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년 새 44% 치솟은 청소년 자살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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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예방법 시행 10년 돼도 문제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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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상담 기관·인력 확충 방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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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청소년 조기에 발견 못 하면 헛일
정부가 날로 심각해지는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해 심리 클리닉 확충을 포함한 각종 지원책을 내놨다. 우리나라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악이다. 그중에서도 청소년(9~24세) 자살률이 더 우려스럽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3.6명으로 OECD 평균(11.1명)의 두 배가 넘는다. 특히 청소년 자살률은 2017년 7.7명에서 2020년 11.1명으로 44% 늘었다. 같은 기간 10대의 자살 및 자해 시도는 2633명에서 4459명으로 69%나 치솟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소년 자살이 느는 이유조차 명확히 규명하지 못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소통이 줄면서 10~20대의 정신 건강이 악화했다든가, 저성장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청년들을 비관에 빠뜨렸다는 추론이 나오는 정도다. 실제 사례에선 근래 상황에 국한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드러난다.
뛰어난 학업 역량을 보였던 학생이 고교 입시에서 실패한 이후 좌절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다. 만 18세가 됐다는 이유로 보육원에서 나와 홀로 살아야 하는 ‘보호 종료 아동’이 자립에 실패해 삶의 끈을 놓는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소셜미디어(SNS)·포털 사이트에서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이 아이들의 위험 신호는 정신과 진료 현장에서 뚜렷이 포착된다. “과거 대학병원 정신과 폐쇄 병동에는 조절되지 않는 조현병 환자 등이 주로 입원했는데, 요즘에는 자살·자해를 시도한 청소년으로 가득하다”(신의진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전문가 얘기가 심각한 실태를 보여준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그제 발표한 고위기 청소년 지원 강화 방안은 청소년 자살을 막기 위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청소년쉼터 등을 통해 고위기 청소년을 찾아내고, 인터넷 카페나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위기 대응에 나서는 사이버 아웃 리치 인력을 증원한다. 청소년 상담 1388 담당 인력도 현재 155명에서 2배 이상으로 늘린다. 3개월 이상 집이나 방에서 나가지 않는 은둔형 청소년을 위한 지원책도 내놨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청소년 자살을 획기적으로 줄일지는 미지수다. 2012년 3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을 처음 시행할 때도 기대는 컸다. 그 후 10년이 지났지만, 청소년 자살률은 급증세다. 자살예방법 3조는 ‘국민은 자살위험에 노출되거나 스스로 노출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자살할 위험성이 높은 자를 발견한 경우에는 구조되도록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는 조항도 있긴 하다. 정작 극한 상황에 몰린 당사자들은 이런 법이 있는지조차 모르며 이웃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현실이다.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현장에 스며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미국의 경우 아동사망검토 제도를 시행한다. 자살을 포함한 모든 아동 사망 사건에 대해 수사·의료·교육·보호 기관 전문가가 참여해 분석한다. 이렇게 쌓인 수십만 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청소년 자살 예방을 돕는다. 우리에게도 장기적이고 과학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올해 연간 출산율이 처음으로 0.7명대를 기록하리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출산율은 OECD 국가 평균인 1.59명의 절반 수준인데 자살률은 두 배가 넘는 현실에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우리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청소년 자살은 징후를 일찍 알아채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의 새 정책은 위기 청소년 조기 발견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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