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도매가 상한제 규개위 통과…내달 도입 사실상 확정
1년 후 폐지 단서조항으로 한시조치 명확화
한전 적자 부담 줄여 전기료 인상 압력 완화
전기료 결정 독립·전문성 강화 요구 커질듯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전력 도매기준가격(SMP·계통한계가격) 상한제가 사실상 마지막 관문인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를 통과했다. 내달 도입이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 민간 발전사의 이익 감소와 함께 한국전력(015760)의 역대급 적자와 그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압력은 줄어들게 됐다.
25일 정부와 전력산업계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이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제524회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는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낸 전력거래가격 상한에 관한 고시 개정안, 이른바 SMP 상한제 도입을 위한 안건을 일부 수정 후 의결했다. 이 제도가 민간 발전사에 대한 규제 성격이 있어 심의했지만 그 결과 타당성이 인정됐다고 본 것이다.
이로써 SMP 상한제 도입은 사실상 확정됐다. 이후에도 산업부 전기위원회 본회의 심의·의결 절차가 남아 있으나 현 에너지 위기 상황과 이를 바라보는 전기위의 입장 등을 고려하면 이번 규개위가 사실상 마지막 관문이었다. 한국전력거래소 등 관계기관은 이미 제도 도입을 전제로 관련 규칙 개정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다.
SMP 상한제는 정부가 액화천연가스(LNG)를 비롯한 발전 연료값이 급등하면 민간 발전사가 이 부담을 분담하도록 하는 제도다. 현 개정안은 최근 3개월 SMP 평균이 직전 10년의 상위 10% 이상일 때 이를 발동하고, 발동 땐 최근 10년 SMP 평균의 1.5배를 넘지 못하도록 SMP에 상한을 걸게 된다. 국내 전체 전력생산의 약 80%를 맡은 발전 공기업은 이미 정산조정계수라는 이름으로 이익을 제한받아 왔는데, 발전 연료비 급등기엔 나머지 20%의 민간 발전사에도 과도한 이익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11월 적용을 가정하면 최근 3개월 SMP 평균이 226.74원/킬로와트시(㎾h)로 직전 10년의 상위 10%(154.19원/㎾h)을 넘어서는 만큼 발동 요건이 성립한다. 11월 SMP는 육지 기준 최근 10년 평균치(105.53원/㎾h)의 1.5배인 158.30원/㎾h으로 상한이 걸리게 된다. 11월 SMP가 250원/㎾h 전후에서 움직이고 있는 만큼 민간 발전사로선 1㎾h당 100원, 원래 받기로 한 대금의 약 63%만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업계는 SMP 상한제가 불가피하리라고 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발전 원가가 2~3배 치솟으며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서 공급하는 한국전력(015760)의 적자가 더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한전의 올 1~3분기 누적 적자는 21조8000억원에 이른다.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인 것은 물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큰 폭 적자다. 한전이 적자를 메우고자 채권 발행량을 늘린 탓에 국내 채권시장에 돈이 말라버리는 경색 우려가 커질 정도다. 정부도 올 들어 소비자물가 부담을 무릅쓰고 전기료(소매가)를 약 14% 올렸으나 2~3배 뛰어버린 원가 부담을 만회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SK E&S와 포스코에너지, GS EPS 등 7개 주요 발전사의 올 1~3분기 영업이익은 1조5233억원이다. 지난해 8101억원보다 2배 남짓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영세한 태양광발전 사업자는 이 조치가 사업 유지 기반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정부도 소규모 발전 사업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설비규모 100킬로와트(㎾) 미만의 발전 사업자에게는 상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으나, 개별 가정·농가 같은 개인사업자를 뺀 대부분 사업자에게는 사실상 적용되는 만큼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기료 인상 압력 일부 완화…독립 체계 목소리는 커질듯
한시 조치라는 단서조항을 달기는 했으나 SMP 상한제가 진통 끝에 통과되면서 내년 전기료(소매요금) 인상 압력은 일부 완화할 전망이다. 한전은 이번 조치로 당장 올 겨울 월 수천억원에서 최대 1조원까지 자금조달 부담을 덜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시장 자금경색으로 채권 발행을 통한 한전의 자금 마련도 여의치 않게 된 만큼 정부로서도 내년 전기료의 대폭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다만, 이번 결정이 역설적으로 전기요금 결정 구조의 독립성·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는 전력산업계의 목소리를 더 키울 가능성도 있다. 유럽 주요국이 현 에너지 위기 상황을 맞아 전기료를 대폭 올린 끝에 발전사의 이익을 제한한 것과 달리 한국은 전기료 인상은 정부 차원에서 억제한 끝에 발전사의 이익을 제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내년께 에너지 요금 가격결정 구조 개편 작업에 본격 착수하기로 했다.
강경택 산업부 전력시장과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에너지 요금) 결정구조의 근본적 문제로 국가에 부담을 주는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내년께 현 정부 국정과제에 따라 전기료 결정 구조의 독립·전문성 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공론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욱 (ne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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