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감도 진영논리도 과학부정론 키워
리 매킨타이어 지음
노윤기 옮김
위즈덤하우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처음 상륙했을 때 미국에서는 음모론이 판쳤다. “그냥 독감일 뿐이다”, “대부분 그냥 회복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마스크 착용 비율도 당파적 노선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그 결과 미국은 인구 10만 명당 327명이 코로나 19로 사망했다. 일본의 38명이나 한국의 59명보다 훨씬 많다. 의료시스템 차이 탓도 있겠지만, 잘못된 인식이 영향을 미쳤다.
과학계에서 합의되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사실까지 부정하는 ‘과학부정론’은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사람까지 죽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평평한 지구론자’를 과학부정론의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카고 시에서 97㎞나 떨어진 미시간 호수 위에서도 시카고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는 것은 지구가 평평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특정한 기상 조건에서만 관찰되는 신기루 현상일 뿐이다.
저자는 과학부정론의 중심에는 과학적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집단이 있다고 고발한다. 담배가 암을 일으킨다는 것을, 인류가 기후변화를 초래한 것을 부정하는 담배회사나 석유회사 같은 곳이다. 이들 핵심 세력 주변부에는 소외감·상실감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과학부정론을 신봉하면서 더는 소외된 자가 아니라 사회 엘리트가 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저자는 과학부정론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다섯 가지로 꼽는다. 유리한 증거만 골라내기, 음모론에 의지하기, 논리적 오류 무시하기, 가짜 전문가에 의존하기, 과학은 완벽해야만 한다고 요구하기 등이다.
특히, 비밀 정부가 국민정신을 지배하기 위해 약물을 살포한다든지, 정부가 미확인 비행물체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일수록 과학부정론에 기울어지기 쉽다. 상대방 주장 중 가장 약한 고리를 골라 공격한다거나, 과학적 가설에 남아있는 최소한의 불확실성을 걸고넘어지는 전략도 사용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과학부정론을 악화하기도 한다. 과학부정론 자체가 과학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과학적인 증거에도 합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반론을 제시하더라도 신념에 대한 도전이라 여기고 오히려 더 세게 반발한다.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인 미국 공화당과 그 지지층에서 보듯 보수층일수록 과학부정론에 빠진 사람이 많은 게 사실이지만 진보층도 예외일 수는 없다. 진보층도 GMO 식품이나 원자력 발전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는 것 자체가 과학부정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GMO의 식품 안전성 외에 변형된 유전자가 자연 생태계에 들어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원전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이 낳을 수 있는 환경정의 문제 등까지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았다. 수많은 환경오염 사례에서 얻은 사전예방의 원칙을 과학부정론자의 무기쯤으로 간주한 것도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저자는 인류가 직면한 도전을 헤쳐나갈 힘은 과학에 있고, 그래서 과학부정론을 이겨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아무 대응도 하지 않으면 최악의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과학부정론자들이 끝내 백신을 맞지 않으면 코로나 19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우리가 모두 위험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부정론에 빠진 이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도록 도와야 하는 이유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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