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읽기] 낚시꾼으로 가득한 바다엔 물고기가 없네
로스차일드 가문의 막내 데이비드 드 로스차일드가 버려진 페트병으로 만든 배를 가지고 태평양을 횡단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부잣집 도련님이 좋은 일도 하시나 보다, 정도로 가볍게 들었다. 2010년 실제로 성공했다고 했을 때에도 역시 모험도 돈 있는 사람들이 하는구나, 거기에 손뼉을 쳐줘야 하나, 시큰둥했다. 그렇다고 내가 페트병 같은 폐플라스틱을 남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10년도 넘은 지금 ‘플라스티키, 바다를 구해줘’(북로드)를 다시 집어 든 것은 문화적 측면에서 최근의 낚시 붐을 살펴볼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가 탄 재활용품으로 만든 배 이름이 플라스티키인 것은 ‘콘티키’가 여행의 모티브였기 때문이다. 콘티키는 1947년 네덜란드 학자이자 탐험가인 토르 헤위에르달이 페루에서 폴리네시아까지 태평양을 항해할 때 탄 뗏목이다.
정확히 같은 항로는 아니지만, 50여 년 격차로 문명 도움 없이 태평양을 항해한 두 배의 차이는 명확했다. “대장이었던 토르 헤위에르달은 주변을 지나가는 만새기 떼가 너무 많아서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물고기 천지였다고 기록했다. (…) 매일 물고기가 밥상에 올랐고, 오징어를 미끼 삼아 바닷물에 던져놓기만 하면 몇 분 지나지 않아 가다랑어나 만새기가 걸려들었다고 한다.” 이게 50년 전에 항해한 콘티키의 상황이었다. “물고기로 가득 찬 세상은커녕, 우리가 만난 것은 거대한 푸른 사막이었다. (…) 매일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우리는 항해 기간 전부를 통틀어 겨우 물고기 3마리를 낚아 올렸을 뿐이다.” 플라스티키가 만난 태평양 특히 북태평양은 ‘사막’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바다였다. 50년 동안 태평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로스차일드는 어류 남획, pH8.2 정도의 알칼리성었던 바다가 산성화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지적한다. 여기에 폐플라스틱 문제가 추가된다. 가끔 보는 낚시 방송에서 프로들이 “물고기가 너무 없다”는 얘기를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태평양, 어군 탐지기 없이는 물고기를 잡을 수 없는 대양, 그것이 로스차일드가 플라스티키 항해를 통해 나에게 보여준 현실이다. 바다에서 점점 더 물고기가 사라져가는데, 바다낚시가 트렌드가 된 우리의 현실, 뭔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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