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파일] 200만원짜리 흡연
숨은벽. 띄어쓰기하지 않은 이유는 그 자체가 고유명사이기 때문입니다. 띄어쓰기하는 ‘숨은 벽’은 장애물이나 감춘 것을 뜻하겠죠. 숨은벽은 백운대와 인수봉에서 각각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에 가려져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이 ‘숨어 있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1970년대 이곳에 클라이밍 루트를 개척한 사람들이 처음으로 붙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전의 자료와 신문에는 ‘숨은벽’이 등장하지 않고요. 2014년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이 탐방객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북한산의 빼어난 경관 4위가 ‘숨은벽 단풍’입니다. 1위는 ‘백운대 일출’이었지만, 당시 5~6월이었던 조사 시기가 가을인 10~11월이었다면, 순위는 어땠을까요.
이 숨은벽 들머리부터 ‘금지행위’가 적혀 있습니다. 흡연·음주·취사·야영…. 지난 6일 숨은벽 능선 초입의 작은 공터. 이곳을 지날 때 낯선 향이 스멀스멀 몰려왔습니다. 일행이 공터에서 몸을 내려놓으며 쉴 동안, 끽연가 몇이 으슥한 곳에서 흡연 충동을 참지 못한 것 같습니다.
흡연은 산불의 큰 원인으로 지목받습니다. 이달 첫 주만 해도 전국에서 17건의 산불이 났습니다. 지난 10년간 같은 기간 평균 3.2건에서 5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최근 10년간 한 해 평균 481건의 산불이 났습니다. 담뱃불 등으로 인한 입산자 실화가 산불 원인 중 절반 가까이(48%, 산림청) 차지합니다. 국립공원은 ‘흡연과의 전쟁’을 벌여 왔습니다. 이달부터 10만원이었던 1차 적발 시 과태료를 시행령 개정을 통해 60만원으로 대폭 올렸습니다. 라이터 등 인화물질만 갖고 다녀도 부과 대상입니다. 1년 내 세 번째 적발될 때에는 200만원을 내야 합니다. 더불어 음주행위 과태료도 기존 1차 적발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렸고요.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3월 경북 울진, 강원 삼척 산불을 계기로 국립공원 방문객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과태료를 상향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울진 북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9일간 총 2만923㏊를 소실시키고 1600억원이 넘는 피해를 남겼죠. 그런데, 흡연이나 음주는 현장 적발이 가능해야 단속이 이뤄집니다. 동영상 촬영을 해야 합니다. 인력 운용이 가능할까요. 국립공원 내 흡연 적발 건수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218건, 2020년 245건, 2021년 238건입니다.
다시 숨은벽 능선. 공터의 ‘으슥한 곳’에서 두 명이 나옵니다. 심증만 갔지, 이들이 과태료 120만원(60만원x2명)을 내야 하는 흡연을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한 해 200여 건에 달하는 ‘흡연 적발 건수’에는 들어가지 않겠죠. 국립공원 내 흡연은 당국에서 두드리고 두드려도 쓰러지지 않는 ‘숨은 벽’일까요. 흡연 혐의자들과 그 일행은 가을의 절경, 숨은벽을 향해 사라졌습니다.
김홍준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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