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79] 너무 애쓰지 마라
첫째니까 무조건 잘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동생들이 보고 배운단 뜻이었다. 노력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는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은 우리도 너를 위해 있는 힘껏 노력하고 있으니 더 분발하라는 징표였다. 그 사랑과 관심에 벅차 눈물이 날 때도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키웠다는 그 말의 무게에 짓눌려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죽어라 노력하고 애써도 안 되는 게 많다는 걸 배운 상처투성이의 성장기였다.
그런 내게 “너무 애쓰지 말고 살아”라고 말하는 문제적 어른이 나타났다. 나의 시어머니였다. 평생 ‘열심’과 ‘최선’을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 자란 내게 그 말은 정말 충격적이었는데, 더 놀란 건 그 말에 터진 내 눈물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거대한 안심이었다. 12월의 크리스마스는 늘 불행했다. 크리스마스에도 당선 전화가 오지 않으면 그해의 신춘문예는 또 낙방이었다. 10년째 낙방하던 신춘문예, 갚을 길이 멀어 보이는 대출금, 자주 반려되던 기획서에 짓눌려 언제든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던 내게 “너무 잘하려고, 너무 다 하려고 애쓰다 마음 다치지 마라”는 그 말은 큰 나무 밑의 그늘처럼 기대어 쉴 수 있는 안전판 같았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에는 치열한 교육관을 가진 부모님과 달리 “그려, 안뒤야, 뒤얏어, 몰러, 워쩌” 같은 순하고 단순한 할머니의 말을 곁에 두고 산 소설가의 유년기가 등장한다. 이 아름다운 책에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서,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받은 줄도 몰랐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그 말의 의미를 20년 넘게 아흔의 시어머니에게 배웠다. 때로 격려와 기대가 자식을 숨 쉬지 못하게 하는 부담과 죄책감이 될 수 있다는 걸 통달한 어른이 주는 그 무심한 다정을 원 없이 받은 것이다. 비싸고 좋은 물건이니 아껴서 조심히 쓰라는 말보다, 깨져도 괜찮으니 마음껏 쓰라고 말하는 어른은 얼마나 희귀한가. 알아도 모르는 척, 묻지 않는 배려는 또 얼마나 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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