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겨울이 모여 … 따뜻해진 크리스마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2. 11. 25. 16: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금희 작가의 첫 연작소설
첫눈서 첫사랑 떠올리는 청춘
일 때문에 재회한 옛 연인 등
유리로 만든 모자이크화처럼
알록달록한 인물의 일상 그려
지친 한해에 따뜻한 위로 전해
소설집 '크리스마스 타일'을 출간한 김금희 소설가. 【사진 제공=창비·신나라】

현우의 별명은 '맛집 알파고'다. 트위터로 그에게 음식 사진을 보내 식당 이름을 물으면 현우는 이런 멘션으로 정확히 답했다.

'M대학 인근의 엄마손떡볶이.'

한 장의 이미지만으로 전국 식당 메뉴를 맞혀버리니 '맛집 알파고' 현우는 전국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은다. 현우의 전 여자친구 지민은 지금 현우가 사는 부산으로 향하는 중이다. 지민은 방송국 예능교양국 PD다. '인싸'가 된 전 남친 현우를 만나러 가는 지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고, 지민은 현우를 만났던 12년 전의 시공간으로 진입해 여러 생각에 잠긴다.

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창비 펴냄, 만5000원

김금희 작가의 단편 '크리스마스에는'의 줄거리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김승옥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죄다 휩쓸며 우리 주변 여성의 현재적 목소리를 즐거운 문체로 묘사해온 그가 '크리스마스'를 주제 삼은 책을 펴냈다. 신작 '크리스마스 타일'에 실린 작품 7편은 곧 다가올 첫눈을 상상하게 하고, 오래전 한 번쯤 경험했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억하게 한다.

현우와 지민은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에서 만난 사이였다.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젊은 날 연애의 기억들. 둘은 심야입장권을 끊어 찜질방에 들어가기 전, 아쉬움을 달래려 여러 번 포옹하던 애틋한 관계였다. 마침 그날은 두 사람이 함께 보냈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이제 부산에서 다시 만난 옛 연인은 오래전 일을 기억한다. 그러나 복수도 화해도 용서도 없이 둘은 다시 헤어진다. 과거와의 화해, 그것이 두 번째 만남이 허락한 선물이었다.

다른 단편 '첫눈으로'는 지민과 함께 일하는 방송사 동료인 소봄의 내면을 기록한 작품이다. 앞서 언급한 '맛집 알파고'가 현우의 실제 능력이 아니라 모 프로그램을 이용한 허위임이 폭로된 이후의 시점이다. 방송사 남국장은 '맛집 알파고' 등을 앞세운 프로그램 '능력자' 제작을 원하고, 피디와 작가는 "방송은 예능으로 해도 삶은 예능으로 살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라며 맞선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생활인으로서의 고단, 그럼에도 이루고 싶은 꿈과의 거리가 우리 시대의 초상처럼 전시된다. 하지만 모두에게도 머지않아 크리스마스가 올 것이다. 소봄은 "마치 누군가의 머리 위로 죄 사함을 선언하듯 공중에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그 눈송이들"을 상상한다. 첫눈은 곧 모든 이에게 안식이고, 동시에 일상의 허물을 덮어주는 무엇이 된다.

또 다른 단편 '하바나 눈사람 클럽'은 현우의 친구와 소개팅을 앞두고 첫사랑을 떠올리는 진희의 크리스마스 밤을 그린 작품이다. 진희는 아홉 살 크리스마스이브에 처음으로 교회에 들어갔던 적이 있다. 진희의 아빠가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우면서 진희는 휴일에 등교하는 기분으로 교회에 내맡겨졌다.

진희는 그곳에서 동갑내기 친구 찬성을 만난다. 찬성과 진희는 하바나라는 이름의 클럽 앞에서 눈을 맞기도 했다. 그것은 소소하지만 강렬한 기억이다. 시간이 흘러 20년 가까이 진희와 찬성은 관계를 이어간다. 각자의 길이 달라져 서로 다른 삶을 택하지만 오래전 크리스마스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다.

진희는 첫눈의 결정(結晶)을 보며 이렇게 쓴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눈의 결정 같은 것. 똑같은 모양은 하나도 없는 그것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져 내리는 풍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다르고 다른 것들이 초속 30센티미터로 떨어져내리는 데는 어딘가 초월적인 부분이 있다.'(142쪽)

김금희의 단편 7편은 마치 타일로 만든 모자이크화처럼 우리 모두가 겪은 겨울 풍경을 이룬다. 그래서 제목이 '크리스마스 타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김유태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