다툰 일로 인해 아직 불편한 감정이 남아있지만, 어린 아이처럼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의 행복을 위해 애를 쓰는 경우, 그 당시 상대방에 대해 느끼는 실제 감정과 내가 생각하는 내 사랑의 깊이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탄탄한 관계를 이어온 연인들의 경우 너무 밉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 사람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다짐하는 등 상대방에 대해 상반되는 생각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경우가 자주 관찰된다는 것이다. 사랑도 결국에는 이성과 자기통제의 영역인 셈이다. “밉지만 밉지 않아”, “배려 안 하고 싶지만 배려 할 거야”, “나쁜 사람인데 좋은 사람이기도 해” 등의 마음이 서로 싸우는 세상이라고나 할까. 

흔히 사랑은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성숙한 사랑이란 많은 부분 이성과 헌신, 책임감, 타인에 대한 예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숙한 사람만이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보통 사람들의 경우 오래 사귈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대에 대한 짜증과 불만이 쌓여 연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형성하게 된다는 발견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을 편하다 못해 쉽게 생각하거나 어느덧 상대의 존재를 당연히 여기는 자신의 탓도 크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저평가와 실망을 쌓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식었다며 관계를 포기해 버린다. 이런 경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오랫동안 연인에 대해 나쁜 인상을 쌓아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날 수 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원래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며 서로의 장점이나 좋은 점, 고마운 점을 계속해서 상기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식다가도 다시 데워지며 관계를 오래 지켜나가는 경향을 보인다. 쉽게 말해서 감사할 줄 모르고 이쁘지 않은 것을 이뻐할 줄 모르는 사람은 깊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쁘지 않은 것을 이뻐한다고 해서 잘못된 행동을 옹호하거나 무조건 다 좋게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쉽게 관계에 권태감을 느끼거나 상대의 평범하거나 사소한 실수에 일일이 감점을 하는 태도는 사랑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서로 더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면, 우리는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Hicks, L. L., & McNulty, J. K. (2019). The unbearable automaticity of being... in a close relationship.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28, 254-25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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