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소통] 괴테 어록을 읽는 이유

2022. 11. 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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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이자 경영인 괴테
경험에서 우러나온 격언 남겨
"노력하는 인간은 헤매기 마련"

◆ 리더의소통 ◆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괴테의 어록을 읽는다. 왜 하필이면 괴테인가? 시인의 낭만과 경영자의 차가운 현실감각을 동시에 갖춘 드문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문인이지만, 괴테가 생활비를 벌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아닌 행정가와 경영자로서의 경력 덕분이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정작 손에 쥔 돈은 얼마 안 되었다. 해적출판 때문이었다. 다만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명성으로 26세의 젊은 나이에 바이마르공국에 초대되어 군주인 카를 아우구스트의 측근이 되었다. 나이 어린 군주를 도와 그가 사망할 때까지 최고 의사결정기구의 일원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광산채굴과 공연극장 경영자로도 활약하였다. 현대로 치면 괴테는 장관급 고위 공직자이자 기업 오너 대신에 전문경영인 CEO 역할을 했던 셈이다.

생활을 위해 누군가를 섬길 수밖에 없었던 혼란스러움과 고민은 없었을까? 흥미롭게도 그는 공직에서 일하는 동안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문답형 비망록을 남겼다. "궁정 근무는 지옥과 같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에 "거기에도 좋은 친구는 있지"라고 뒤집어 생각하고, "남의 신세는 지지 않겠어"라고 자존심이 고개를 들 때면 "돌봐주겠다면 받는 게 좋다"고 현실적 대응구로 응수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주장에 "그러면 너는 방 안에서도 노예 신세"라고 뒤집어 생각하는 식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직장생활은 스트레스가 많고 공직생활은 쉬운 일이 아닌데,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그 고충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생활인 괴테가 돋보인다. 이상과 현실의 모순 속에서도 균형감을 찾으려는 치열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괴테의 아포리즘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건 책상이 아닌 일터의 생생한 체험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정곡을 찌르는 적절한 비유로 가득하다. "궁정 생활은 음악과 같다. 각자가 박자와 쉼표를 지켜야만 하니까." "궁정 사람들은 이런저런 의식(儀式)으로 시간을 때우지 않으면 지루한 나머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인생 후반기 자신을 찾아온 젊은 시인 에커만과의 대화에서도 삶의 지혜를 많이 들려주었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지나치게 허물없는 태도를 취하지 말고 항상 일정한 관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거네."

프랑크푸르트는 괴테의 고향이며 '뢰머'라 불리는 시청사 건물은 수백 년 동안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선출하던 장소로 활용되었다. 회고록인 '시와 진실'의 앞부분에 괴테가 프랑크푸르트 시청사 회의실 실내 벽에 적힌 격언을 소개한 건 리더의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한 사람의 의견은 그 누구의 의견도 아니다. 둘의 의견을 공평히 들어야 한다."

경영자로서 괴테가 자주 인용한 것은 '재능 있는 인재에게 문호를 개방하라!'는 나폴레옹의 금언, 가문이나 연공서열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은 절대로 중요한 자리에 앉혀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역설하였다. 반면 인사권자로서 이성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설명하였다. "우리 극장에는 아름답고 젊으면서도 마음씨까지 아주 고운 여성들이 적잖이 있었네. 나는 그러한 여성들에게 열정적인 애착을 느꼈고 또한 상대편에서도 나의 뜻을 어느 정도 받아주려고 했네. 하지만 나는 자제하여 더 이상 관계가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네. 나는 개인 자격으로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기관의 장으로 있는 것이며 그 기관의 발전은 나 자신의 순간적인 행복보다 한층 중요했던 거라네."

삶의 경쟁에 지치고 실패해 주저앉은 이들을 위해 괴테는 또 어떤 말을 남겼을까? "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매기 마련이다." 성공학이 아닌 실패학의 중요성을 역설한 따뜻한 리더 괴테였다.

[손관승 '리더를 위한 하멜 오디세이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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