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쌓인 분뇨, 죽어가는 개···'허가받은 지옥'[지구용 리포트]

유주희 기자 2022. 11.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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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 규격 등 동물보호법 규정 유명무실
정책·인력 미비로 방치···합법 번식장 실태
보더콜리(오른쪽) 한 마리가 동물보호법 규정에 못 미치는 좁은 케이지에 갇혀 있다. 유주희 기자
[서울경제]

비명에 가까운 개들의 울음이 귀를 때렸다. 비닐하우스 안쪽에는 수십 개의 ‘뜬장(아랫부분이 뚫린 철제 사육장)’이 늘어서 있었다. 푸들·몰티즈·포메라니안·보더콜리 같은 품종견들이 갇힌 뜬장 아래에는 족히 수년치는 될 법한 분변이 쌓여 있었다.

바쁘게 좁은 케이지를 오가며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개들 사이에서 고개를 가슴팍에 파묻은 채 간헐적으로 떠는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엉덩이에는 빨갛게 튀어나온 장기가 보였다. 뒤늦게나마 ‘루시’라는 이름을 얻은 2.24㎏의 이 작은 개는 병원으로 급히 이송되던 중 숨을 거뒀다. “잦은 출산으로 인한 자궁 탈출, 심장·간의 부분적인 괴사, 지방간과 장 꼬임이 발견됐으며 직접적인 사인은 2차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 이튿날 루시를 부검한 수의사의 소견이다.

17일 동물보호단체인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과 함께 경기도 연천군의 한 개 번식장을 찾았다. 제보에 따르면 이 번식장은 허가를 받은 ‘합법 번식장’이지만 바로 옆에 하천이 흐르고 있어 애초에 동물생산업 허가를 얻을 수 없는 위치인 데다 개들의 분뇨를 수년째 방치하는 등 축산법·동물보호법 위반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현장은 예상보다 처참했다. 총 81마리의 개가 뜬장 하나당 두세 마리씩 갇혀 있었고 중형견인 보더콜리가 간신히 한두 걸음 뗄 만한 비좁은 케이지에서 짖고 있었다. 동물보호법은 동물 몸길이의 가로 2.5배, 세로 2배 이상인 케이지와 발을 디딜 수 있는 평판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산모견’들은 몸조리를 위해 별도의 산모실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들 일부만 엉성한 나무 상자에 격리돼 있을 뿐 산모실은 없었다. 개들이 평생 뜬장에 갇혀 밥을 먹고 배변을 하고 새끼를 낳는 이곳은 ‘허가 받은 지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했다.

숱하게 밟혀 납작해진 쥐의 사체, 버려진 주사기가 흙바닥 곳곳에서 발견됐다. 분변 더미와 흙바닥의 경계를 구분하기조차 어려워 나중에는 바닥을 살피길 포기했다. 카라 활동가들이 연천군의 담당 부처에 신고한 후 공무원들을 기다리는 사이 자리를 비웠던 농장주가 돌아왔다. 20년째 번식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68세의 농장주는 “이렇게 운영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서도 “집에서도 미니핀·푸들 등을 꾸준히 키워왔을 정도로 개를 아낀다”는 모순되는 말을 늘어놓았다.

17일 동물권행동 카라가 제보를 받고 찾은 경기도 연천군의 한 허가 번식장. 사진 제공=카라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번식장이 이토록 열악할 수 있는 원인으로는 부실한 정책과 부족한 인력이 꼽힌다. 카라의 최민경 활동가는 “허가를 받은 번식장을 찾아갔더니 정작 다른 주소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모니터링이 부실하다는 의미다. 번식장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 축산과는 소·돼지·닭과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느라 개 번식장까지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동물 보호’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은 더더욱 찾기 어렵다.

번식장이 주로 위치한 농촌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번식장에 생계를 의존하는 고령의 농장주들을 설득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서다. 연천군청 축산과의 한 관계자는 “2018년 번식장 신고제가 허가제로 바뀌면서 불법 번식장들을 양성화한다는 취지로 허가를 내준 경우가 많다”며 “워낙 동물 복지에 대한 인식이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도 많아 단속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이날 카라 활동가들은 현장에 도착한 담당 공무원들과 함께 농장주를 설득해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아낼 수 있었다. 이미 해가 지는 시점이었지만 신속하게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개들을 수십 개의 이동장에 나눠 3.5톤 트럭에 실은 후 일부는 파주에 위치한 카라의 동물보호센터인 더봄센터로, 일부는 별도의 위탁보호소로 보내졌다. 개들은 현재 수의사들의 검진과 치료를 받으며 뜬장 밖의 세상에 적응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순조롭게 구조가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고성과 욕설이 오가거나 “사냥총을 가져오겠다”는 등의 협박 없이 대화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500m 건너편의 더 큰 번식장에서는 여전히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농림축산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허가를 받고 운영하는 개·고양이 번식장은 2175곳, 무허가 번식장은 정확한 통계조차 없지만 수천 곳으로 추정된다. 81마리를 구조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곧 무력감이 밀려왔다.

유주희 기자 ging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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