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아직은 수줍게 노크하는 신춘문예
문학 앞에서는 한없이 몸 낮춰
투고작들 최고로 신선한 가능성
목소리 내기 시작하게 큰 도전
참 많은 사람들이 문을 두드린다. 누군가 문을 밀고 나와 반갑게 맞아줄 것 같은 기대를 갖고…. 그러나 신춘문예! 이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문지방이 이미 닳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손끝은 늘 수줍다. 바짝 긴장해서 안쪽에서 들리는 기척에 귀 기울인다. 조용하다. 큰 기침 소리라도 한 번 듣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다. 그게 바로 최종심에 거론되는 것이다. 자신의 작품이 처음으로 최종심에서 언급되면 당선보다 더 감동한다. 좀은 당당해지고 좀은 명랑해지지만 막상 또 새로 투고할 때가 되면 예전보다 더욱 긴장한다.
신춘문예 심사를 하면서 문학에 대한 이런 열정과 진심을 읽었다. 이 절실한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원고를 쉽게 넘기지 못한다. 한 장 한 장마다 손수 삽화를 그려 넣은 것도 있고, 시집 한 권 분량을 묶은 원고도 있다. 원고지에 손글씨로 또박또박 쓰기도 하고 초등학생이 투고하는 경우도 있다. 심사자의 눈길을 좀 더 강하게 붙잡기 위해 글씨체를 독특하게 한 것도 있고, 간절한 편지가 끼워져 있는 경우도 있다. 창백한 A4용지에 피가 도는 느낌이 들어 심사자는 그 원고를 함부로 다루지 못한다.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이고 활자를 뚫어지게 들여다본다. 한 사람의 가능성을 처음 읽는 기쁨은 벅차고 행복하다. 모든 투고작은 최고로 신선한 가능성인 것이다.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은 버스 운전사가 생활 속에서 시를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누구도 읽지 않는 시를 쓴다. 문득 눈앞에 보이는 사물과 대화하며 우리 모두가 시를 쓰는 사람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영화다. 그 영화 속의 대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이 말은 물론 시를 쓰게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말이겠지만, 빈 페이지처럼 가능성을 열고 신춘문예에 도전하는 응모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좀 이르다 해도 또 좀 늦었다 해도 예비 작가들의 문학을 향한 마음은 한결같이 뜨겁다. 글을 써서 이룰 수 있는 것이 대단하다기보다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신춘에 도전하게 한다. 처음 시작하는 목소리가 아주 작게 전달되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다. 김수영 시인의 다음 말도 도전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으로 들린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김수영의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천수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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