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늙은’ 소설가
“나는 내가 늙었는지 알겠다. 이렇게 글을 쓰려고 의자에 앉아 두어시간만 보내면 엉덩이가 배겨 참기 어려워진다.”
기사 마감하려 책상 앞에 앉았다가 허리가 슬슬 아파질 때쯤 이 문장을 읽고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에세이 ‘늙었으면서 늙은 것을 모르고’를 쓴 사람은 소설가 백민석(51). 출판사 작가정신이 창립 35주년을 기념해 작가 23명이 소설에 대해 쓴 글을 엮은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에 실렸습니다.
백민석 장편소설 ‘목화밭 엽기전’이 대학 도서관에 입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들보다 먼저 빌려보려 달려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2000년이었죠. 당시 ‘도발적인 젊은 작가’라 불리던 백민석이 늙음을 논하는 글을 읽고 있자니 세월의 흐름이 새삼 느껴졌습니다.
백민석은 지난해 어느 대학원생으로부터 ‘전업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인터뷰 요청을 받은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지금은 나 같은 근대문학을 하는 작가에게 인터뷰를 청하지만 몇 년만 지나면 웹소설을 쓰는 작가에게 인터뷰를 청하게 될 거예요”라고 했더니 그 학생이 화들짝 놀라면서 자기들 말고 다른 팀은 이미 웹소설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는군요.(요즘은 제도권 문학을 하는 작가를 ‘근대문학 작가’라 부른답니다.)
시대에 뒤처진 것만 같은 씁쓸함을 백민석은 이렇게 달래 봅니다. “늙는 게 뭐 어때서? 거꾸로, 세상이 자꾸 젊어지는 걸 바라보는 것을 사는 낙으로 삼으면 된다. 내가 늙는 만큼 세상은 역으로 젊어지고 새로워진다. 이십대 때나 지금이나 내가 왜 소설을 쓰는지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것은 같지만, 그래서 늙어감에 대해 썼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변했다.” 소설가의 육체는 쇠했을지 몰라도, 재기발랄한 문장만은 늙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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