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美 소도시의 ‘참사 추모 나무’

정지섭 여론독자부 차장 2022. 11.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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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미국 코네티컷주의 소도시 뉴타운에 있는 녹지에 200여 명이 모였다.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희생자 추모 공원 개장을 하루 앞두고 유족과 이웃 주민들이 모여 기념 행사를 연 것이다. 지역 청소년 4중주 악단의 연주를 시작으로 묵념과 참석자 발언, 헌화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희생자 추모 공원 개장을 하루 앞두고 열린 12일 추모 행사에 참여한 유족들이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를 돌아보고있다./AP 연합뉴스

크리스마스를 앞둔 2012년 12월 14일 샌디 훅 초등학교에 총기 난사범이 난입해 어린이 20명과 교사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지고 분노했다. 참사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성된 공원은 누구나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쉼터로 꾸며졌다. 자갈로 나무 사이에 산책길을 깔았고, 중심부에는 원형 연못을 만들고 가운데 설치한 원형 조형물 테두리에 희생자 스물여섯 명의 이름을 새겼다.

추모 공원은 완공까지 9년 걸렸다. 참사 이듬해인 2013년 가을 시 정부와 주민·유족들이 주축이 돼 추모 공원건립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들은 주기적으로 만나 입지와 구성, 건립 예산 조달 방법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다. 과정이 순조롭진 않았다. 당초 1000만달러까지 책정됐던 건립 비용이 주민 의견을 수렴해 당초의 40% 수준으로 조정됐다. 공원 설계 작업을 이끌던 토박이 건축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추모 조형물의 정중앙에 심은 플라타너스다. 추모 공원 건립위원이면서 총격범에게 딸을 잃은 유족인 조앤 베이컨이 기념사를 통해 플라타너스를 고른 이유를 알려줬다. “플라타너스는 형벌 같은 극한 고통도 버텨내는 굳건한 나무로 이름났죠. 12월 14일의 끔찍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건 형벌입니다. 하지만 이 나무는 또한 사랑과 보호, 비옥함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나무의 몸통은 조각가들이 열망하는 재료죠. 10년 동안 희생자 26명의 가족은 사랑을 담아 나무를 조각해왔어요.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또한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죠.” 추모의 의미와 더불어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다짐의 의미가 담긴 식수(植樹)라는 설명이었다. 10년 전 참사로 아들을 잃고 어린이 안전 단체인 ‘샌디 훅의 약속’을 설립한 니콜 허클리는 “푸르른 잎이 무성한 나무의 모습이 정말 보기 아름답다”고 했다.

참사를 겪은 지역사회는 고통을 딛고 조금 더 좋은 세상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이 있었다. 비극을 겪은 당사자들이 슬픔을 딛고, 추모하고, 이겨내도록 곁에서 위로하면서 돕는 것. 그래서 비극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보완하는 것. 참사를 겪었을 때 공동체가 보여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이태원 참사를 겪은 한국 사회가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을 바다 건너 미국의 소도시에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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