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하고 감각적인 위로의 시집
이후남 2022. 11. 26. 00:20
황인숙 지음
문학과지성사
“이 또한 지나갈까/지나갈까, 모르겠지만/이 느낌 처음 아니지/처음이긴커녕 단골 중에 상단골/슬픔인 듯 고통이여, 자주 안녕/고통인 듯 슬픔이여, 자꾸 안녕”(시 ‘Spleen’ 전문)
전문을 옮기기 좋은 짧은 시 한 편을 골랐을 뿐, 이 시집에는 전문을 찾아 읽기를 권하고픈 시가 여럿이다. 시적인 것,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각과 함께 생활에 대한, 타인에 대한 감각이 섬세하고 풍부하게 배어나는 시들이다. 그 타인은 더이상 오지 않는 낯익은 길고양이일 때도, 비죽 웃으며 은행 봉투를 내민 낯선 노숙자일 때도, 고양이를 두고 악다구니하는 이웃 노인일 때도, 폐업을 앞두고 진열대가 비어가는 단골 가게 주인일 때도 있다. 이들에 대해 시인이 감정적 공감을 드러내는 방식은 각각의 시가 아니고는 달리 말로 옮기기 힘들다.
굳이 힌트를 찾자면, 시집 말미에 고종석 작가가 쓴 해설에 이런 말이 있다. 이 시인이 “감각의 시인”이자 “윤리의 시인”이라는 것이다. 하나 덧붙이면, 시인은 특유의 은근한 명랑함을 지닌 사람 같기도 하다. 이런 그가 한탄을 하는 듯한 시에서도 그 한탄은 자신을 위해 터뜨리는 비명처럼 들리지 않는다. 다른 누군가, 어쩌면 이 시집의 독자를 위한, 흔한 표현이지만 위로처럼 들린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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