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각자도생의 금융위기 내러티브, 끊을 해법 갖고 있나

정원석 기자 2022. 11. 26.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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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쯤부터 지인들과 공유한 단톡방에서 이런 메시지가 화제가 됐다.

“○○저축은행 ○○지점 금리 6.XX% 만기 1년 예금 특판, 한도 150억원 모집 중. 30분 만에 완판”

1년 넘게 이어온 금리 인상 효과가 사람들의 사담(私談)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레버리지(leverage)를 일으켜 고수익 상품에 투자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금리 1%p(포인트)를 더 받으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등으로 발품을 팔고 있다. 서로 이런 발품을 독려하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요새는 금리 노마드족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들의 재테크 기행은 금융시장에서 ’경제 혹한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기억 때문이다.

모기지 증권 부실로 리먼 브러더스, 영국 노던록 등 글로벌 금융회사가 파산했던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규모 예금 인출 등 뱅크런(bank run) 공포를 조장했다. 유동성 부족으로 뱅크런이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는 국내 금융권에서는 자본 확충 경쟁에 불을 붙였다. 뱅크런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자본을 확충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고금리로 예금을 유치하는 경쟁에 참여해야 했다.

예금 특판 경쟁에는 너 나 할 것 없었다. 시중은행이 7% 예금 금리 특판을 출시하면 저축은행은 8% 예금 특판으로 맞불을 놨다. 이자를 복리로 지급하기로 약속한 곳도 있었는데, 결국 3년 뒤 저축은행 사태로 파산했다. 그때부터 ‘고금리 예금 특판 경쟁은 시중 유동성이 말라갈 때 나타난다’는 내러티브가 형성됐다. 고금리 특판 경쟁은 뱅크런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서사가 탄생한 것이다.

14년 만에 부활한 고금리 예금 특판 경쟁은 레고랜드 사태로 표현되는 채권시장 경색에서 시작됐다. 10월말 6%대였던 특판 예금 금리는 어느새 8% 이상으로 훌쩍 뛰었다. 서울 외곽 새마을금고, 신협 등에서 나온 10% 특판 예금은 30분 만에 완판된다고 한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등에서 예금 특판 경쟁이 일어나는 것은 이들의 수익 구조에서 비롯됐다. 저금리로 인한 줄어든 이자 수익을 벌충하기 위해 2금융권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에 손을 댔다. 누적된 금리인상 효과로 나타난 부동산 가격 급락은 PF 시장에 돈줄을 마르게 했고, 2금융권 회사들은 부동산PF 사업 차질로 인한 유동성 부족을 회피하기 위해 고금리 예금으로 자본을 확충하고 있다.

개별 금융회사의 생존을 위한 이런 행동은 금융시장 전체로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부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2금융권 고금리 특판 예금이 기업들의 자금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으로 향하는 돈줄을 끊어지게 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회사채 금리보다 높은 예금상품에 시중 자금이 몰리면서, 사실상 국가 보증채나 다름없는 한전채 발행도 유찰이 날 정도다.


“지금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시장금리가 올라가고 시기도 앞당겨졌다고 생각한다. 기준금리 인상 영향이 내년 상반기부터 서서히 효과가 본격화하면서 물가가 잡히고 이후 금리 속도를 줄이며 대응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었는데, 지난달 예상치 않게 프로젝트 파이낸싱 자산담보부 기업어음(PF-ABCP) 사태가 터졌다. 부동산 관련 금융시장에서 불필요하고 과도한 신뢰 상실이 생기면서 시장금리가 기준금리 상승 이상으로 급격히 올라가 당황스러웠다.”

지난 24일 11월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50bp(1bp=0.01%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하면서, 시장이 받을 충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환율 급등과 인플레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시장의 반작용을 계산하지 않은 빅스텝은 균형 감각이 한참이나 모자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내년과 내후년 성장률을 1.8%, 1.9%로 전망하며 “성장 동력을 상실한 한국 경제가 역풍을 맞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2년 연속 2% 성장에 미달하는 것은 역사에 없던 일이다. 유동성 경색과 실물 경제 장기 침체가 동시에 닥치는, 한 번도 겪지 못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책 당국과 시장의 거리가 좁혀져야 한다. 시장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재빨리 알아채고,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는 정책 당국의 영민한 대응이 필수적이다. 시장 인식과 동떨어진 상황 판단과 정책 결정은 경제 주체들의 각자도생을 부추기고,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초래해, 시스템 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정부가 다음 달 발표할 내년 경제정책방향에 이런 고민과 문제의식이 많이 녹아있기를 바란다.

[정원석 경제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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